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화가 마네』 50화
[대문 사진] 마네, 「레옹의 초상(Portrait de Léon)」, 1867.
7장 1
(1864-1865)
툭 튀어나온 시원한 이마 아래 푸른 눈동자엔
온갖 악덕에 물든 어린 자식 영혼만이 아른거리고
그 꼴 보지 않으니 밀린 일 다 해치운 것처럼 어머니
속이 다 시원하면서 우쭐한 마음마저 생기는 도다.
- 아르튀르 랭보
어머니가 결혼을 하자마자 레옹의 성적이 뚝뚝 떨어져만 갔다. 파리에 돌아온 뒤에 레옹의 모친인 수잔에게 정식으로 학교에 출두하라는 소환장이 날아들었다. 대부인 에두아르 마네 역시 부모의 입장에서 아이를 보살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 그 주된 사유였다.
학교 교장은 두 사람에게 아이의 성적과 함께 그에 대한 평가를 제시했다. 어떤 과목도 10점 만점에 2점을 넘기질 못했다. “아이가 정서적으로 아주 불안한 것 같습니다. 학업에 열중하지 못할뿐더러 학교생활도 전혀 적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질겁할 일이었다! 이때까지 천사처럼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었는데, 학교생활에 전혀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니 너무도 아찔한 탓에 비명은 고사하고 말문마저 막혔다. 아이가 그렇게 아둔하다는 이야기인가? 그럴 리가 없다. 천사, 두 사람은 합창하듯 아이는 천사였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어머니나 할머니까지도 자랑스러워할 정도로…….
“만일 아이에게 어떠한 변화가 없다면, 저로서도 더는 아이를 어떻게 할 방도가 없습니다.” 교장은 말을 계속 이어갔다.
“하지만 아이가 아직 12살도 채 되지 않았는데요!”
마네는 매번 자신의 성적표를 받아 들 적마다 표정을 일그러뜨리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집에서는 전쟁이 벌어졌다. 드라마도 그런 기막힌 드라마가 없었다. 손바닥을 쥐어뜯으며 하염없이 울기만 하던 어머니. 그때마다 상당히 긴 몇 주간을 아버님이라 부르는 부친은 자신에게 말을 건네는 법이 없었다. 에두아르는 친자식이자 대자인 아이가 자신의 전철을 밟는 걸 어떡해서든 막아야 한다고 작심했다.
“수업에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집중할 수가 없는가 봐요. 아이가 학업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수업에 집중하라고 하면 아이가 더욱 과격한 반응을 보이기까지 합니다.”
“예! 저도 그랬습니다. 어린 시절 16년 동안 매일같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심정이었죠. 끔찍했습니다. 제가 살아있는 한 그런 경우는 더 이상 겪지 않을 것입니다. 어린 시절에 바다에서 선원으로 살아가는 것은 어떨까 생각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곤 몇 달간 꽤 긴 시간을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높은 파도가 치는 해상에서 지냈죠. 제가 아버지 뜻에 전혀 굽힐 의사가 없다는 걸 눈치채도록 할 의도에서였습니다. 제 모든 감정이 잠잠해지길 고대하면서 브라질까지 갔습니다. 그럼으로써 아주 간단히 학교를 때려치울 수 있었던 게죠!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머리가 돌아버리는 건 마찬가지라 생각한 겁니다. 마치 어제 일처럼 모든 게 다 기억납니다! 레옹에게 아무것도 강요할 순 없습니다. 저는 그렇게 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교장선생님께서는 아이를 너무 나무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알아서 할 겁니다.”
“하지만.” 수잔이 불안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크게 실망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남편의 결심이 아이의 모든 걸 다 포기하겠다는 뜻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아이는 이제 12살도 채 안 된 나이여서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처지가 못 되었으며, 세상 물정 또한 전혀 모르는 그저 천진난만한 아이에 불과했다.
저녁 먹는 자리에서 에두아르가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자 으젠은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마네가 결혼한 이상 어머님이라 부르는 그들의 모친이 수잔과 아이에 관한 가족 간의 대화를 이끌어가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여기 있는 모두가 레옹을 사랑하고 있으며, 어떠한 차별도 없이 아이를 가족의 한 구성원으로 대하고 있는 까닭에서였다. 각자 아이에 관해서 아이의 모든 걸 알고 있었던 탓에 그 어느 누구도 함부로 이야기를 꺼낼 수 없는 처지이기도 했다. 레옹 또한 자식으로서 아버지의 이름이 어떻게 되는지, 실제 아버지가 누구인지 전혀 모르는 채였다.
