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비안 Mar 20. 2018

이 시대의 김지영

실 얼마 전에 엄마 돌아가셨어.”
 아우 왜 연락 안 했어, 나는 이렇게 말하다가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내 앞에 앉은 친구의 표정이 너무 슬펐고 애처로워서. 누구에게 말 못 하고 혼자 감내했을 시간이 탄식 후 찾아온 공백에 고스란히 전해져서. 그녀는 말하지 못한 걸 미안해했다. 친구들 사정을 누구보다 십분 이해하는 속 깊은 마음은 엄마 장례식에서도 예외 없었다. 다행히 언니와 오빠 지인들 덕분에 잘 치렀다 했다. 근데 나 왜 이렇게 가슴이 허전하지, 세상에 나 혼자 남은 것 같아, 그래서 가끔 혼자서 울어.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덤덤하게 말하는 그녀 옆에서 나야말로 청승맞게 훌쩍였다.    



날의 눈물은 복합적이었다. 처음엔 고아가 된 그녀가 안쓰러워 그런 줄 알았다. 내 기억 속에 어렴풋이 남아있는 그녀의 엄마를 떠올렸다. 작고 아담한 몸매에 우리 엄마보다 조금 더 주름진 얼굴. 막내이자 늦둥이였던 그녀를 곰살맞게 맞아주곤 했다. 오래된 양옥집에서 키우던 진돗개라지만 덩치만 컸지 눈치 없이 짖던 개들에게 가족의 성을 붙여 진돌이, 진순이라 불렀던 모습까지. 그 개들은 다 죽었지? 그럼, 엄마가 요양병원 들어가기 전에 벌써 하늘나라로 갔지. 우리의 추억은 그대로인데 모두 사라지거나 죽었고 꿈 많던 사춘기 소녀들은 그녀처럼 엄마가 되었다. 임종을 못 봐서 그런 거야? 아니라고 했다. 언니도, 오빠들도 각자의 가정이 있으니까. 말 그대로 출가외인이지. 그녀의 이야기는 이랬다. 장례식이 끝나고 모두 고생했는데 누구 하나 덕담을 나누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했다. 큰 오빠가 모든 걸 진두지휘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일언반구 없었다. 언니가 챙기라고 신신당부했거늘 지켜지지 않았다. 작은 오빠는 멀리 산다는 명목으로 방관자였다. 생색내기 싫었지만 엄마를 매주 찾아가서 손잡고 말동무한 건 그녀였다. 누구도 그걸 알아주지 않았을뿐더러, 막내는 가만있으라는 소리나 들었다. 남편에겐 괜히 친정의 치부를 보일까 입밖에 내지 못했다. 벙어리 냉가슴이 되자 자연스레 자학과 자책의 시간이 찾아왔다. 지난날 막내 계집아이로서 외면당한 게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모든 걸 물려받은 큰 오빠는 오히려 네가 가장 가방 끈이 길다고 묵살해왔다. 아이들을 낳고 경력 단절된 그녀가 다시 복귀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남편은 자신이 벌어오는 경제권을 쥐고 도무지 상의하는 법이 없었다. 그가 매달 따박따박 주는 생활비 없이는 어디 가서 애들 옷 한 벌 살 수 없었다. 무슨 일 있을 때마다 내놓은 그녀의 비상금은 이미 바닥난 지 오래됐다. 



리서 보면, 그녀는 평범하고 단란한 가정의 주부였다. 알뜰해서 문제지 성실하고 아내밖에 모르는 남편, 사랑스럽고 건강한 아이들과 풍족하지 못해도 빚 없이 살았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학군 좋다고 소문난 지역이었다. 동네 지인들은 그녀의 유하고 정 많은 성격을 좋아했다. 그러나, 그녀는 정작 자신을 허울 좋은 빈 껍데기처럼 생각했다. 뭐하나 마음대로 내세울 수 없었다. 전세에서 자가로 갈아탈 기회가 있었는데, 남편은 결국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걸 불만 삼아 봤자 시부모는 도리어 남자 하는 일에 껴든다고 한 소리할 것이고, 언니는 제부가 소심하다고 욕할 게 뻔했다. 이럴 때 비상금이라도 있다면 마음껏 날았을 텐데. 큰 오빠에게 부당함을 대들고 억척같이 받아내기에 막내라는 처지도 그랬지만 그동안 지켜온 우애를 침범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잔잔한 호수 위를 유유히 떠있는 백조가 그 속에서 버티려고 얼마나 발장구를 치고 있는가! 나, 한심하지. 난 평생 말도 못 하고 맞추느라 바보처럼 살았어. 엄마 마저 없으니, 이제 내 편은 없는 것 같아. 



