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을 품은 젊은 화가 집단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29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앙리 팡탱-라투흐가 역사화로 남긴 바티뇰의 화가 군단 [1]



5장 1
(1860-1862)



끝났다고 말해야 끝나는 것이다.

- 에두아르 마네


“쓸데없는 짓에 매달리는 것만큼 내가 싫어하는 건 없어. 하지만 유용하리라 생각하는 것에 매달리는 일 또한 난처한 일일뿐이야.”


마네는 하루의 일과 중 하나인 도심을 가로질러 산책하는 걸 즐기는 동안 친구인 프루스트에게 속내에 담아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프루스트는 한술 더 떠 이야기했다.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 지나치게 무언가를 꾸미려 하는 우리의 태도를 고칠 수 있다는 말인가? 어떻게 하면 좋은가?”


“오로지 참된 사물만이 있을 뿐이라네. 바라본 즉시 그리는 거야. 끝났다고 말해야 끝나는 거지. 아직 끝나지 않았을 때는 다시 시작해도 된다네. 모든 건 여전히 처음 상태이겠지만 말이야. 농담이 아니네.”


“말보다도 행동이 더 어려운 법이지!”


지금 당장은 친구가 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에두아르는 혼잡하고 서로 뒤엉킨 좁은 골목길들을 벗어나는 것이 고민이었다. 아직도 그는 여전히 무언가에 영향을 받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문제는 자신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그 무언가가 자신의 의식 속에 강력하게 각인된 것도 아니며, 스스로 영향을 받고자 의도한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첫째로 그가 선결해야 할 문제는 자신의 독창적인 실력을 증진시킬 수 있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하는 것이었다. 그가 놀라운 실력을 발휘하여 술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만이 그 무엇보다도 선결되어야 할 문제임은 당연했다! 사전에 작업하기로 작정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연후를 제외하고는 그는 마치 숨을 쉬듯 술술 그림을 그려나갔다.


마네가 습득한 솜씨나 기법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몇 년 동안 그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그가 바라본 것을 그렸단 말인가? 최선의 방법은 일단 사람들이 좋다고 추천한 방식을 모조리 다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는 루브르 박물관, 이 전통의 영묘와도 같은 곳에서 오랜 시간을 광적으로 허비한 채 유유자적하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흠뻑 빠져들고 마는 저 고대의 작품들로부터 그가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 수 있는가? 게다가 지금 그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일은 또한 어떠한 것인가?


지난해에 마네는 두 젊은 친구들과 견고한 우정을 나눈 바 있었다. 두 친구들 모두 마네와 늘 의견이 충돌하긴 하였으나 그와 많은 것을 나눌 수 있었던 관계로 세 사람은 한데 똘똘 뭉칠 수 있었다.


첫 번째 인물은 그와 오다가다 알게 된 친구로서 이름이 앙리 팡탱 라투르였다. 금발의 머리카락에 내성적이며 행동이 어쭙잖은 친구였다. 그는 늘 다른 이들과 첨예한 의견으로 각을 세웠다.


다른 한 사람은 눈동자만큼 검은 머리칼에 우아한 차림을 한, 마치 넥타이를 고르는 솜씨처럼 예술 작품을 선별할 줄 아는 능력을 심중에 소유하고 있다는 듯이 자신에 찬 사내였다. 말투나 행동은 마네를 너무나도 빼다 닮았다. 이름이 에드가 드가였다.


짧은 시간 내에 그들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세 사람은 예술계를 같은 시선으로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들이 감각으로 포착한 예술계는 돌연변이를 일으키듯 변화무쌍할 뿐만 아니라 참으로 모호하면서도 불확실한 세계였다.


그들 세 사람은 모두 쿠르베에 주목했다. 쿠르베는 관전이 그의 작품을 거부하자 거부당한 작품들을 당당하게 전시할 목적으로 알마 부근에다가 멋진 별장을 짓겠다고 강경한 태도를 굽히지 않았다.


그들 3명은 앵그르와 들라크루아가 서로 반목하면서 지속적인 논쟁을 벌인 시기에 성장한 세대였다. 세 사람 모두가 하늘이 재능을 준 듯이 탁월한 기량을 발휘한 바 있는 전대의 대가들의 작품들을 모사하기를 즐겨했다.


게다가 에드가 드가는 벨라스케즈 작품 앞에서 직접 동판화를 제작하는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런 드가에게 마네가 불쑥 말을 던졌다. “저런! 뻔뻔하게도 약삭빠른 친구 좀 봐라. 데생도 하지 않고 단번에 작품을 제작하고 있네. 그대들이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그건 행운이 따라서하는 거겠지. 내게는, 나는 그렇게 할 용기가 없네!”