저녁식사가 끝난 후에 에두아르 형제들은 아이가 없는 자리에서 다시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엉망인 졸업장을 받느니 그전에 학교를 그만두는 것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마네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아이가 전혀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처럼 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 아버지의 꿈을 찬란하게 이룩한 귀스타브는 형이 비밀리에 나아 키운 조카를 변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에두아르를 조용히 타일렀다.
“너는 내 조카를 네 아이라 여겨 맘대로 하면 안 돼. 그건 정말 잘못된 짓이야. 너야말로 아이를 제대로 키워야만 해. 아이를 교육받지 못한 인간으로 만들 순 없어. 아이가 세상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정상적인 상황에서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만 하는 거야. 네가 하는 짓은 아이를 포기하겠다는 거나 다를 바가 없어.”
“난 아이가 고통을 겪는 걸 더 이상 지켜볼 수가 없어서 그래.”
마네는 레옹이 학업을 계속하는 걸 강요할 순 없었다. 하지만 결정은 대부인 그가 내려야만 했다. 시동생들이 있는 자리에서 수잔은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고 나섰다. 에두아르는 그런 아내를 불안하게 만들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위해 늘 내가 함께 했잖소. 그리고 당신을 위해서도. 당신들 모두를 위해서 내가 늘 함께 해오지 않았소? 안 그런가?”
그 말을 듣자 모두가 고개를 떨궜다.
이제까지 레옹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아파트와 학교 사이를 오가면서 거의 숨 막히도록 답답한 생활을 이어갔다. 아이가 다닌 학교는 기숙학교여서 파리의 지리를 익힐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아이로서는 오페라나 생 라자르 역과 같은 커다란 진풍경을 방불케 하는 두서너 곳 건설 현장 이외에는 파리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아이는 어느 날 혼자서는 도저히 파리 거리를 나다닐 수조차 없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이제껏 하는 일 없이 죽치고만 있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길을 잃을 위험에 처하면 엄마를 찾으면 그만이었던 탓도 있었다.
에두아르는 드가와 함께 나란히 루브르 전시실에 앉아 고대 걸작들을 모사해 가던 중 기회를 틈타 드가에게 혹시 집안이 운영하는 은행에서 자신의 대자를 사환으로 고용해 줄 수 없느냐고 물어봤다. 심부름꾼 혹은 서류 전달 일과 같은 잡일을 도맡아 하는 아이들은 당시 길거리에서 눈에 띌 정도로 흔했다.
마네가 속내에 있는 심정을 차마 다 발설하지 못할 때마다 드가는 우정을 과시하듯 진심 어린 말로 화답해 주곤 했다. 레옹이 일을 하고 싶어 한다고? 당장 알아봐 주지. 깐깐하기로 유명한 드가 집안사람들이었지만, 그의 말 한마디에 어느 누구 한 사람 아이를 받아주는 걸 거부한 사람은 없었다.
레옹은 너무나 기쁜 나머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마침내 자신만이 혼자 즐길 수 있는 장소가 생겨난 탓이다. 모친은 물론 네덜란드 형제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 곳을 발견한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특히 마네 집안사람들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서 너무도 좋았다.
이제 아이가 막 눈을 뜨기 시작한 유행이나 좇는 속물들을 찾아 나설 수 있게 되어 무엇보다 기뻤다. 그동안 족쇄에 채워져 꼼짝 못 하던 두 다리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무엇이든 홀로 결정할 수 있어서 좋았고 세상 물정도 알게 되어서 더 기뻤다.
에두아르는 자신이 경험한 바, 늘 자신을 거울에 비춰보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 한 사람 제대로 된 인간으로 홀로 서는 법이 없다는 걸 아이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쳤다. 그것도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할지 스스로 궁구하기 위한 노력이나 고민조차 아이는 전혀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납득하게 되었다!
