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전람회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26화

by 오래된 타자기


4장 4
(1857-1859)



마네는 몇 달에 걸쳐 완성한 여러 점의 그림들을 늘 하던 버릇대로 벽난로 아궁이에 집어던졌다. 그가 그린 「맨발을 한 친구 프루스트의 초상」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프루스트가 마네에게서 자신을 그린 초상화를 억지로 빼앗아 집으로 가져간 덕분이었다.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앙토냉 프루스트(Antonin Proust)로 추정되는 「남자의 초상(Portrait d’un homme)」, 1855-1856.


루브르 박물관에서 에두아르 마네는 이상한 옷차림에 호기심 어린 표정을 한 익명의 인물과 자주 지나치곤 했다. 대단히 선량해 보이는 남자는 마네와 마주칠 때마다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얼굴에는 수심 또한 가득했다. 눈 주위가 시퍼렇게 물든 걸로 봐서 꽤나 술을 마시는 것 모양이었다. 더군다나 넝마나 다를 것 없는 옷차림에 시도 때도 없이 다른 이들에게 시비를 걸듯한 모양새였다. 남자의 이름은 꼴라흐데였다. 마네는 온갖 격식을 갖춘 채 정중하게 남자에게 다가가서는 “선생님! 초상화를 그려도 되겠습니까?” 하고 물어보았다.


마네를 무시하는 태도가 기름 덩어리나 돼지 새끼에 불과할 사람이 역력했으나 꼴라흐데는 마네의 말에 그러마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내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이런 일은 파리에서 다반사였다. 몇 달이 지난 뒤에 마네는 길을 걸어가다가 그와 우연히 마주쳤다. 그러고는 더 이상 몸을 따뜻하게 데우기 위해서 루브르를 찾아가지 않는다는 사내의 말을 듣고서는 깜짝 놀랐다.


“더군다나 루브르는 나 같은 사내들에게는 더 이상 문을 열어주지 않아.”


이 늙은 순례자는 밧줄에 목을 걸 만큼 쇠약해진 것이 분명했다.


1858년에서 1859년으로 넘어가는 초겨울에 마네는 미술전람회(Le Salon de Paris)에 작품을 출품할 때가 되었다 생각하고 이번에야말로 이를 준비해야겠다고 작정했다. 그동안 충분히 실력을 갈고닦으면서 때만을 기다려왔기에 결정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마네는 일단 미술전람회에 출품할 작품을 구상했다. 그에게는 첫 번째 관전이었다! 미술전람회를 눈앞에 두고 마네는 마음을 가다듬고 성스럽게 작품 준비에 임했다. 그에게는 단 하나의 작품으로 이제까지 그린 모든 작품들이 다 함께 거룩하게 빛을 볼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게다가 자신의 실력을 검증받을 만한 곳이 마땅치가 않았다. 더군다나 국가가 예술을 강제하고 있는 곳도 바로 이 미술전람회였다. 마네는 무엇보다도 관전을 통과해야만 했다. 게다가 관전은 화가들 모두가 세상에 이름을 알릴 등용문이기도 했다.


제 철이 도래한 것이다. 사전에 몇 달간을 예술가들은 자신이 갈고닦은 실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출품할 작품을 완성한다. 세상 여자들이 산업 박람회장 부스에 칸칸이 들어앉아 서로 남에게 잘 보이려고 열심히 얼굴 화장을 고치듯이 말이다. 결혼할 배우자 아가씨들을 데려오는 데 이보다 더 적당한 곳도 없다.


남자가 쓰는 예장용 모자인 실크해트 아래로 레지옹 도뇌르 훈장의 약장이 빛을 발하는 남자의 팔에 보석을 주렁주렁 매단 그들의 아내들이 팔짱을 끼고 걸어 다닌다! 마네는 사람들이 관전이 수여하는 상에 여전히 목매달고 있음을 좋게 여겼다. 이보다 더 멋지고 우아한 공쿠르가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출품 완료 기일은 4월 15일로 정해졌다. 단 1분도 허비할 시간이 없었다. 매일 꼴라흐데가 아틀리에로 와서 포즈를 취해주었다. 모델에게는 빳빳한 현금 뭉치를 충분할 만큼 주었다. 포즈를 취하는 시간은 늘어만 갔다. 한층 실력이 향상된 그림이 오히려 점점 더 불안감을 키웠다. 마치 예술가가 현대 미술의 반열에 오르게 될 작품을 구현하는 것에 열광한 듯이 보일 정도였다!


