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49화
6장 7
(1863)
말뿐인 인간 마네는 약속했다. 결혼을 하겠노라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하겠노라 다짐했다. 그동안 빚진 마음의 모든 걸 갚겠노라는 이야기까지 털어놓았다. 아버지가 세상을 뜬 지도 어언 1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이제는 마음 놓고 지난 15년 가까이를 속상하게 만든 여자와 결혼할 수 있었다.
10월 6일 오후 ‘대부와 친어머니’의 혼례에 참례시킬 목적으로 학교에 가 있는 레옹을 데리러 갔다. 학교 바로 앞 정면에 자리 잡은 구청에서 열린 결혼식(혼인신고 포함)에는 에두아르 마네 쪽에서는 모친과 두 형제가 참석하고, 수잔 린호프 쪽에서는 수잔의 동생인 페르디낭과 언니인 마르타와 그녀의 남편인 화가 쥘르 비베르가 참석했다.
사실혼 증빙서류에다가 마네는 수잔이 네덜란드에 있는 그녀의 부친 집에 거주하고 있다고 기록했다. 마네의 유산을 사전에 위임한다는 내용도 명확히 기재했다. 형제들과 나눌 몫은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엄청난 액수에 해당할 거라는 데에는 이의가 없었다.
과부인 마네 모친에 대한 특별 조항도 기재되었는데, 결혼 지참금을 포기하고 사전에 자식에게 유산을 이양한다는 내용이었다. 만일 그녀보다 먼저 자식이 후사가 없이 사망할 시에는 유산에 대한 모든 권리가 모친에게 되돌아간다는 조항도 들어있었다.
레옹은 친자식으로 인정되지도 않았고 인정될 수도 없는 처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옹은 ‘대부’가 결혼식을 올리는 동안 내내 엄마의 손을 잡고 있었다.
과부인 마네 모친은 “수잔이 범죄행위를 저질러 처벌을 받을 경우 그녀가 이에 따른다”는 조항까지도 요구하였다. 그녀는 실제 결혼식이 치러지지 않을 것을 은근히 바란 것인가? 아니면 반대로 두 남녀가 결혼식을 올림으로써 아이가 친자식임을 스스로 자인하는 결과를 기대한 것인가?
물론 에두아르는 두 사람의 결혼이 아이와의 부자관계를 인정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음을 수잔에게 누차 이야기해 왔다. 하지만 전람회에서 한바탕 소동이 있은 뒤로 그는 한 발자국 물러섰다. 남자가 독신일 경우에는 스캔들 자체가 문제 될 게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만일 사람들이 적대적인 태도로 돌아서서 그와 모든 인간관계를 끊는다면? 또한 그가 계속 「목욕」과 같은 작품을 그리고자 한다는 의도가 폭로된다면? 그리고 불쌍한 여인네가 11살밖에 안 되는 아이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마저 탄로 난다면 마네는 어떤 입장을 취할까?
그 어떤 스캔들과도 무관한 이 가엾은 아이에게까지 책임이 전가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건 레옹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잔인한 처사일 따름이다. 아이에 대한 모든 것이 사실처럼 여겨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가 아이를 애지중지한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더하여 아이에게서 자신이 있을 자리까지 발견한 상황에서 그 무엇도 바뀌어서는 안 된다.
그것만이 최선의 방책이다. 마네는 더 이상 수치스럽거나 불명예스러운 꼴을 당하는 걸 원치 않았다. 마찬가지로 「비너스」를 전시하려는 계획도 단념했으며, 자신의 친자식에게 사실대로 말하기로 작정하고 모든 걸 숨기려는 자신의 태도까지 뜯어고쳤다. 레옹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코엘라의 자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너무도 안타깝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자식이라 인정하는 것이 영 불미스러운 일만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심지어 수도인 파리로 결혼할 배우자를 데려오기 위해 네덜란드로 그녀를 만나러 떠난다는 이야기까지 가까이에 있는 친구들에게 털어놓았다!
그 같은 충격적인 이야기로 몹시 놀란 보들레르는 꺄흐자에게 편지 쓰기를 “마네가 내게 전혀 뜻밖의 소식을 전해왔소. 오늘 저녁 그가 아내를 데려오기 위해 네덜란드로 떠난다는 구려……. 그가 아내에 대한 부연설명까지 늘어놓았다오. 자신의 아내가 예쁘다느니, 매우 착하다느니, 대단한 예술가라는 둥 말이오. 네덜란드의 그 많은 보물들 가운데에서 오직 여인네 한 사람만을 찾아냈다니 괴이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 않소?”
