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방인이다.
"저도 일본에서 살아보고 싶어요. 일본 영화 좋아하거든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잠시 웃어보이고,
"네, 일본 좋죠."
라고 말하며 속으로 생각한다.
정말로 '일본에 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생각해본적이 있을까?
나는 일본의 한 대형 호텔그룹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솔직히 잘 모르기도 했고 워낙 준비도 안하고 본 면접이라
기대도 하지 않고 있었던 회사이지만, 운 좋게도 내정을 받았다.
그 소식을 일본인 교수님께 말씀드리자
"나같은 놈은 평생 묵지 못할 좋은 호텔" 이라고 하셨고,
졸업후에 일본에서 1년이상 살아보고싶다는 생각이던 나는
별 망설임 없이 입사를 결정했다.
낯선 땅,
그곳은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봤을때엔 말 그대로 완벽한 서비스의 현장이었다.
손님이 예약한 순간부터 집에 돌아갈 때까지 겪을 감정 변화를
사전에 예측하며 서비스를 설계하고, 그대로 움직이는 세계.
하지만 그 완벽한듯한 공간 안에서, 입사 직후의 나는 늘 속이 불편했다.
"왜 나는 프론트에서 일본인 손님을 안내하지 못할까?"
"왜 나는 레스토랑 서비스 대신 주방에서 조리만 하고 있을까?"
교환학생도 다녀왔고 JLPT N1에도 합격했고,
일본인과의 일상적인 대화에도 어느정도 자신이 있었다.
그럼에도 나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늘 비슷했다.
"지금은 외국인 손님이 많은 시즌이니까, 조금만 기다려요."
"일단 주방에서부터 경험을 쌓아봅시다. 서비스 할 때에도 도움이 될거니까."
밝게 미소 지으며 말하지만, 그 말 속에는 분명한 경계가 있었다.
일본인 동기 몇몇은 주방경험을 아예 하지않고도 서비스를 잘만 하고 있었다.
"나는 아직 믿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구나."
그 미묘한 벽을 처음 느꼈던 순간,
나는 '이방인'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처음으로 실감했다.
처음엔 억울했다.
"내가 일을 못해서가 아니라, 외국인이라서 그렇잖아.
한국에서 똑같은 일을 한다면 니들 다 내 발 밑이야."
유치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인 선배 한 명이 내게 조용히 말했다.
"일본에서는, 일을 맡겨달라고 하기 전에 먼저 '신뢰'를 쌓는 게 순서예요."
그 선배도 아직 신뢰는 쌓지 못한 상황인걸 알고 있었지만,
그 말은 이상하게 머릿속에 오래 남았다.
한국에서 일할 때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행동력이 곧 실력이라 믿어왔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일본에서 일하는 한국인은, 신뢰를 정성스럽게 쌓을 필요가 있었다.
비싼 돈 받고 제공하는 서비스를 검증되지 않은 외국인에게 맡기기는 힘들겠지.
나는 결심했다.
서두르지 말자. 나라는 사람을 제대로 보여주자.
1년 후, 나는 프론트의 매니저가 되었다.
이곳에서 지낸 약 8년간, 한국인을 포함한 많은 외국인 동료를 봐왔다.
그런데 인간적으로 정말 괜찮은 동료들도 유난히 빨리 지치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있었다.
겉보기엔 모두 친절하고, 표정은 늘 부드러운 일본이지만, 그 안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듯 하다.
아래의 세 가지 중 하나라도 해당된다면, 아마 일본에서 오래 살기는 조금은 힘들 것이다.
① 주변에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은 사람
②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에서 주류가 되고 싶은 사람
③ 본인 스스로 감정 표현이 솔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혹은 타인에게 그런 소리를 듣는 사람
우선 일본에서는 말보다 '공기'를 읽는 법이 중요하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신호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그 신호를 놓치면 진정한 대화는 끝이 난다.
처음엔 불편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그 공기에도 마음이 있다는 것.
일본의 '조용함'은 무관심이 아니라, 서로를 해치지 않기 위한 일종의 예의였다.
아무래도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하지 않고 일본으로 넘어오는 경우도 많은데,
애초에, 직장생활을 한다는 것은 고등학교, 대학교 때와는 다른 커뮤니티에서 생활을 하는 것이다.
직장 동료는 친구가 아니다.
모든이야기를 털어놓고싶은사람, 털어놔주길 바라는 사람,
한국에서도 그러한 커뮤니케이션을 직장에서 행하는 사람은 매우 적다는걸 알아야한다.
우리가 아무리 일본의 언어, 문화, 역사를 공부한다고 하더라도 수십년을 일본에서 살아온
일본인들과의 지식, 생각방식, 암묵적인 룰 등의 차이는 클 수 밖에 없다.
그런 상황속에서 우리는 어쩔수 없이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
차별을 당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일본에 와서 단한번도 차별을 당한적은 없다.
하지만 항상 이방인으로 살아왔다.
예를 들어,
“일본의 제사 문화(문화, 즉 일본사회에서 당연한 것)를 모르지만 한국인이니까 그럴 수 있지.
우리끼리 준비 하면 되니까 신경안써도 돼.”
와 같은 배려도 내가 이방인이라는 증거다.
이방인이라서 받는 특혜도 불이익도 있겠지만,
아무리 발버둥쳐도 일본에 사는 한 나는 이방인이고,
이것은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이다.
일본에서 산다는 건, 언어보다 마음가짐과 태도의 싸움이다.
언어는 사실 말할 것도 없는 기본전제다.
자신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고, 가끔은 이유 없는 거리감 속에 서 있어야 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안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나 자신을 잃지 않는 법'을 배웠고,
많은 일본 취업을 꿈꾸는 이들도 그러하길 바란다.
어떠한 형태이든, 역경은 반드시 찾아온다.
그 속에서도 목표를 잊지 않고, 싸워갈 준비가 된 사람만이 살아남는다.
좋든 싫든,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즐길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이곳에서 오래 버틸 수 있다.
요즘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해외 생활이라는 건 '맞는 나라', '맞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낯선 땅에서 배우는 건, 결국 일본어도, 문화도 아니었다.
그 모든 걸 견디며 살아가는 '나 자신'이다.
다음 글에서는 '나는 여기서 살아도 될까?'라는 질문에 대해 조금 더 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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