얼룩진 그림자가 벽 전체로 확대되어 갔다. 벽이 온통 거무스름하게 변해있었다. 마네의 뇌리 깊이에는 보들레르가 깃을 치고 들어앉아있었다. 마네는 이따금씩 손에 붓을 쥐었다. 얼굴에 분칠을 하고 다니는 친구였던 보들레르가 써 내려간 「넝마주이들의 포도주」라는 시에 대하여 마네는 「압생트 주를 마시는 사람」이란 그림으로 화답한 것이다. 샤를 보들레르의 실추된 명성은 자신이 쓴 시에다 그것도 자신이 사랑하면서 두려워 떠는 자유분방한 삶을 사는 동거녀에 대한 불쾌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비참한 묘사로 점철한 탓이었다.


그렇지만 미술전람회에 출품할 작품은 더더욱 완성을 기해야만 했다. 누더기에 감춰진 인간성에 중요성을 부여하려면 저 벨라스케즈와 맥을 같이하던 메니페와 에소페의 철학에 맥을 같이 할 필요가 있었다. 벨라스케즈는 그 거대한 스페인의 허접하고 쓰레기 같은 사회상을 통렬하게 그림으로 표현하지 않았던가?


마네는 단지 술꾼이 마시고 발밑에 내던져 나뒹굴고 있는 술병을 그렸을 뿐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마네는 벨라스케즈의 그림을 참고하여 그린 자신의 그림에서 인물들의 주요한 특징을 결코 간과한 적이 없었다.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압생트 주를 마시는 사람(Buveur d’absinthe)」, 1858-1859.


작품을 끝내기도 전에 또 다른 작품을 시작하면서 약간 신랄한 황색 물감에 의한 터치마저 눈에 띄기 시작했다. 작품에 일관되게 표현된 그와 같은 특징은 마치 제조한 듯한 인상을 지우기가 어려웠다.


무엇보다 마네는 그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은 게 확실했다. 마네가 이곳저곳에 표시를 해놓듯이, 예를 들어 손수건이나 레몬, 반짝반짝 윤이 나는, 빛의 얼룩 같은 형태에 노란 표시를 해 놓은 것은 스스로 그림이 완성되었다고 판단하기 위한 필요 불가결한 요소였을 것이다.


완성된 「압생트 주를 마시는 사람」 앞에서 마네는 자신의 예술 인생에 있어서 처음으로 만족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림을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기까지 했다! 특히 자신이 그림을 완성할 때마다 평가를 해주던 옛 스승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유심히 관찰했다. 만일 마네가 옛 스승의 평가를 두려워만 했더라도 그가 그린 그림에 대해 힐난과 비난이 쏟아지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림 속에는 단지 압생트 주를 마시는 사람밖에는 없군. 이 같은 멍청한 짓을 한 이가 내가 알고 있는 화가라니, 내 원 참.”


말 한마디를 던지고는 꾸뛰흐는 마네의 작업실을 나가버렸다. 아니 마네의 삶을 완전히 떠났다.


실성한 사람마냥 노발대발하면서도 마네는 옛 스승처럼 화면의 바탕을 오직 갈색 톤으로만 처리한 것을 스스로 인정하면서 몹시 안타까워했다. 몹시 약이 오를 정도로 심적으로 상처를 입은 마네는 스스로 맘을 굳게 먹었다.


“끝났다! 이제는 오직 내 두 발로 다시 일어설 테다.”


마네에게는 이제 더 이상 옛 스승에게는 도움을 청할 생각이 없었다. 결국 「압생트 주를 마시는 사람」이 그가 선택한 제2의 아버지를 살해한 결과가 되고 말았다. 또한 이 제2의 아버지에 대한 모든 예술적 탐색에 역설적으로 종지부를 찍고 만 결과가 되고 만 셈이었다.


마네가 선택한 그림의 주제 역시 상당히 현대적이긴 했지만 「압쌩트 주를 마시는 사람」이 관전에 출품되기에는 그 크기도 문제 될 수 있었다. 가로 1미터 20에 세로 1미터인 그림 크기는 박물관에 걸리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작다는 느낌을 지우기가 어려웠다.


