동아줄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27화

by 오래된 타자기


4장 5
(1857-1859)



마네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루이 필리프가 개인 소장품을 미술관에 기증한 최근의 스페인 회화 작품들이 걸려있는 뤽상부르 미술관을 드나들었다. 마네는 조금도 지친 기색이 없었다. 그는 이제는 스페인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커다란 크기의 그림들을 그리기 위하여 마들렌느 지구에 위치한 벨르루와가 사용하는 커다란 아틀리에를 이용하기로 맘먹었다. 다음 미술전람회를 목표로 한 것이었다.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는 모든 걸 순순히 포기할 인간도 아니었다.


1856년에서 1859년에 이르는 시기 동안 마네는 야심 차게 몇 점의 작품 제작을 시도했다. 이때 그린 그림들이 현재 일부만이 남아있는 「물을 가르는 기적을 행하는 모세」와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물의 요정」이다. 누워있는 한 남자의 습작 초벌 그림은 앞으로 커다란 크기의 그림을 제작할 것을 예고해 주기에 충분했다.


수잔은 그런 마네를 항상 곁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마네는 커다란 크기의 목욕하는 여인을 그리는 것이 지겨웠던지 그림은 그리다 만 상태였다. 그는 작품 모두를 커다란 크기로 자신이 꿈꾸는 미래의 꿈들마저 화폭에 담아 갔다.


어느 날 갑자기 발르루와가 라부아지에흐 거리에 있는 아틀리에를 매각했다. 노르망디 고향으로 돌아갈 심산이었다. 충격에 빠진 마네는 어쩔 수 없이 두애 가에 위치한 아주 작고 소박한 공간으로 짐들을 옮겨야만 했다.


이사를 하는 중에 거리에서 마주친 아이 하나가 그에게 도움을 주었다. 거리를 떠도는 아이의 이름은 알렉상드르였으며, 생 라자르 역 공사를 하면서 바로 뒤편에 위치한 빈민굴에서 쫓겨나 거리를 떠도는 불쌍한 아이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아이가 이사를 도와준 것이 마네의 심금을 울렸다. 만일 혼자였다면 그 많은 짐을 혼자서 다 옮겨야만 할 판이었다. 마네는 기꺼이 소년의 도움을 받아 화구를 나르고 정리하고 쓰레기를 치우고 붓과 솔들을 제자리에 걸어둘 수 있었다.


자신을 낳아준 엄마한테는 잊힌 존재가 되어버린 아이는 이따금씩 마네의 화실에서 잠을 청하곤 했다. 물론 마네의 물건을 슬쩍 훔치기도 했다. 마네는 천성적으로 너그러운 인간이었다. 그때마다 그는 불행하게 태어난 자신의 아들을 생각했다. 자신의 모친은 그렇게 상냥하고도 자애롭게 자신을 귀한 자식으로 여기고 키워줬건만, 지금 자신은 자신이 낳은 자식한테 그렇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만 들었다.


과일이 붉게 여무는 계절이 도래하자 마네는 거리를 떠도는 아이를 작품 모델로 삼고는 아이에게 체리 바구니를 끌어안은 채 장난꾸러기처럼 웃으면서 체리를 게걸스럽게 먹는 포즈를 취하도록 부탁했다.


그런 뒤, 아이는 마네와 아주 가까워졌다. 하루는 아이가 화실에서 술에 취해 있는 걸 발견하고는 마네는 아이를 몹시 꾸짖었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아이를 어머니에게 돌려보내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모든 걸 다시 시작하겠노라 작정했다. 그가 나쁘게 생각한 건 아니었다. 아이에게도 어머니란 존재는 이 세상 제일의 존재임이 분명했고 더없이 보호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체리를 먹고 있는 아이(Gamin aux cerises)」, 1858-59.


마네는 이후로 더는 아이를 꾸짖지 않을 작정이었다.


매일 저녁 하던 대로 카페에 들러 친구들과 어울려 술잔을 기울인 다음 아틀리에로 돌아와 보니 아이가 화실 한복판에 목을 매달고 죽어있었다. 천장에 박힌 못에 걸려있는 동아줄은 밧줄이라기보다는 가느다란 끈과 같은 줄에 목을 매달고 입에는 설탕을 문 채 죽어있었다.


