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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별택시 Aug 20. 2017

[출근 첫 날] 신고합니다. 신입기자 ○○○입니다.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하고 실패하면 다시 도전하라”_오프라 윈프리

#1 2015년 봄. 우리집 내 방 Am 5:45.


Don’t want to close my eyes

I don’t want to fall asleep

Cause I’d miss you baby


휴대폰에서 에어로스미스의 ‘I don't wanna miss a thing’이 요동친다. 평소 좋아하던 록 발라드지만, 역시 알람으로 듣기엔 거북하다. 졸린눈을 비비며 시간을 보니 새벽 5시45분.

“5분만 더 있다 일어나자”


알람을 미루고 다시 눕자 곧 바로 엄마의 잔소리 공격이 시작된다.


“아들!! 오늘 첫 출근일 이라면서!! 빨리 씻고 일 나가야지!!”


엄마와 몇번의 신경전 끝에 일어난다. 식탁 위엔 3만원이 놓여져 있다. 엄마가 한 소리 붙인다.


“밥 먹을 돈은 있니? 이번엔 제대로된 회사 맞지? 이상하다고 그만두지 말고 끈적하게 한번 다녀봐”


“내가 알아서 할께”


오늘은 지난 주 합격한 ○○뉴스 첫 출근일이다. 이전에 언론사 면접을 몇 번 보고 몇번의 출근을 가졌지만, 이게 제대로된 언론인가 싶어 그만뒀다. 국내 유수의 언론사는 당연히 지원도 하지 않았다. 자신도 없을뿐더러 지금 내가 가진 스펙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걸 잘 알았다. 그래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고 싶은일이 생겼는데, 무리를 해서라도 언론사 명함을 갖고 싶었다.


당시 취업이 궁했던 나는 이런저런 언론사를 가릴 형편이 되지 않았다. 집에서는 빨리 자리를 잡길 원했고, 적당히 돈 잘버는 직장에 취업해 집안살림에도 보탬이 되길 원했다. 당연히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컸지만 나는 내 인생을 사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상황이었다.


씻고 나오니 작은누나가 식탁에 앉아 아침밥을 먹다 한 마디 붙인다.


“몇 시까지 가냐?”


“8시 반”


“겁나게 일찍 가네. 회사 여의도에 있다고 했나? 거기도 이상한 곳 아냐?”


“괜찮은거 같던데? 사장님 보니깐 TV에도 나오고...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곳이 설마 이상한 곳이겠어”


“야 다녀보고 얘기해. TV나온다고 이상한 사람 아니란 법 있냐”


“.........간다”


“잘 하고 와라!!”


#2 지하철 출근길. AM 8:10 사무실 도착


7시10분 쯤 서울행 지하철을 탔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나는 내가 남들보다 이른시간에 나온다고 생각했는데 지하철은 항상 만원이었고, 세상의 속도는 나보다 빨랐다. 내가 열심히 하는 만큼 세상과 더 멀어져만 가는 것 같았다.


“나는 정말 최대 속도로 달려왔는데...정말 열심히 했는데 왜 날 기다려 주지 않는거야”

“정말 가족들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잘 보이고 싶었는데 내게 그런 날이 오긴 올까”


지하철 안에서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느껴보는 출근길은 상쾌했다. 다만 몇번의 시행착오 끝에 들어간 회사라 그런지 사무실이 가까워질수록 기대보단 걱정이 앞섰다. 사무실 빌딩에 들어서기 전, 담배 한대를 피고 마음을 달랬다.


“다시 시작이다. 잘 하자” 마음 속으로 외치니 왠지 이유모를 자신감이 솟아났다.


사무실로 들어가 자신감 넘치는 하이톤으로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부로 경제팀에서 일하게 된 29살 ○○○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민망할 정도의 적막이 흘렀다. 쭈뼛거리는 사이 산업부 데스크란 분께서 오더니 내게 말을 걸었다.


“어~ 네가 □□가 말한 그 애로구나? □□가 잘 좀 봐달라고 얘기하더라. 앞으로 잘 해보자”


여기서 □□는 내가 기자로서 자격이 없다며 들어온 지 한달도 안된 나를 내친 분이다.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나는 몇 군데의 언론사를 짧게 다녔다. 워낙 작은 언론사였고 사수라고 불릴 만한 선배도 없어 기자생활을 처음 하는 내겐 많이 버거웠다. 이런 언론은 대부분 사람을 뽑아놓고 기업체에 대한 소위 ‘까는 기사’를 쓰게 만들어 해당 기업 홍보실에서 연락이 오면 그걸 가지고 협찬이나 광고와 바꿔 매출을 올리는 식이다.


잠깐 덧붙이자면 많은 독자들이 언론이 기업과 대립각을 세우고 일종의 사회적 견제자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정확히 말하자면 언론과 기업은 상부상조하는 관계다.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비판을 늘리기도, 우리 쪽에서 하는 나쁜 말로 빨아주는 기사를 쓰기도 한다. 언론사의 매출은 다른 수익원을 가지고 있지 않는 이상 기업에서 지원해주는 협찬이나 광고비가 절대적이다. 이는 대부분 기업과의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되고, 메이저나 마이너 언론 할 것 없이 공통적이다. 강도의 차이일 뿐 다르지 않다.


당연히 작은 언론사일수록 영세하기 때문에 이런 비판적 기사에 대한 압박이 강할 뿐이다. 이제 막 사회에 첫 발을 내딘 내게 출입처라며 기업체 명단을 주고는 느닷없이 비판하는 기사를 쓰라고 하니, 어찌 버겁지 아니하겠는가. 어쨋거나 그때 그런 기사를 쓰지 못해 나를 나무라던 그 분이 새로 들어간 회사의 부장과 선후배 관계라고 하니 참 세상 좁다.