더군다나 미술전람회 주최 측의 규정상 이를 허용할 리도 만무했다. 너무도 현실적인 그림의 주제는 관전에서 요구하는 그림 크기에 더해 시건방지다 못해 논란을 부추기기에 충분한 요인을 더하고 있었다.


그림의 주제는 그처럼 심사위원들뿐만 아니라 관람자들로 하여금 아주 못마땅할 정도로 심각한 것이었을까? 여기에 더해 보들레르가 마네를 위해 헌정한 4행시를 더해야만 한다. 보들레르는 자신의 4행시가 수록된 작은 책자로 간행된 시집 『악의 꽃』으로 말미암아 고발을 당해 법정을 드나들고 있는 중이었다. 시인은 아무 뜻 없이 그저 순수하게 마네의 그림에 부합하는 시를 헌정하고 싶었을 뿐이다.


고요함 속에 사라진 이 모든 저주받은 낡고 오래된 것들에 대한

원한을 물로 씻어버리고 무심한 게으름조차 씻어 내리도록

회한에 사무친 조물주는 잠에 빠지게 만들었으나

인간은 태양의 성스러운 자식과 같은 포도주를 마실 뿐이로구나.


Charles Baudelaire, Les Fleurs du Mal, 1945.jpg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악의 꽃(Les Fleurs du Mal)』.


마네에게 항상 행운만이 따랐다고 할 수는 없다. 적어도 마네 자신과 관계된 것들에 한해서는.


루브르와 선술집을 드나들던 중에 친해진 친구들은 끔찍하게도 혁신적인 첫 번째 작품이 마네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를 극명하게 예시한 경우로서 지극히 당연한 결과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마네가 묘사한 주인공은 어찌 되었든 도시에서 늘 마주치는 인물이 아니던가? 꼴라흐데는 분명 이 도시에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더하여 이러한 존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실제 살아 숨 쉬는 존재일뿐더러 옛 화가들이 너도나도 그림 속에 묘사한 인물의 전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의 스승이 그림 속의 인물에 대해 중상모략하기 이전에, 미술전람회의 심사위원이 마네의 그림을 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집어치우기 이전에 「압생트 주를 마시는 사람」은 마네를 대표하는 그림이 되기에 충분했다.


당연히 관전은 그를 무참히 짓밟았다. 마네의 그림을 본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성화상 파괴주의자 아니면, 아주 기이한 미치광이 예술가쯤으로 치부해 버렸다. 미술전람회 측은 받아들이는 쪽보다 훨씬 더 많은 예술가들을 거부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 이유를 아는 이는 없었다.


미술전람회 측이 마네를 거부한 것 자체가 다른 화가들에게는 스캔들로 여겨졌다. 미술전람회에 작품을 출품하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문이 방긋이 열리기까지는 예술가들 각자의 인물 됨됨이가 중시되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미술전람회에서 거부당한 지 3일이 지난 뒤에 고통스러운 가운데에서 아틀리에를 찾아온 보들레르와 프루스트는 마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려고 애썼다. 마네는 확실하게도 심적인 충격을 받은 게 틀림없어 보였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림 자체 이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어.” 보들레르가 말했다.


“하지만 나를 어떻게 압생트 주를 마시는 사람으로 여길 수가 있지?”


감성적으로 초 과민 상태에 짓눌려있는 젊은 친구를 보들레르가 발로 엉덩이를 찬 격이 되고 말았다. 보들레르는 마네에게 상처를 주고 싶은 맘은 없었다. 하지만 마네는 전혀 그런 뜻이 없는 보들레르의 말 때문에 상처를 받았다.


“보들레르까지 나를 무시하는구나.” 갑자기 마네는 서글퍼지기까지 했다.


마네는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보들레르는 마네에게 「압생트 주를 마시는 사람」에 유일하게 좋게 평가한 이는 다름 아닌 으젠 들라크루아였다고 일러주었다. 들라크루아만이 인간적으로 마네를 옹호했으며, 그를 위해 투쟁의 대열에 섰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난 파리에 존재하는 인물의 한 유형을 그렸을 따름이다. 벨라스케즈가 발견한 기법의 생생한 표현을 통해 파리를 좀 더 확실하게 묘사하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나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만일 내가 스페인의 한 인물을 묘사했다면, 그들은 좀 더 확실하게 나를 이해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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