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45화

by 오래된 타자기


6장 3
(1863)



동료나 다름없는 일군의 예술가들은 연일 세간에서 온갖 비난과 욕설이 쏟아지고 있는 낙선작가 전람회에 마네가 출품한 「목욕」이 일찍이 그가 ‘남녀 짝을 지은 두 쌍’이라 일컬었던 작품임을 떠올리고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마네의 그림은 말 그대로 웃어넘기면 될 일이었다. 관객의 소동이나 분노 또한 어처구니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관람객들은 마네의 작품 앞에서 웃음을 딱 멈췄다. 관람객 모두는 마네가 그린 그림을 두고 가증스런 적개심을 드러냈음은 물론 화가에 대한 분노마저도 한층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마네의 「목욕」이란 작품은 그렇듯 회화에서 관람객들인 사내들이 전혀 흥미로울 것 없는 ‘프랑스’라는 한 여인에게 고함지르며 난동 피우는 것이 일반화되었다는 걸 상징하는 일대 사건이었다. 동시에 이러한 난동이 보편적인 정서로까지 자리 잡고야 만 사건이기도 했다.



혁명적인 작품이 탄생했다.
그리고
그림은 순식간에 유명해지고 말았다!



낙선작가들의 작품이 걸려있는 전시장 한쪽 구석진 곳에서 마네의 「목욕」은 도저히 예술작품에게서 일어날 수 없는 그처럼 괴상하고도 기이하기 짝이 없는 소동과 소란을 한꺼번에 야기하는 결과를 초래하고야 말았다. 수상 작품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었다!


매일 전시장을 개장하자마자 입장을 기다리던 군중들은 일제히 마네의 작품 앞에 떼를 지어 몰려가 악의에 찬, 신랄한, 독살스러운 증오들을 쏟아내기에 바빴다. 그들의 야유나 비난은 그러나 한심하게도 예술작품에 대한 대중의 몰지각한 이해심을 증명해 주었을 따름이었다.


낙선작가 전시회에 몰려든 관람객들을 풍자한 삽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점의 스페인을 소재로 한 판타지들은 시대의 분위기를 적절히 예증해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하지만 「목욕」으로 인한 오염된 공기는 전시장 안을 온통 더럽혀갔다. 그런 이유로 관람객들은 마네의 다른 작품인 「투우사 복장을 한 젊은 사내」와 「투우사 복장을 한 브이(V) 양」은 어떤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두 작품으로 시선을 돌렸다.


17-1 Jeune homme en costume de Majo, 1863.jpg
17-2 Mlle Victorine en costume d'espada, 1862.jpg
에두아르 마네의 「투우사 복장을 한 젊은 사내」(1863)과 「투우사 복장을 한 V양」, 1862.


두 점의 그림에서 관람객들은 특별히 눈에 띄는 어떠한 특징도 확인하지 못한 채, 아주 뻔뻔스러울 정도로 한 명의 모델이 남녀의 역할을 번갈아 하고 있다는 사실만 확인했다. 그러나 모두를 깊은 충격에 빠뜨린 작품은 역시 「목욕」이었다.


1863, Le Bain ou Le Déjeuner sur l'herbe.jpg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목욕 또는 풀밭 위의 점심식사(Le bain ou le déjeuner sur l’herbe)」, 1863.


주제는 뭘까? 옷 입은 두 남자 가운데 벌거벗고 있는 여인이라! 아직 빅토린느는 관람객을 경멸에 찬 눈초리로 똑바로 쏘아보지는 않는다. 다른 그림에서 그녀가 소매 없는 옷을 걸쳤을 경우에는 비극 배우들이 싣는 반장화마저 신고 있다!


이와 비슷한 유형의 작품들은 박물관 도처에 널려있다. 마네는 라파엘로, 조르조네, 티치아노의 작품들에 고무되어 자신도 그와 같은 그림을 한 번 그려보고자 시도했을 것이다.