팡탱은 아주 조용한 성격이었다. 하지만 마네는 그를 무심히 대할 수도 없었을뿐더러 그를 치켜세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음악에 대한 두 사람의 열정은 서로 함께 어울려 밤새도록 음악을 집중하여 들을 정도로 한 쌍을 이뤄갔다.


이전의 10년간은 혁명의 시기였던 탓으로 어느 한 사람 누구에게 매달려야 할지 모르는 절박한 심정으로 상황만 지켜보던 시기였다. 세 사람은 오직 그들이 거부하는 것에 관해서만 의견이 일치했다!


그들 세 사람 또한 예술에 있어서 낭만주의 혁명의 시기를 관통하면서 마치 꿀벌이 꿀을 찾아 이리저리 날아다니듯, 그들의 선구적 모델들을 찾아 헤매 다녔다. 제리코, 들라크루아 등은 그 한 예에 불과했다. 이들 선구적 화가들의 영향을 받지 않고서는 세 사람 역시 온전히 바스러질 수밖에 없는 수준이었다.


이들이 속한 대열 가운데 선두를 차지한 사실주의 화가(리얼리스트)는 마네에게 극히 미미하나마 송곳 역할을 다했다. 독설을 내뱉는데 주저함이 없었던 쿠르베는 마네에게 강한 인상으로 다가왔다. 쿠르베 밑에서 공부한 적이 있는 팡탱 역시 쿠르베가 유파에 관해 이야기할 때마다 약간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선구적 화가들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은 자연주의자라 불린 또는 바르비종 파에 속한 화가들인 도비니, 루소, 트화용이었다. 하지만 의기투합한 이들 세 사람이 푹 빠진 인물은 단연 코로였다. 그들은 바르비종 파에 속한 화가들을 좋아하기에는 너무나도 도시적이었다. 젊은 세 사람은 코로를 발견하고 코로야말로 대단히 현대적이고 선구자적 인물일 뿐 아니라, 풍경을 누구보다도 잘 다룬다는 점에서 의견을 같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네는 전원 풍경을 좋아하지 않았다. 보닝턴, 컨스터블 그리고 터너와 같은 영국의 풍경화가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풍경화는 실제 정식으로 프랑스 회화의 새로운 장르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프랑스 회화에 있어서 풍경화가 어떤 위상으로 설정될 것인지는 아직 분명치 않은 상태이긴 했지만, 정식으로 한 장르로 자리 잡아가는 중인 것만큼은 명백했다.


코로는 풍경화에 있어 으젠 부댕과 함께 가장 탁월한 표현을 획득한 화가였다. 다만 으젠 부댕은 파리에서는 아직 알려진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그가 태어나 자란 노르망디를 단 한차례도 떠난 적이 없는 화가였다.


그렇듯이 늘 전위예술운동(아방가르드)을 앞장서 꽃 피웠던 쿠르베나 코로 그리고 들라크루아는 마네나 드가 또는 팡탱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이 노련한 화가들은 마네를 비롯한 세 사람이 허풍 떠는 걸 중단한 채, 선구적 예술가들인 그들에게서 영양분을 섭취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만든 인물들이기도 했다.


제2제정은 일반 예술 애호가들이 서로 구분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제도권 안의 공식 예술과 제도권 밖의 독립 예술 간의 파열이 더 크게 확대된 시기였다. 제국은 진부하고도 낡은 수법을 고수하는 예술작품들을 선호하는 쪽으로 급격히 기울어져 갔다. 제국 예술은 이들의 작품들이 그 자체로 전혀 나무랄 데 없는 작품이라는 판단하에 이들을 장려하기까지 했다.


선두에 선 화가들은 메쏘니에, 윈테르할테, 카바넬 그리고 부게로였다. 온갖 명예에 스스로 무너지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을 그들은 아카데미 현대미술 분과에 속한 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그들이 하는 짓이 곧 법이었다. 그리고 그 법은 잘못 행사되고 있었다. 그들은 누가 관전에 작품을 출품할 수 있을지를 결정했다. 앞으로 예술가가 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그들이 판단했다.


어떻게 그런 짓이 용인될 수 있었을까? 그들의 작품들은 한 집안의 고미다락방에서 서로 한꺼번에 그린 그림처럼 서로 유사하기만 했다. 그들에게 재능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나 그 재능이 엉뚱한 데 잘못 활용된 것처럼 공정치 못한 방법으로 오용되기에 이르렀다. 재능이 권력화된 탓이었다. 심지어 그들은 어떻게 이 젊은 세 사람이 남의 작품을 도용했다고 단정 지을 수 있었던 것일까?