마네는 자신이야말로 ‘탁월하고도 훌륭한 인물’이 될 것에 대한 어떠한 고민도 없이, 또한 스스로에 대한 날카로우면서도 예리한 질문조차 던져본 적조차 없는 채, 그저 허송세월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갔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이들은 가십거리를 다룬 신문기사를 읽고 그에 대한 소문을 들어 알고 있다는 듯이 그처럼 좌중의 웃음거리가 되었을 뿐인 자신을 비열하고 가증스러운 불한당의 눈초리로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다면 현재의 유명 인사들은 대체 어떤 존재들이란 말인가? 마네는 그들이 사기와 협잡에 의한 산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요즘엔 모자를 벗고 외출한다는 건 그를 둘러싸고 있는 후광 탓으로 그가 감히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걸 예증해 보이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연이어 터지는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진지하고도 심오한 태도로 작업에 임했다는 걸 보여줄 수 있다는 말인가?
레옹이야말로 가족들 덕분에 빈둥빈둥 놀며 시간만 죽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의 나이가 그랬다. 아직도 아이였기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다. 산만하기 이를 데 없는 가운데 아이는 커가고 있었다. 내일이면, 좀 있으면 스스로 무언가를 추구해야만 한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드가나 팡탱처럼 마네의 지인들은 레옹이 그의 친자식이란 걸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마네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했을 따름이다. 그들은 오로지 학교 탓만 한 것일까?
팡탱은 학교를 제대로 드나든 적이 없었다. 그림 그리는 일로 먹고살아야만 했던 아버지의 엄격한 지도하에 오직 데생 공부에 전념해야만 했다. 화가인 아버지는 어린 앙리가 일찍부터 그림 그리는 법을 익힐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작품을 제작해야 한다고만 생각한 인물이었다.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자란 드가는 파리 국립 미술대학인 보자르(Beaux-Arts)에 들어가야겠다고 작심할 때까지 이렇다 하게 눈에 띄는 일 없이 명문 고등학교로 알려진 앙리 캬트르(Henri IV)에서 착실히 학업을 달성한 경우였다. 어렵사리 보자르에 들어갔지만, 그곳에서 드가는 어느 것 하나 자신의 예술에 대한 열정을 진작시킬만한 일이 없다고 판단하여 수업에 금방 싫증을 느껴 어떤 직감 같은 것이 작동한 탓에 이탈리아로 줄행랑을 쳤던 것이다.
기가 막힐 일은 드가와 팡탱 두 사람이 마네에게 조언할 만큼 상당한 위치에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마네에게 대자의 목에 굴레를 씌울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수잔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은밀하게. 하지만 이를 어디다 하소연하겠는가?
마네는 가족 간의 일상생활에 대한 확신이 확고했던 탓으로 그들을 항상 너그럽고도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이는 마네의 인간성에 대한 특징이기도 했다. 수잔은 어린아이가 엄연히 아버지의 친자식 노릇을 할 수 없다는 암담한 상황에 처해 있었기에 아이에 대한 애정을 더욱 배가시킬 수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수잔은 단 한 번도 아이를 자신이 처한 상황 탓으로 돌려 대한 적이 없었다. 사회의 냉혹한 시선 탓을 한 적도 없었다. 그녀 자신도 아이를 그런 눈으로 바라본 적이 없었다. 모든 건 그녀의 잘못이었고 실수였다.
그녀는 인간이면 누구나가 똑같은 상황일 거라고 판단하고 애정을 느낀 마네를 사랑한 것일까? 사랑하는 이의 아이를 갖게 된 이후로 단 한차례도 모든 이들이 똑같이 겪고 있을 뿐인 그녀를 둘러싼 냉혹한 사회를 탓한 적은 없었을까? 그녀는 오직 마네의 사랑을 고맙게 받아들이며 애정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외로운 삶은 마네로서는 단지 그녀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만일 레옹에게 고통스러운 일이 닥친다면, 그녀는 아이를 위로하고 보호할 것이 분명했다. 레옹 역시 그녀가 하는 것처럼 자신의 대부를 좋아하며 그의 뜻에 따르겠다는 의사를 이미 밝힌 바 있었다. 아이는 학교 다니는 일을 그만두자 금방 행복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니 학교 따위는 집어치우자…….
아이가 학교를 싫어하는 증후군은 아이가 자신의 아버지의 존재를 모르는 까닭에 당연히 발병할 수밖에 없는 병은 절대 아니라고 마네는 목소리를 높였다. 어쨌든 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