34살의 나이를 막 채우기 전날, 네덜란드의 잘트봄멜에서 수잔 린호프는 참석자들을 자신의 가족들만으로 제한한 결혼식장에서 하객들의 환호 속에 에두아르 마네와 결혼식을 치른다. 에두아르는 장인이 음악을 연주하는 개신교 교회에서 치러진 결혼식장에서 그녀를 아내로 맞이할 것을 엄숙히 서약한다.
수잔의 가족들만 결혼식을 지켜본 관계로 소문은 퍼져나갈 수가 없었다. 오직 프루스트만이 마네의 사생활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젠 더는 비밀에 부쳐질 수도,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될 수도 없었다. 마네 스스로 친구들에게 자신의 배우자를 자랑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그녀를 사랑한다? 그는 그와 같은 물음을 스스로에게조차 던져본 적이 없었다. 마네는 광적으로 그녀를 사랑했다. 마네는 그녀에게 아이를 갖게 했음은 물론 11년 동안이나 남몰래 아이를 키우게 만들지 않았던가? 그것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그녀와 결혼하겠다고까지 약속하지 않았던가? 그 이상으로 그를 심적으로 괴롭힌 건 없었다.
마네가 그처럼 철저히 자신의 사생활을 숨겨온 건 사실이다! 남에게 쉽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정도로 외향적이면서 자유분방했던 그가 지인들마저 자신을 믿지 못할 정도로 투명하지 않았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파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치른 결혼식이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시기였지만, 바닷가에서 치른 결혼식은 마네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주기에 충분했다. 그가 자신의 가족들에게 돌아오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한 탓이었다. 바다에 대한 동경이 지나칠 정도는 아니었다 하더라도 마네는 친구인 시인 보들레르처럼 온 열정을 불태울 듯이 바다를 좋아했다.
마네나 시인이나 할 것 없이 그들은 배 타는 것만큼은 젬병이었다. 그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바다에 대한 소중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었다. 잔잔한 물살이나, 짜디짠 파도의 넘실거림이나, 끝없이 펼쳐진 푸르면서 잿빛을 띤 바다나, 닭 벼슬처럼 아름다운 레이스의 굴곡을 이룬 물보라가 토해내는 거품에 이르기까지……. 바다만 보면 목젖이 아려오는 느낌이었다.
파리로 돌아오자마자 마네는 이사를 했다. 그리고 더 나은 곳으로 이사하기 전에 일단 아내와 모친, 레옹 그리고 으젠과 함께 바티뇰 대로 34번지에 둥지를 틀었다. 이젠 공식적으로 한 가족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 덕분이다. 마침내 그들은 서로 흩어지지 않고 한데 모여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부유한 부모로부터 그는 자신의 몫으로 제일 많은 유산을 상속받았다. 어느 모로 보나 그가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씀씀이가 제일 컸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만일 먹고살기 위해 일할 필요가 없었다면, 꼭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먹고살기 위해 작품을 팔아야 할 이유조차 없었다면, 그림 그리는 일조차 오로지 자기 본위의 취미나 기호쯤으로 여겼을 건 당연하다.
파리로 돌아온 뒤로 마네는 다시 명랑해졌다. 며칠이 지난 뒤, 마네는 보들레르를 자신의 새 아파트에 초대했다. 마네는 여자들 사이에 끼어 살고 있었다. 이 여자들은 그를 사랑할 뿐만 아니라 그에게 흠뻑 빠져 서로 독차지하려고 다투는 중이었다. 초대받은 보들레르는 마네의 아파트에서 담담하게 애정에 넘치는 어머니와 피아노를 치고 있는 아내와 완전한 꿈에 젖어있는 한 고독하고도 쓸쓸하며 가련한 남자를 지켜봤다.
결혼을 하고 나서 또한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바다를 보고 난 뒤, 다시 살아난 마네는 아틀리에에서의 삶으로 돌아갔다. 그 해에 마네가 완성한 그림은 거의 미미했다. 그림 그리는 일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한 까닭은 누드화를 전시할 계획을 단념했기 때문이다.
실제 마네는 누드화를 다시 꺼내 보지도 않았다. 그런 까닭에 마네는 하루빨리 다른 작업에 매달려야만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관전을 통과할 것인가? 이번에야말로 아무 스캔들이 없어야 할 텐데 생각이 복잡하기만 했다. 전에 발생했던 소동을 말끔히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은 과연 어떤 것일까? 하지만 스캔들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것은 그만의 천성에 의한 것은 아닐까?
만일 마네가 자신의 그와 같은 점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