Ernest Meissonier, Les Amateurs de peinture en 1860 (2).jpg 에흐네 메쏘니에(Ernest Meissonier)가 그린 「예술 애호가들(Les Amateurs de peinture)」, 1860년 작,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옛것과 현대적인 것의 이 같은 대립은 정치적 균열이 초래한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른바 ‘낭만주의자’, ‘자연주의자’, 또는 ‘현대화가(모더니스트)’라 불리는 화가들 대부분은 스스로 공화주의자임을 천명하고 나섰다. 또한 그들은 대체적으로 나폴레옹 3세의 쿠데타를 반대하고 나섰다.


젊은 화가들은 관전을 가득 채운 역사화나 신화적 주제를 반복하여 재생한 듯한 ‘대형 크기의 작품들’을 지극히 혐오했다. 그들은 오직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애썼으며,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동시대의 소박한 삶을 묘사하고자 노력했다.


그들은 가속도가 붙은 세계의 발전상을 붓으로 오붓하게 묘사하고자 고심했던 이들이기도 했다. 삶의 양식들이 전속력으로 진화해 가는 양상을 화폭에 담고자 애쓴 이들이었다.


마네가 팡탱을 끌어들인 데에는 다 이 같은 생각이 근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총명한 아이의 얼굴에 담긴 천진난만함은 이러한 예술에의 논리를 지니고 있는 인물에 의해 완성된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첫 작품에서. 만일 마네가 자신의 관점을 누군가와 공유할 수만 있었다면, 그는 그처럼 열렬히 자신의 예술에 대한 논리를 굽히지 않으려고 애쓸 필요까지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뒤로 한 발짝 물러섰을 것 또한 자명하다.


마네가 1859년에 귀스타브 쿠르베 주위에 일군의 화가들이 모여들었을 때, 그 또한 잠시나마 쿠르베의 예술관을 접하고자 뛰어들었던 것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그와 생각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쿠르베가 미술전람회에 조심스럽게 내민 「자화상」이 거부당한 것처럼 바로 지난해에 마네 역시 비참한 심정이었다. 상심한 그는 누구에게 뭐라 말할 기분조차 들지 않았다.


마네는 그러나 누구를 원망하거나 불평을 쏟아내지 않았다. 오히려 아름아름 알고 지내던 제도권 안에 속해있는 이들의 도움을 받아 미술전람회에 자신의 작품을 출품하기만을 꿈꿨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 역시 잘못된 결과를 낳았을 따름이다.


하지만 상심의 시기를 관통하는 동안 마네는 티치아노나 베로네즈, 반 다이크, 와토 같은 거장들의 작품을 모사하는 자기 수련의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더군다나 꽃들을 그리기까지 했다! 정물화는 두 가지 서로 다른 표현에 입각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어 그 진가를 높여주기에 충분했다. 다른 정물화와는 비교할 수 없는 표현 형태가 그 하나라면, 다른 하나는 시적인 구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러했다.


꽃들을 그린 정물화는 살아가기가 막막한 호구지책으로 그린 그림이었다. 그는 적당한 가격에 손쉽게 팔려고 꽃들을 에둘러 무리 없는 표현으로 묘사했다. 그런 이유로 그가 그린 정물화들은 사실적으로 꽃을 묘사하려고 애썼음을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다. 마네는 밝고도 선명한 불빛 아래 자태를 드러낸 꽃들의 형태를 포착한 뒤에 미세한 붓으로 이를 정치하게 묘사해 나간 것이다.


스스로 음악에 열광한 것처럼 마네는 비합리적인 열정도 함께 공유했다. 오페라에 대한 심취는 그로 하여금 일련의 석판화들을 제작하도록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베를리오즈나 바그너에게 헌정한 작품들은 그 한 예에 불과했다.


하지만 마네는 물질적으로 넉넉한 편이 아니었기에 기존의 작품들을 그대로 본떠 그리는 방식으로 작품을 제작하여 이를 팔아 생활고를 해결했다. 루브르에 변함없이 나타난 것이 그러한 정황을 충분히 설명해주고 있다. 그런 가운데 조용하면서도 든든한 우정이 싹터 갔다.








[1] 앙리 팡탱-라투흐(Henri Fantin-Latour), 「바티뇰의 화가 군단(École de Batignols)」, 1870, 파리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 그림 속의 인물들은 마네를 중심으로 오토 숄데레흐(Otto Scholderer), 오귀스트 르누아르(Auguste Renoir), 자샤리 아스트뤼크(Zacharie Astruc), 에밀 졸라(Emile Zola), 에드몽 메트르(Edmond Maître), 프레데릭 바질(Frédéric Bazille), 클로드 모네(Claude Monet)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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