부장님은 내가 이전에 무엇 때문에 그만둔지 알고 계신 눈빛이었지만 눈칫밥으로 살아온 나는 웃으며 태연히 대응했다.


“네 맞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3 출입처 배정. 선배들과의 첫 만남.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8시 반이 되자 편집국장님 주재하에 편집회의가 열렸다. ○○뉴스는 정치를 주요 내용으로 다루는 언론으로 월 1회 월간지도 발행했다. 주간에는 주로 인터넷과 포털에 뉴스를 노출시키며 독자를 끌어모았다. 편집회의라고 해봤자 별 특별한 건 없다. 그저 그날 이슈를 체크하고 각 분야에 배치된 기자들의 발제와 각 출입처 별 이슈나 사건 파악에 나서는 정도다. 원래는 데스크급만 모여서 편집회의가 진행되지만 국장님은 오늘 내가 첫 출근 한김에 같이 들어와서 회의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라고 하셨다.  


내가 회의실 한 켠에 뻘쭘하게 앉아있는 사이, 제일 젊어보이는 선배 한 분이 나에게 회의내용이 요약된 A4용지 를 준다. 읽어보니 이날 예정된 행사와 각 기자들의 발제 목록, 조간에 나온 주요 신문내용이 들어가 있다. 나는 평생 해보지도 않는 증권에 배정됐다. 화학을 전공했던 나는 코스피와 코스닥 개념도 제대로 몰랐다. 주식에 관심도 없었을 뿐더러 금융생활이라곤 체크카드 한장이 전부였고, 금융상품이라고 해봤자 5년만기 자유정기적금 하나 들어둔게 다였다.


사실 나는 들어오기 전에 이 곳이 신입 증권기자를 뽑는다는 사실을 알고 지원했다. 관련 경험은 전무했지만 그간 짧게짧게 다녔던 곳에서의 경험을 정말 영혼까지 끌어모아 부각시켜 지원했다. 그만큼 취업이 간절했고 뭘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면접날 사장님은 내게 물었다.


“너 주식 볼 줄 아나? 시황 처리할 줄 알어?”


알리가 있나. 당연히 모른다. 허나 난 이 회사는 무조건 들어가야 했다. 당시 난 정말 물러설 곳이 없었고 난 살아야 했다.


“네!!! 평소에 주식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증권기자는 제가 꼭 해보고 싶던 분야 입니다!!”


사장님께서 이력서를 꼼꼼히 검토하시더니 내게 말했다.


“쓸만한 친구같은데...그 동안 고생이 많았겠구만...”


“네!!! 일할 수만 있다면 정말 회사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출근은 바로 하는게 좋을꺼 같은데 바로 다음주부터 출근 가능한가? 그리고 우리 회사는 신입 초봉이 1800만원이야. 괜찮나?”


뭘 망설이겠나. 취업이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목적은 달성됐다. 연봉은 다음 문제다.


“네!!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 회사와 나의 인연은 시작됐다. 회사 평판이나 인지도가 어쨋든 이 곳은 내가 지금까지 기자로 일할 수 있게 첫 운을 떼 준 회사다. 어떻게 보면 열정 하나만 보고 무한 신뢰를 보내주신건데, 당시 사장님은 무작정 해보겠다고 달려든 내 이미지가 그렇게 썩 나쁘진 않으셨던 모양이다.


아침 편집회의가 끝나니 내게 회의자료를 넘겨주던 Y선배가 조용히 나를 부른다.


“야...야..일로 와봐”


최소 감자 3개가 목에 걸린 목소리였다. 김동률보다 3배는 더 낮은 것 같은 목소리로 이 선배는 날 옥상으로 끌고 갔다. 옥상에 올라가니 부동산을 담당하시는 선배가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계셨다. 흡사 중학교때 좀 논다고 하는 애들이 전학생 데리고 옥상에 올라가 군기를 잡는 것 같았다.


“담배피냐?”


“네!! 담배 피웁니다!!”


“쫄지마~ 새꺄 담배 피우자고 델고 온거야. 너 근데 여기 어떻게 해서 들어왔냐?”


“네!! 저 잡코리아 보니깐 여기 채용공고가 올라와 있어서 지원했습니다!!”


“그래? 너 ‘아랑’ 통해서 지원 한거 아니었냐?”


“네!! 저 아랑이 뭔지 잘 모릅니다!! 그냥 채용공고에 올라와서 지원했습니다!!”


선배는 한바탕 크게 웃으시더니 첩보영화에서나 나올듯한 말투로 내게 물었다.


“야 너 여기 ○○○편집국장에 대해 알어? 몰라?”


“네? 아까 아침에 뵙던 국장님 말씀이십니까?”


“그래!! 임마~ 너 걔가 여기에 대해 뭐라고 말했는지 빨리 털어놔”


“아...저 면접은 사장님과 1:1면접 봤고, 국장님이랑은 가볍게 인사만 나눈게 답니다”


“뻥 치시네~ 너 국장이 이상한 얘기 안했어? 뭐 기자가 어떻고 지가 뭐 어딜 키워놨다고”


“아...그런 얘기 없으셨습니다. 그냥 앞으로 잘 해보자는 얘기만 하셨습니다”


“그래? 암튼 네가 여기 다니다 보면 너 잘못들어왔구나 싶을꺼다”


무언가 더 이상 얘기 해주지 않는 분위기에서 그렇게 선배와의 첫 대면은 끝났다. 그리고 몰랐다. 지금 Y선배가 나에게 해주려던 얘기들이 앞으로 어떤 상황으로 다가오게 될지. 다만 이 선배를 보고 나는 첫 눈에 느낄 수 있었다.


“아... 이 선배 나랑 좀 오래 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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