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본에서 잘 살수 있는 사람일까

의욕0 노답 방랑자가 일본에 정착하게 된 이유

by 또와 일본생활

나는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일본 회사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던 그 시기의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방랑자였다.



방랑자


조금 더 돌이켜보면,

그보다 훨씬 전부터 나는 ‘꿈꾸는 사람’이 아니라 ‘확인하려는 사람’이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보다,

내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알고 싶었다.


그래서였을까.

내 학창시절의 꿈은 단순했다.

양복을 입고 멋진 건물에 출퇴근하는 사람.

그저 ‘괜찮은 어른’처럼 보이는 것.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꿈이라기보다 사회가 만들어준 표준의 복제였다.


대학 진학도 내 의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수능 점수에 맞춰 지원했고,

관심도 없는 일본어가 희망전공이 되었다.

물론 의욕은 0에 가까웠고,

학교보다 아르바이트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았다.


“차라리 재수를 할걸.”

그런 부정적인 생각만 되풀이하며,

나는 스스로의 삶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결국 군대로 도망치듯 들어갔다.



생각


군대는 내 엉망이던 생활 리듬을 조금씩 되돌려놓았다.

세 끼를 챙겨 먹고, 훈련을 받고, 아침마다 구보를 뛰며

그제야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되었다.


“나는 왜 여기 있는가.”
“나는 왜 원하지도 않던 길을 걷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원하나.”


그 질문들 앞에서 한참을 맴돌았다.

나는 유난히 꿈에 닿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나에게 처음으로 “하고 싶다”고 느껴진 건,

이상하게도 해외에서 사는 것이었다.


그저 어딘가로 떠나고 싶었다.

그게 어느 나라든 상관없었다.

몸 하나로,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었다.

그게 내가 기억하는 한 인생 첫 번째 자발적 욕망이었다.



일본이라는 기회


나의 전공은 일본어문학이었다.

일본도 ‘해외’였다.

그 단순한 연결고리 하나로

나는 일본이라는 기회를 붙잡았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충동이 아니라 본능에 가까운 선택이었다.

막연한 동경이었지만,

그 속에는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그리고 그 절박함이 나를 일본으로 데려왔다.



나는 원래 잘 살 사람이었다


저번 글에서는 일본에서 힘들 수 있는 사람들의 특징을 썼다.

"주변에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은 사람"

"자신이 속한 곳에서 주류가 되고 싶은 사람"

"감정을 솔직히 표현한다고 믿는 사람"


돌이켜보면 나는 이 셋과 정반대의 사람이었다.


진짜 내 이야기는 아내 외에는 거의 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만 집중하고 싶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연출하는 미덕을 믿는다.


혼자 밥을 먹거나 카페에 가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혼자 드라이브를 하거나 숲속을 걷는 시간을 사랑한다.

이런 것들은 오히려 복잡한 머릿속이 정리되어서 좋다.

그리고 어떤 언어적·문화적 어려움이 닥쳐도

지금까지 그리 해왔듯이 끝까지 버텨낼 자신이 있다.


이 모든 특성은 일본에서 8년간

수많은 실패를 겪으며 알게 된 나의 일부다.

즉, 일본에 오기 전에는 몰랐던 나였다.



정답은 없다


그래서 결론은 의외로 단순하다.

“일본에서 살아도 될까?”

이런 질문을 할 정도로 진지하다면,

이미 절반은 준비가 된 사람이다.


일본 취업이 아니더라도,

단기유학, 교환유학, 워킹홀리데이, 홈스테이 등

세상에는 수많은 ‘시도’의 형태가 존재한다.


정답은 아무도 모른다.

스스로 부딪히고, 느끼고, 판단하는 수밖에 없다.



앞으로 브런치에서는,

지금 당장은 직접 기회를 잡을 수 없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일본을 간접 체험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전하려 한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는 “나도 한 번 해볼까”라는

조용한 용기가 되길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일본에서 잘 지내는 사람과 못 지내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