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화

『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48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에두아르 마네, 「고양이와 함께 한 여인(La femme au chat)」, 1862-1863.



6장 6
(1863)



파리로 돌아오자마자 마네는 다시 누드화를 그리고자 고심했다. 하지만 기요 거리에서 빅토린느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마네가 없는 동안 고양이 가족들을 보살핀 이웃인 「책 읽는 남자」의 주인공인 조셉 갈 역시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 전혀 모르는 채였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마네는 입에 거품을 물고 길길이 날뛰었다. 아무도 그녀를 본 사람이 없었다. 빅토린느는 마네에게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다. 더군다나 그림을 계속하기 위해선.


마네는 빅토린느를 다시 그리기로 마음먹었다. 예전에 피렌체 우피치 박물관 회화 전시실에서 모사한 적이 있는 「우르비노의 비너스」와 같은 형태로 그릴 것도 구상했다.


Tiziano, Venus von Urbino, La Vénus d'Urbin, 1538 Musée des Offices, Florence.jpg 티치아노(Tiziano), 「우르비노의 비너스(Venus d’Urbino)」, 1538.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그녀의 발치에 잠들어있는 개는 고양이로 대신할 작정이었다. 또한 어여쁜 흑인 하녀가 그녀에게 꽃다발을 갖다주는 장면도 끼워 넣을 참이었다!


4-1 1856, Copie du Vénus d'Urbino.jpg
4-2 1862, La Négresse.jpg
에두아르 마네, 「우르비노의 비너스(Vénus d’Urbino)」 복제화, 1856년 작(왼쪽 그림)과 「흑인 하녀(La Négresse)」, 1862년 작(오른쪽 그림).


마네는 브라질에서 온 노예 상태에 처한 흑인들의 처지를 결코 잊은 적이 없었다. 마네는 그가 본 흑인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흑인을 그리고자 고심했다. 또한 하녀가 들고 있는 꽃다발은 화폭을 환하게 할 목적에서 온갖 다양한 색조들로 채워갈 것이었다. 전에 보았던 고야가 그린 「벌거벗은 마야부인」이 눈가에 아른거렸다.


Francisco de Goya, Maja desnuda, 1790-1800, Museo del Prado.jpg
Francisco de Goya, Maja estida, 1790-1800, Museo del Prado.jpg
프란치스코 고야, 「벌거벗은 마야부인」와 「옷 입은 마야부인」, 1790-1800,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박물관(Museo del Prado).


만일 빅토린느가 돌아온다면 그녀를 아주 밝은 누런 색조와 젖빛 색조 중간 톤으로 그릴 참이다. 그녀의 알몸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바탕색은 당연히 짙은 색조일 수밖에 없다.


마네는 불만을 삭이면서 먼저 바탕색을 칠했다. 단번에 배경을 이루는 바탕이 완성되었다. 이제는 화폭의 정 중앙에 여인만 자리 잡으면 될 일이었다. 나머지 부분은 빅토린느가 나타나는 날 완성하면 그만이었다.


빅토린느는 외양간의 구유 속의 아기 예수처럼 느닷없이 아틀리에 문을 밀고 모습을 나타낼 것이 틀림없다. 마네는 그림을 어떻게 그릴지를 이미 결정했다는 듯이 재빨리 성급한 마음으로 맹렬하게 붓질을 해나갔다.


마네는 자신의 욕망이 이끄는 대로 붓질을 했다. 오직 떠나간 빅토린느가 다시 돌아오기만을 학수고대하는 열에 들뜬 모습이었다. 마침내 그녀가 아틀리에 문을 밀고 들어서는 순간 그들은 얼싸안고 함께 나뒹굴 것이다. 두 사람은 입을 맞추고 사랑을 나눌 것이다. 서로 너무 보고 싶었다는 이야기도 나누겠지. 그녀는 또한 자신이 떠난 이유를 장황하게 늘어놓을 것이다. 그녀가 다시 돌아온 이유까지도. 바로 그처럼!


그녀는 돌아왔다. 모든 게 순조롭게 되었다. 그는 더 이상 카페를 전전하지 않아도 될 뿐 아니라 그림 그리다 말고 번거롭게 아내의 아파트에까지 찾아가서 잠을 청할 필요조차도 없었다. 벌거벗은 빅토린느는 육신과 영혼으로 그의 욕망을 다시 채워줄 것이 틀림없었다.


온 신경을 곧추서게 만드는 몸, 얇은 입술, 검은 선으로 뚜렷하게 부각한 가느다란 목, 그가 점잔 빼며 그녀의 팔목에 끼워준 모친의 팔찌, 굽이 높은 실내화는 온 신경을 간지럽힌다. 기다란 몸을 반쯤 비스듬히 기댄 채로 그녀는 마네를 훑어보듯 바라보고 있다. 훗날 그녀는 미술전람회에서 걸핏하면 히스테리 발작을 일으키며 소리 지르는 무식한 인간들을 그처럼 훑어보듯 쳐다볼 참이다.


재회의 기쁨은 그림이 진척될수록 엷어져만 간다. 그리고 그는 다시 두개골을 뒤흔드는 무지막지한 아우성에 휩싸인다. 이런 그림을 그리고자 그녀를 받아들인 것이 잘못이란 말인가?


모든 이야기가 제거된 채, 오직 비너스만이 모든 진리를 대신할 뿐인 그림에는 팽팽한 긴장감마저 감돈다. 마네는 자신이 그린 그림에 흡족해한다. 게다가 그 결과도 만족스럽다. 자부심을 느낄 만도 하다.


그림에서 구현된 진리란 다름 아닌 적나라하게 고스란히 드러낸 알몸 자체였음은 명백하다. 마네는 자신의 예술에서 가장 실감 나는 주제를 온전히 다룬 것이다. 이게 현대적이지 않다고? 보들레르는 그에 대해 뭐라 이야기할 참인가?


이로써 기이할 정도로 귀가 먹먹해지는 화폭이 강요한 침묵이 완성되었다. 불안할 정도로 고스란히 드러난 알몸. 그림이 걸리기도 전에 성난 군중의 아우성이 들리는 듯하다. 그는 두려움에 몸을 떤다. 다음번 미술전람회에 걸릴 그림에 왕비로 그려진 빅토린느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보들레르가 “나쁘지 않은데.”라고 호의적으로 평가해 주었건만, 마네는 몸이 움츠러드는 느낌이다. 다음 미술전람회에 도저히 출품하지 못할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그림의 어떤 부분이 창피하고 수치스러운 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마네로서는 자신의 정부에게 천벌이 내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림을 아틀리에에 보관하기로 작정했다. 자신을 한때 떠난 여자에 대한 앙갚음으로.

빅토린느에게는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는 수잔과 결혼할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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