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
우리의 신혼여행지는 제주도였다. 원래는 싱가폴을 가려고 했었다. 싱가폴은 아내의 초등학생 때 추억이 담긴 곳으로, 아내가 지내던 곳, 먹던 음식, 한창 뛰놀던 그곳들을 함께 여행해보고 싶었다. 나는 그 당시 육군 장교로 파견근무 중이었기 때문에 여행지에 대해 알아볼 겨를이 없었고, 아내가 인터넷 발품을 팔아서 가성비 좋은 풀빌라와 여행지코스를 짜주는 업체를 찾아냈다. 우리는 좀 작은 회사라는 게 불안했지만, 업체를 통해 전달받은 풀빌라 사이트에서 우리를 매료시키고도 남을 만한 사진들을 보고야 말았다. 우리는 바로 결제했다. 그러던 중 싱가폴 전역에 지카바이러스가 유행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지카바이러스는 태아의 소두증을 유발하는 병이라, 우리는 싱가폴 여행을 포기해야했고, 그것이 낭만 신혼여행의 시작이었다. 아내가 발품을 팔아 찾아낸 그 업체, 그 쬐끄만 놈의 업체는 갑자기 환불해주기가 어렵다며 자기들만의 논리를 제시하기 시작했다. 우리뿐만이 아니라, 그 업체에게 당한 사람들이 또 있었고 그들이 올린 피해호소 글에는 절대 이 업체와 계약하지 말라는 말이 선명했다. 아오! 장교의 책무, 장교는 군대의 기간으로 건전한 심신수양과 인격도야에 힘쓰.........기는 개뿔 매일처럼 생떼를 쓰는 그 민간인에 대해서 너무 어이가 없고 화가나서 힘겨웠다. 작은 업체와의 싸움은 그것대로 진행하면서 우리는 다른 해외여행지를 선정해보기로 했다. 아무리 신혼여행이라고 해도 군인이 해외를 나가기 위해서는 여행지에 대한 충분한 증거자료와 더불어 다섯 명의 상급자에게서 결재를 받아야했다. 결혼식 날짜는 점점 다가오고 있었고, 부족한 시간으로 급하게 여행지를 결정하느니 그냥 안전하게 제주도로 가기로 했다. 제주도도 비행기를 타야하고, 막 공항에는 야자수도 있어서 외국느낌도 나고, 망고쥬스도 사먹을 수 있고, 바닷가도 있고 또 싱가폴처럼 약간 건조하고 더운 날씨니까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묵을 호텔은 신라호텔이었다.
'Sweet dreams'이라는 문구가 적힌 실내화가 우리 두사람을 반겨주었다. 우리 두 사람만의 여행은 처음이라 신혼부부를 위해 준비된 모든 것들이 신기하고 우리를 설레이게 했다. 짐을 하나둘 씩 풀고 나니 체크인했던 점심이 훌쩍 지나서 오후가 되었고, 우리는 룸 테라스에 기대고 서서 바닷가로 번져가는 석양을 함께 바라보았다. 싱가폴은 아니었지만 모든 게 완벽한 것만 같았다. 다만, 내가 군인이라는 것만 빼놓고. 지금도 나는 아침형이지만 그때는 현역이라서 밤 10시만 되도 비몽사몽이었다. (반대로 아내는 올빼미 형이다.) 밤 10시, 제주도에서 맞이하는 날 밤 10시에, 나는 잠들어버렸.... 아니, 잠에 지고 말았....아니, 그러니까 나는 그 밤에 아내를 혼자 두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기상나팔소리가 없어도 벌떡 일어났고, 나름 배려한다고 아내를 살포시 깨웠다. 아직 잠에 잔뜩 취해있는 아내를 데리고 신라호텔 조식뷔페를 먹으러 갔다. 한창 먹는 중에도 나는 아내의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다. 수영하러 가자는데, 아내는 그냥 방에 있겠다고 했다. 정말 아직까지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건 방에 있겠다는 아내를 진짜 쉬고싶어하는 줄 알고 혼자 수영하러 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수영장에 가서 제발 내가 뭘 잘못했는지 알려달라고 사정했다. 아내는, 내가 쿨쿨 잠들어가는 나를 보면서 때려서 깨울 수도 없고, 혼자 잠은 안오고 마음은 번잡스러워서 성경책을 폈다고 했다. 우리는 다행히 낭만의 신혼여행 두번째 밤은 보낼 수 있었다.