그걸 보고 질겁한 마네는 도움을 청하러 넋이 나간 사람처럼 정신없이 아틀리에를 박차고 나가 카페로 뛰어갔다. 샹흘뢰리가 마네를 부축하고 화실로 돌아왔다. 두 사람이 힘을 합하여 아이를 끌어내렸다. 아이의 몸이 너무 가벼워 쉽게 끌어내릴 수가 있었다. 그러고는 화실에 있는 유일한 가구인 긴 소파 위에 아이를 가지런히 눕혔다.


괴로운 탓에 어쩔 줄 모르던 마네는 아이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세심하게 어린 생명을 앗아간 가느다란 끈을 치워버렸다. 끈이 목 부근을 조른 흔적이 역력했다.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제시간에 허겁지겁 달려온 보들레르가 화실로 들어서자마자 마네를 두 팔로 끌어안고는 죽은 아이를 위한 기도문을 연상케 하는 송시를 몇 구절 들려주었다. 이윽고 밤이 찾아왔지만 아무도 불을 켜려고 하지 않았다. 세 사람 모두 불행하게 죽은 아이를 추모하면서 밤을 지새웠다. 아이는 이제 겨우 열 살밖에 되지 않은 너무도 어린 나이였다.


누가 이 아이의 장례를 치를 것인가? 마네는 아이의 장례를 자신이 치러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아이에게 너그러운 온정의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었다. 그것만이 회한에 찬 자신을 달래는 길이었다.


건물 관리인이 죽은 아이의 어머니에게 아이가 죽은 사실을 알리자 아이의 어머니가 완전히 미친 여자처럼 머리를 헝클어뜨린 채 달려왔다. 숨을 거둔 어린아이 곁에 모여있던 세 사람은 어두컴컴한 아틀리에에서 아이의 어머니를 마주 대했다. 그러고는 그녀를 위로하는 뜻에서 각자 두 팔로 그녀를 안아주었다. 하지만 아이가 스스로 목을 매달기에는 너무 어렸다고 생각한 아이 어머니가 그들 세 명에게 물었다.


“동아줄은 어디 있어요?”


그녀는 죽은 아이의 시신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아이가 목매달고 죽은 밧줄을 찾겠다고 두 눈을 두리번거리면서 여기저기를 살폈다. 아이에게 입을 맞추거나 아이를 껴안지도 않은 상태였다. 그녀는 오직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한 밧줄이 어디 있는가 만을 집요하게 캐물었다.


“무슨 밧줄 말입니까?”


“에, 무엇으로 그 녀석이 어떻게…….”


“아! 전 몰라요. 그걸 없애버리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참 안타깝군요! 하지만 난 행운을 내 쪽으로 끌어당길 수 있어요. 그 동아줄을 마디마디 끊어서 팔면 되니까요. 밧줄은 어떻게? 길었나요? 밧줄이 길면 길수록 내게는 더 나아요. 이해하셨나요?” 아이가 아무것도 버린 게 없는 휴지통을 샅샅이 뒤지면서 그녀가 물었다.


깜짝 놀란 세 사람이 생뚱맞게도 어린아이의 생명을 앗아간 동아줄이 그녀를 신명 나게 만들고 있다는 걸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그녀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화가가 그토록 용의주도하게 치워버린 가느다란 끈이 대체 왜 중요하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아틀리에를 뒤지고 또 뒤지고 다시 샅샅이 뒤졌다. 그러고는 마침내 아이가 목을 매단 끈을 찾아냈다.


“이게 맞나요? 맞아요?”


마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저히 소리 내어 말할 기운조차 없었다.


줄이 꽤 긴 것에 만족한 그녀는 정성스레 의외의 발견물을 챙기더니 상반신을 뒤로 젖히고는 당차게 아틀리에를 나섰다. 아무런 인사도 없었다. 딱 한 번 어린아이의 시신을 쳐다봤을 뿐이다. 보들레르와 마네는 시구로 된 기도문을 외우면서 밤새 아이의 시신을 지켰다.


