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산 – 가을

1998년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샤모니 마을에서 바라본 알프스 몽블랑 정상 © 오래된 타자기



기억이 나를 살찌울 때가 있다. 나쁜 기억은 몸을 퉁퉁 붓게 만들지만 좋은 기억은 정신을 말갛게 빚어놓는다. 나는 매일 살이 찌는 소리를 듣는다. 손발이 붓고 얼굴이 팅팅 불어 터진 듯 붉은빛을 띠면 좋지 않은 기억이 내 혈관을 틀어막고 숨이 가쁠 때까지 나를 휘둘렀음을 직감한다.


하지만 좋은 기억도 있다. 나를 진짜 살찌우는 건 바로 좋은 기억이다. 성당의 성모 마리아가 그렇고, 박물관의 벨라스케즈가 그러하며, 도서관에서의 이름도 생소한 외국 작가의 책이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눈치챌 때가 그렇다. 내 아내 이름은 마리-베르나데뜨이고, 아내가 다니는 성당은 노트르담(성모 마리아)이며, 도서관은 파리 5구 생트 쥬느비에브 도서관이 멀어 프랑수아 미테랑 도서관으로 바꿨다. 내 영세명은 베르나르(베르나르도)이다.


나는 늘 아내의 식탁에서 글을 쓴다. 아내를 위한 식사를 준비할 때가 제일 기분이 좋다. 내가 만든 음식을 아내가 맛있다고 말해줄 때, 난 아이처럼 좋아라 흥분한다. 브라보! 생은 어리숙한 뒷모습보다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에서 더 확신을 얻는 법이다.


아내가 음식을 비운 자리엔 커피잔이 놓이고 술잔도 가끔 놓인다. 재떨이는 창밖에 놔뒀다. 흰빛이 눈부신 식탁 위에는 도화지가 놓이고 플라스틱 물통과 수채화 물감통 그리고 먹물이 든 유리병이 놓이며 붓을 닦을 부드러운 티슈도 늘 곁을 따라다닌다. 나는 그렇듯 아내와 함께 한 기억들을 재생할 만한 모티브를 찾아 헤맨다.



기억의 재생
기억의 재발견



놀라운 삶의 변화를 꾀하고자 한다면, 나를 살찌우는 방법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아내와의 기억은 나를 살찌우는 힘이다. 그런 연유로 자유자재로 시공간을 오가며 기억을 더듬는다. 화롯불에서 머리칼 타는 냄새가 나던 유년의 기억은 사라진 지 오래다. 숲으로 난 길에서 아내와 함께 걸어온 길을 더듬는 것 또한 오래도록 그녀와 함께 해 왔기 때문이다. 다만 아내가 화장실에 뿌려놓은 향수가 지독하다고 느낄 때면 내게 권태가 찾아온 탓이다. 그걸 이길 방법은 단 한 가지 용변을 볼 때마다 숨을 안 쉬고 견디는 법을 터득하기만 하면 된다.


하물며 아내는 여행을 떠날 때마다 짐가방을 알뜰하게 싸곤 했다. 대서양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김밥을 먹을 줄이야. 난 스파게티 면발에 에망탈 치즈가루를 뿌리고 껍질을 벗긴 토마토를 으깬 소스에 잘 볶은 쇠고기를 섞어 면을 부풀리는 걸 좋아한다. 올리브유와 발사믹 소스를 끼얹은 샐러드가 곁에 놓이면 금상첨화다. 가끔은 겉만 살짝 태운 쇠고기 스테이크에 잘 삶은 감자 두 알 그리고 초록빛 아스파라거스도 발사믹 소스를 그리워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때 마시는 포도주는 샤토 생트 마리. 웬만한 고급 포도주보다 맛이 그윽하고 무게마저 느껴진다. 장미향이 감도는 붉은빛 포도주는 목젖만 달구는 것이 아니라 혼미한 정신까지도 빗질한다. 말갛게 그리고 숙연하게!


1998년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 아내가 다시 여행용 가방을 꾸린다. 그걸 지켜보는 두 사람이 있다. 돈 한 푼 없는 사위와 셋째 딸을 보기 위해 파리까지 날아온 장인 장모다.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들뜬 나는 베엠베(BMW) 고물 자동차의 엔진오일을 점검한다고 부산을 떤다.


외환위기(IMF)가 가져다준 불행으로 고물 자동차 딱 한 대만이 남았다. 나는 그 죽어가는 짐승에게 오일을 붓고 기름칠을 하고 냉각수를 채워 시동을 건다. 장장 700킬로미터에 달하는 여정이 시작될 찰나다. 하루 만에 파리에서 제네바까지 달리려면, 그리고 다시 숙소를 찾아 헤매려면 그 거리도 짧다.