우리가 갔던 그 즈음 태풍이 우리의 낭만을 축하해주기 위해 북상중이라는 뉴스가 떴다. 하하. 제주도에 도착했던 날은 너무도 화창한 날씨라 다행히 태풍이 비껴가는 줄 알고 우린 서로 좋아했다. 근데 웬걸, 다음날이 되니까 강력한 비바람에 나무들이 옆으로 누워서 우리에게 그냥 방에만 있으라고 소리쳤다. 그런 광경은 처음이었다. 그래도 우리가 좋아했던 인생짬뽕이 있었기에 우린 버틸 수가 있었다. 짬뽕에 랍스타가 들어간 그 음식은 정말 환상이었다. 태풍이 잠시 쉬고 있던 날 우리는 장모님의 친구분을 만나러 갔다. 우리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시간을 비워두셨고, 그분은 우리를 갈치전문점으로 안내했다. 나는 생전 갈치 한마리를 통으로 길게 조림을 해먹는 건 처음이었다. 흰 쌀밥 위에다가 두툼한 갈치살을 올리고 양념이 잔뜩 버무려진 무와 함께 먹으면 그 또한 환상이었다. 갈치구이도 시켰는데, 종업원 이모님이 갈치를 발라주셨다. 이모님이 잡은 갈치만 수백마리 쯤 되셨을까, 현란한 솜씨로 갈치살을 발라 내 밥그릇에 올려주셨다. 갈치조림을 정신없이 먹고나니까 그날도 석양이 바닷가로 번지고 있었다. 낭만의 갈치조림이었다.
체크아웃을 하는 날, 나에게 짐을 싸고 푸는 건 수없이 싸본 군장 덕분에 손쉬웠고, 아내는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Sweet dreams이 적힌 실내화를 처음 그 자리에 다시 돌려놓고 우린 방에서 나왔다. 양손에 캐리어를 들고서 나는 빠르게 걸었다. 나는 어서 빨리 가서 엘리베이터를 잡아놓겠다는 심산이었다. 아내가 나에게 다다랐을 즈음 엘리베이터가 왔고, 나의 재빠른 행동을 스스로 뿌듯해했다. 공항으로 가는 차 안 분위기가 좀 이상했다. 첫날밤이 지난 다음날 느꼈던 그 느낌이 또 들었다. 아무리 굴려봐도, 차 타기 전까지의 시간들을 아무리 다시 복기해봐도 내가 뭘 잘못했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그리 습하지도 않은 날씨였고, 에어컨도 틀어놨는데 이상하게 차 안 공기가 너무 무거웠다. 이번에도 진짜 마지막으로 내 잘못을 알려달라고 했다. 아내는 잠시 뜸을 들이는 걸로 자존심을 지켰고, 그리고 나서 입을 뗐다.
"왜 먼저가?"
"아니 나는 빨리 가서 그 엘리베이터 잡을라고..."
"아니, 왜 두고 가냐고"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타면 되니까 나는 그냥.."
"아니 그러니까 왜 혼자 두냐고"
"와 진짜 미안"
아, 아내는 그때만해도 우리 아내는 그냥 늦더라도 함께 있고 싶어했다. 그때의 기억은 아직까지도 내 발걸음을 아내랑 맞추도록 도와주고 있다. 두 번이나 아내를 토라지게 만든 게 낭만을 더해준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를 가끔 돌아보면 웃을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추억이다.
아무튼 그때 이후로 나에게 낭만은, 일상을 달리보게 만들어주는 마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