이튿날 날이 밝자마자 이웃집 사람들이 보낸 커다란 편지 뭉치들이 아틀리에 문간에 쌓여있었다. 아이의 불행한 죽음을 알고 보낸 편지들이었다. 편지들은 한결같이 아이가 목매고 죽은 동아줄을 한 토막이라도 자신들에게 줄 수 없겠느냐는 간청을 담은 내용들이었다.


편지를 읽고 나서야 마네는 어젯밤 아이의 어머니가 한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추측하건대 그들이 믿는 바에 따르면, 목매달고 죽은 동아줄이 행운의 부적이자 복을 가져다주는 열쇠와도 같다는 것이었다.


마네가 놀란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가난한 이웃집 사람들까지도 이 무시무시한 죽음의 미신적인 믿음을 신봉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었다. 더하여 이러한 병적인 지복에 대한 강력한 신봉이 사람들 마음속에 상당히 넓게 퍼져있다는 사실에 더욱 놀랐다.


마네는 홀로 아이의 시신을 몽마르트르 공동묘지에 매장했다. 아틀리에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거리였다. 때는 6월, 여름의 광채가 온 도시를 무성하게 감싸고 있는 그때 마네는 홀로 흐느껴 울기만 했다.


아틀리에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두려웠다. 황급히 다른 곳으로 떠나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자신의 가족들은 여름휴가를 계획하고 있었다. 그전에 서둘러 이사를 가야 했다.


클리쉬 광장 근처에서 마네는 이상적인 장소를 물색했다. 부모가 사는 곳과 수잔이 살고 있는 곳 사이 딱 중간 지점이었다. 공간을 둘러보는 중에 그는 이상하게 벽에 박혀있는 못 하나를 발견했다.


“누가 여기서 목매달고 죽었나요?” 그가 건물 관리인에게 물었다.


관리인은 짧게 되물었다.


“당신에게 그걸 말한 사람이 대체 누굽디까?”


마네는 그 길로 건물에서 도망쳤다. 그러고 난 뒤, 다시 생활 반경에서 그리 멀리 벗어나지 않은 곳에 생애 처음으로 아틀리에를 구하고는 화구들과 자질구레한 짐들을 옮겨놓은 뒤에 바닷가로 향했다. 바닷가로 향하면서 그는 한 해 동안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고통의 순간들을 잊고자 몸부림쳤다.


불로뉴 해변은 여전히 그를 반겨주었다. 이중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그의 처지에서 지난해보다도 훨씬 용이한 장소를 물색한 것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마네는 바닷가에서 망명한 시인이 유형지나 다를 바 없는 망명지에서 노래한 『정관시집(Contemplations)』을 그 역시 소리 내어 읽으면서 여름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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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위고(Victor Hugo), 『정관 시집(Les Contemplations)』.


아버님이라 부르는 부친은 바깥 외출을 거의 삼갔다. 아버지가 병이 났거나 아니면 우울증에 걸린 탓일 거라고만 추측할 뿐, 자식들은 아버지가 왜 그러는지를 전혀 모르는 채였다. 어머니 또한 그에 대해 일언반구가 없었다. 그녀는 팔을 휘두르며 자식들을 집 밖으로 내쫓았다.


오후가 다 가기 전에 어서 빨리 레옹이 하루 종일 긴 낮 동안 물속에서 즐겁게 놀고 있는 이웃 마을로 가서 아이를 돌봐주라는 주문이었다. 레옹은 수영하는 법을 배운 뒤로 지칠 줄 모르고 파도타기를 즐겼다. 그동안에 수잔과 에두아르는 사랑에 들뜬 사람들처럼 호텔방에서 서로 껴안고 나뒹굴었다.


으제니는 아무도 모르게 은밀히 아이를 돌보면서 어디 다칠까 봐 늘 감시의 눈길을 게을리하지 않은 채 냉정한 태도로 아이를 감탄스레 바라보면서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아이는 공식적으로 친손자가 될 수 없는 팔자이긴 했어도 그의 첫 손주나 다름없었기에 그녀는 온 열정을 아이에게 쏟아부었다.


Boulogne sur Mer, Les jetees, Entree au port du bateau.png 불로뉴 쉬흐 메흐(Boulogne-sur-Mer) 항구에 배가 들어오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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