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라크루아의 죽음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47화

by 오래된 타자기


6장 5
(1863)



8월 13일 오전 7시가 다 되어갈 즈음 퓌르스탕베르그 광장에 있는 자신의 저택에서 으젠 들라크루아가 숨을 거뒀다. 마네는 들라크루아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고인의 명복을 빌고는 실의에 빠진 친구 보들레르를 위로한 다음 쥬느빌리에흐로 다시 돌아갔다. 17일 들라크루아의 장례식이 있던 날 팡탱은 “우리들 가운데 가장 위대했던 화가에게 헌정하는 작품”을 제작할 것을 결의했다.


그러자 보들레르가 투덜거리듯 이야기했다.


“아니 그가 살아있을 때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은 것이 후회스럽기만 하군.”


“자네들은 그가 상이나 메달 따위를 받은 적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지 않나. 후회할 일은 하지 말게나.”


이번에는 마네를 향해 말문을 열었다.


“한 시대가 저물었어.” 팡탱이 결론짓듯 이야기했다.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 거지.”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 언덕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 올라가던 마네가 쇳소리 나는 어조로 말을 받았다. 들라크루아가 신문지상에 자신에 대해 쓴 글을 어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들라크루아의 기사는 마네의 가슴을 여전히 뭉클하도록 만들고 있었다.


“낙선작가들 가운데 10명 중 9명은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순진한 사람들이었다. […] 12명 가운데 반에 해당하는 이들의 작품에서 왕년의 젊은 혈기를 보는 듯했다. 특히나 그 어떤 작품보다도 마네의 세 작품이 이에 해당했다! 마네 씨는 세상의 모든 심사위원들이 만장일치로 그가 그린 작품들을 거부해야 할 만큼 뛰어난 자질을 갖추고 있다. 그만의 색채의 배합과 함께 강철 톱과도 같이 예리하고도 냉혹한 두 눈으로 도려낸 듯한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노골적이다 못해 통렬한 느낌마저 든다. 어떠한 부드러움과도 타협하지 않을 듯한 시선은 구멍 뚫는 기계처럼 날카롭기만 하여 시원하기조차 하다. 그는 확실히 물러터진 기법에 빠져 허덕이는 화가가 아니라 아주 상큼하고도 새큼한 과일처럼 신선한 감동을 안겨주기에 충분한 재질을 갖춘 화가가 분명하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순간이었다. 마네는 자신이 그린 「압생트를 마시는 사내」란 그림에 유일하게 찬성표를 던진 들라크루아에게 심정적으로 감사를 표하고 싶을 만큼 감정이 복받쳤다. 두 사람은 잠깐이나마 지상에서 서로를 부축해 주었던 셈이다!


1858-1859, Le Buveur d'absinthe.jpg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압생트를 마시는 사내(Le Buveur d'absinthe)」, 1858-1859.


마네는 들라크루아의 장례식을 지켜보기 위해 파리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는 친구들과 함께 엄숙하고도 침울한 분위기 속에 페르 라셰즈 묘지에서 치러진 들라크루아의 하관식에 참석했다.


하관식에는 참으로 기이하기 짝이 없는 풍경이 펼쳐졌다. 마치 미친 사람들처럼 장의사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속에 슬픔에 빠진 유족 너머로 보이는 들라크루아의 시신은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진풍경이었다. 무슨 옷 장사치들도 아니고 어떻게 화가인 그에게 업적을 기린다고 아카데미 회원임을 상징하는 옷을 염복으로 입힐 수가 있단 말인가? 들라크루아의 괴상망측한 옷차림에 젊은 화가 조문객들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실소마저 터져 나올 지경이었다.


그들은 들라크루아가 예술사에 한 획을 그은 화가란 점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들라크루아는 마땅히 아카데미 회원으로 대우받을 만큼 훌륭한 예술가였다! 실소를 금할 수 없었던 건 그의 시신에 그와 같은 옷차림을 입힌다는 것이 치욕스러운 일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마네는 폭발했다. 모든 게 덧없고 비천하리만큼 상스럽기만 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보들레르는 모욕을 당했다는 듯이 소리 지르며 길길이 날뛰었다. 그들 가운데 극히 일부만이 이 대단한 화가의 죽음을 애통해했다.


팡탱은 그에 대한 앙갚음을 선언했다. 팡탱은 들라크루아의 명예를 되찾을 수 있는 가장 멋진 그림을 그릴 것을 약속했다. 그리고 훗날 그가 그린 그림 가운데 제일 아름다운 그림이 될 그림 제목은 「우리들 가운데 가장 살아있는 정신을 지닌 예술가를 위하여」였다.


팡탱이 그린 그림에는 들라크루아의 생전의 모습이 담겨있으며, 주위로 화가 자신과 함께 동료들이 자리하고 있다. 화가로서는 마네를 비롯하여 휘슬러, 브라끄몽, 르그로, 꼬흐디에, 발르루아 등이며, 시인 작가로서는 보들레르, 샹흘뢰리, 뒤랑티가 그들 곁에 자리했다.


앙리 팡탱 라투흐(Henri Fantin-Latour), 「들라크루아를 기림(Hommage à Delacroix)」, 1864, 파리 오르세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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