그림 그리는 방식에 어떤 착오가 있었던 것일까? 이제까지 마네가 그림을 그린 걸 보면 대체적으로 바탕은 거무스름한 빛깔로 채색하기 마련인데, 화면엔 온통 밝은 빛으로 가득하다. 마네는 바탕을 밝게 하려고 작정했음이 분명하다. 그림의 바탕을 이룬 밝은 색조 역시 스캔들이 된 주 요인 가운데 하나다.


그림 한쪽에는 산뜻하고도 생동감 넘치는 색조들로 터치를 준 흔적이 역력하다. 이러한 기법 또한 과거와는 달리 거의 모든 작품들에서 흔히 발견되는, 사물이나 인물을 보다 뚜렷이 묘사하기 위한 기법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 않은가?


일화적인 사건을 구성한 그림을 단호하게 포기한 채, 오로지 관능적인 장면만을 위해 지나칠 정도로 세부 묘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대체 어느 구석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인가?


스페인을 소재로 해서 그린 두 점의 작품 사이에 끼어있는 「목욕」은 차라리 고전주의 수법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하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라파엘로나 조르조네의 작중인물에서 따온 세 명의 등장인물들도 그들과 똑같은 옷을 입은 채 등장하고 있다.


이 인물들은 예전에는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지만, 지금에 와서야 문제가 된 이유는 무슨 이유 때문인가? 똑같은 옷차림으로 그린 등장인물들이 그림을 바라보는 관람객들에게 쇼크를 주고 그들로 하여금 느닷없이 폭소를 터트리게 만든 요인은 대체 무엇 때문인가? 이즈음에 와서 그 같은 괴상망측한 옷차림이 우스꽝스럽게 여겨진 탓인가?


3-2 Le Jugement de Pâris, gravure de Raimondi (1514-1518).jpg
3-1 Concert champêtre de Titien (1508-1509).jpg
라이몬디의 「파리스의 심판」, 1514-1518 및 티치아노의 「전원의 합주」. 1508-1509.


가장 스캔들을 일으킨 건 알몸의 여인이 진짜로 완전히 벌거벗은 몸을 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더군다나 벌거벗은 그녀는 한쪽에 옷을 던져놓기까지 했다. 그녀를 바라보는 관람객의 시선은 자연 풀밭에 흩어져 있는 옷가지들에게까지 이어진다. 그녀는 다른 이들과 함께 점심을 들고 있는 중이다. 조르조네의 「전원의 합주」와 하나도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조르조네는 조르조네(실제로는 티치아노)이다. 결국 마네라는 또 다른 ‘티치아노'는 그림을 닥치는 대로 막 그렸다는 것이 보는 이들의 판단이었다.


무례하기 짝이 없는 말까지 덧붙여졌다. 마네가 날림으로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다! 그에 더해 구역질 나는 표현이란 말까지 이어졌다. 마네는 그림을 아직 다 끝내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소묘로 남겨둔 이유가 고의적인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마저 불러일으킨다. 아니 화가가 대담하게 세부 묘사를 생략한 것은 아닌가 짐작되기도 한다. 그렇게 한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하고자 한 것도 아니다! 이 때문에 돌아버릴 것만 같다고 소리치는 미치광이들을 뜯어말릴 필요가 있다. 진짜 스캔들은 거기에 있다.


만일 무식하고 상스러운 한 인간이 대학생들이 잔디밭에 웬 벌거벗은 여자 하나를 둘러싸고 즐겁게 놀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소리 지른 경우에 해당한다면, 한바탕 소동을 일으킨 스캔들은 실상 화가의 지극히 개성적인 표현에 대한 몰이해에서 기인한 것이란 점을 전문가들은 판단하고 나설 것이다.


하지만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주제가 문제이긴 하나 그것이 꼭 문제라고 단정 지을 수만은 없다. 그림 됨됨이 때문이다. 마네는 자신이 그려서는 안 될 것을 떠올린 것이 아닌가 짐작될 정도다. 그러나 관람객의 시선을 뒤흔들어놓을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한 장면을 상상한 것이리라. 마네 이전에는 그 어떤 화가도 그 때문에 유명해진 적은 없었다. 마네 역시도 자신의 그림이 그렇듯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거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다.