스위스의 제네바에 고인 알프스 눈 녹은 물의 혼(魂)은 론(Rhone) 강을 타고 지중해로 흘러든다. © 오래된 타자기


파리를 출발한 우리 네 사람은 스위스 제네바를 거쳐 레만 호에 도착하여 니옹이란 곳에서 여행용 가방을 풀었다. 스위스의 아주 조그만 호숫가 마을, 마을에서 제일 커다란 그랜드 호텔은 장인 장모에게 호수 쪽으로 난 침실을, 나와 아내에겐 마을로 난 객실을 선물했다.


스위스 레만 호숫가의 마을 니옹(Nyon). 호수 너머로 보이는 산봉우리들이 몽블랑 정상이 자리한 알프스다.


그리고 그날의 저녁식사는 니옹 레만 호숫가에서 잡은 베드로(Saint Pierre)라는 생선요리. 갈릴리 호숫가에서 펼쳐진 예수의 기적이 스위스의 외딴 마을에서도 펼쳐졌다. 장시간의 노곤함에 녹초가 된 나는 한여름밤에 11월의 차가운 비가 떨어지는 호숫가를 배회하는 꿈을 꿨다. 못생긴 아이를 품에 안듯이 그런 나를 말없이 끌어안아준 아내, 동터오는 아침을 준비하면서 장인 장모가 벌써 잠을 깬 방으로 달려가 보니 창밖 가득 알프스 영봉이 가득 들어찬 풍경이 펼쳐졌다. 수줍은 가리개처럼 몽블랑의 높이가 짐작되듯 만년설을 이고 있는 풍경이 가득 채운 창문 너머로 설산의 병풍이 드리워진 방에서 네 사람은 말 없는 감격에 젖어들어갔다.


© 오래된 타자기


레만 호를 한 바퀴 돌아 결국 마지막 행선지로 삼은 곳은 몽블랑 정상이 보이는 샤모니라 불리는 프랑스 알프스 산골짜기 마을, 나는 그곳에서 내 곁을 묵묵히 지켜주고 있는 화목한 가족이 연주하는 화음에 젖어갔다. <별이 빛나던 밤>에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할지라도 이 아름다운 생을 꼭 기억하리라. 반드시 다시 일어서리라. 이까짓쯤의 외환위기야 툴툴 털고 일어나리라. 그리고 다시 나는 일어섰다. 고물 자동차 한 대와 함께.


화목한 가족이 재회의 설렘으로 마주한 알프스 레만 호. © 오래된 타자기


점심 식탁에서 바라본 브레방 언덕, 제라늄 꽃 이파리 사이로 흰빛으로 빛나던 몽블랑 정상, 식탁 밑을 어수선하게 흐르던 우유를 탄 듯한 하늘빛 개울물 소리에 한낮의 태양은 기울기를 멈추고 네 사람은 동네 한 바퀴를 하느적 하느적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장모로부터 선물로 받은 맥가이버 칼은 여전히 서랍 안에서 투명한 광채를 번뜩이고 있다.


© 오래된 타자기


길을 걸어가고 있었으리라. 외환위기의 폭풍을 맞아 꺾인 나무처럼 쓰러질 수도 없고 쓰러져 누워서도 안 되는 길을 걸어가고만 있었으리라. 길 끝에 부활과 광명 밝은 대낮 천지가 진동하고 있음을 어렴풋이 짐작하고만 있었으리라. 나는 그걸 안다. 나는 그걸 느끼고 있었다. 다시 찾은 알프스 한 귀퉁이 산골짜기 마을에서, 샤모니에서, 몽블랑이 바로 보이는 점심 식탁에서 그리고 또 한 바퀴 에움길로 나서서 도착한 샹베리에서 산 그림자가 드리워진 호숫가에서, 그 짧은 휴식에서, 장모의 나지막한 이야기에 취해 맑고 투명한 음조의 호수 물을 가슴에 차오르게 하던 기억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레미니선스란
여행할 때는 여행지에서의 기억이
잘 떠오르질 않다가
먼 훗날 기억이 온전히 되살아나는
회상 현상을 가리킨다.
Réminiscence



화물 트럭 트레일러들이 오가는 밤길조차 두렵지 않은 밤이 시작되자 비로소 난 영혼의 산에 말갛게 씻긴 내 영혼을 남겨두고 왔음을 떠올렸다. 그 힘든 삶의 여정을 묵묵히 지켜보고 끌어안아준 산이 고마워 그 산을 다시 찾을 때까지 내 인생 역시 되풀이될 것 또한 의심치 않은 1998년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길목의 숲을 기억하고 있다.


해 지기 전 마지막으로 들른 샹베리-안시 호수. © 오래된 타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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