마네가 그린 그림이 단순히 상상으로만 남녀 사이의 뜨겁게 달구어진 장면을 떠올리면서 완성해 간 그림은 결코 아니라 생각되는 것은 그림 속의 모델이 실제 살아있는 인물이면서 동시에 화가의 눈앞에 실제 존재하는 인물이기 때문은 아닐까? 화가는 자신의 모델이 면전에서 온갖 포즈를 다 취하는 걸 목격하면서 그림을 완성해 간 것이다!


마네는 자신만의 독특하면서도 유일한 날 것 그대로의 감성을 그림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만큼 비열하고도 파렴치한 품행을 드러냈다고 볼 수도 있다. 쿠르베처럼, 완전히 벌거벗은 여자의 몸을 있는 그대로 그렸던 이 대담한 화가처럼, 마네 역시도 동시대인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의도했던 것은 아닐까? 혹시 아카데미의 영광에 버금가는 전혀 차원이 다른 영광을 꿈꿨던 것은 아닐까?


황제는 자신의 취향에는 맞지 않지만, 관전에 입상한 꺄바넬의 전형적인 관학풍의 모델을 떠올리게 만든 풍만한 여인을 묘사한 그림 한 점을 구입했다. 작가가 파렴치하게도 「비너스의 탄생」이라 이름 붙인 작품이었다. 그림 한가운데 자리 잡은 비너스 뒤로는 하얗고 매끄러우면서도 달콤한 배경이 그려져 있다. 파도가 토해놓은 불결하기 짝이 없는 거품으로 말미암아 에로스는 그림 속에서 아예 자취를 감춰버렸다.


Alexandre Cabanel, La Naissance de Vénus, 1863.jpg 알렉상드르 꺄바넬(Alexandre Cabanel), 「비너스의 탄생(La Naissance de Vénus)」, 1863.


하지만 마네의 그림은 관람객들의 주목을 끌만한 작품이 아니었다. 황제가 꺄바넬의 그림을 구입하는 순간까지도 마네의 그림은 다만 관람객의 주목을 받고자 숨을 고르는 중이었다.


그 어떤 그림도, 그 어떤 작가도 마네와 마찬가지로 논쟁에 휘말려 든 경우는 없었다. 만일 논쟁이 불을 품어 한바탕 소동이 벌어질 소지가 충분한 그림이나 작가였다면 전원 만장일치로 작품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졌을 것 또한 뻔한 이치였다. 증오와 분노를 표명하는 것 이상으로 야만적이고도 폭력적인 사태 또한 벌어졌을 것이다. 심지어는 마네가 고발당한 걸 변호하고 나설 사람조차 없었다. 가족들과 동료들을 제외하면, 성난 군중들과 함께 죽일 듯이 소리 지르며 덤벼들지는 않았지만, 화가를 전대미문의 위험을 당할 처지에 놓이게 만든 이들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폭발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다르, 바지유, 피사로, 모네, 드 니티스, 르누아르, 드가, 팡탱이 오직 마네를 몸으로 에워싼 채, 마네를 비난하는 세력들을 저지하고 나선 것이다. 그들은 마네처럼 똑같이 작품을 거부당했을 뿐 아니라, 똑같은 비난에 휩싸인 화가들인 지라 굳게 단결하여 마네를 중심으로 그를 에워싼 채 한데 뭉쳤다.


그들은 「목욕」이란 단일대오의 깃발 아래 똘똘 뭉쳐 한목소리를 냈다. 마네를 에워싼 채, 굳게 단결할 수 있었던 것은 마네야말로 자신들의 우두머리란 판단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느 시대나 할 것 없이 우두머리란 증오의 대상이었다. 우두머리란 타이틀 또한 늘 상처뿐인 영광을 가리키고 있을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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