상에 이유 없는 인과 관계는 없는 것 같다. 우연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면 필연적으로 흘러갈 때가 있다. 때마침 나는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있었다. 이 책을 읽게 된 건 아주 뜻밖의 계기였다.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에 아는 엄마를 만났는데, 그녀는 남편과 도란도란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그러니까, 여기의 뜻은 할 말을 하고 살란 소리야. 그녀의 손가락은 책의 어느 한 구절을 가리키고 있었다. 과연 무슨 뜻일까 궁금했었는데, 그때 못하고 지금 읽는 건 친구의 하소연을 들어주려는 필연이었는지 모른다. <82년생 김지영>은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어디선가 들어본 이웃집 여자의 이야기 같기도 하고, 내 친구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구석도 있다. 김지영의 언니가 여자로서 더할 나위 없는 직업이란 추천으로 교사가 된 것처럼, 친구도 교사 집안에서 귀에 못이 막히도록 들은 덕분에 선택했다. 김지영이 남자 동기에게 밀려 새로 생긴 부서에 발탁되지 못했듯, 그녀는 여자가 꼼꼼하다는 이유로 노상 담임을 맡고 고된 서류 작업을 해야 했다. 김지영이 출산 후 회사를 퇴직한 것처럼, 그녀도 아이들을 봐줄 사람이 없어 과감히 학교를 접었다. 김지영에게 며느리에 대한 시부모의 미묘한 강요와 부응이 있었다면, 그녀 역시 명절 때마다 한평생 냉대 속에 싹튼 시어머니의 까칠한 잔소리를 감내했다. 결국 김지영을 해리성 기억장애로 이끌고 미친 여자처럼 중얼거리게 했던 것이나, 그녀의 자기 손등을 찍는 자괴감은 매 순간 여자라서 당하는 부당함이었다. 여자니까 공부를 못하거나 덜 배워도 된다는 부모는 없었지만, 1999년 남녀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이 제정되고 여성부마저 출범하면서 여자라고 성공하지 말라는 법도 없었지만, 여전히 여자는 여자였다. 양육과 가사에 있어서 여자는 절대적인 책임과 사명이 부여됐다. 설사 맞벌이라도 남편보다 바쁘다고 해도 다르지 않았다. 육아휴직을 여자가 아닌 남자가 할 수 있는 세상임에도 흔한 게 아니라 예외적인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인정받아야 하는데 애석하게도 그렇지 못했다. 가장의 권력과 시댁의 권위 앞에서 조용히 눈치 봐야 했다. 자신이 해온 것을 떳떳이 밝히지 못하고 누려야 할 것을 정당히 찾지 못했다. 그랬다간 어디서 버릇없이 배운 것이냐 치부될까 마음속으로 삭혀야 했다. 그런 건 사랑 듬뿍 받는 막내딸일 땐 미처 알지 못했다.  



는 의기소침하고 쓸쓸한 그녀에게 내색할 수 없었다. 뚝뚝 던지는 하소연에 맞장구조차 칠 수 없다. 이런 썩을 것들이란 과격한 말 대신 다른 걸 위안이랍시고 던졌다. 그래도 넌 빚은 없잖아. 난 너보다 못해. 나야말로 빛 좋은 개살구지. 그 말이 자신의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처럼 들렸을까? 금세 낯빛이 흐려졌다. 아무 말도 이어나갈 수 없었다. 한 동안 각자의 생각에 빠졌다. 조금씩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다가 헤어졌다. 하루 종일 그녀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엄마 잃은 막내딸이 처한 믿을 수 상황을 머리 속에서 하나씩 그려봤다. 미덥지 못한 친정 식구들, 속내를 털어놓을 수 없는 남편과 아이들, 어떤 버팀목을 기대할 수 없는 시부모. 그녀는 미치거나 속앓이 하지 않고 소신껏 말하고 싶었다.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줄 누군가가 그리웠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도 여전히 응석 부리고 기대고 싶었다. 조건 없이 무조건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이는 존재. 그 목소리는 결정적인 순간 너는 막내딸이고, 아이들의 엄마이며, 며느리일 뿐이라고 규정짓지 않는다. 너는 너일 뿐이다. 어려운 세상에 태어나 누군가에게 한없이 기쁨을 주었지. 지금 네 나이가 얼마고, 남들이 늦었다고 말하는 게 뭐가 중요한가? 너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궁한 가능성이 네 앞에 펼쳐 있다. 네가 원하기만 하면 뭐든 가능하다. 지금까지의 너는 그걸 충분히 증명해왔다. 그러니 분명 해낼 것이다. 그렇게 존재하는 것으로 귀하다. 그녀는 그 말이 듣고 싶은 것이다. 그게 사무치게 그리운 것이다. 그게 엄마라는 상징이다. 



금껏 나는 그녀와 다르다고 생각했었다. 그녀의 불만을 이해했지만 한편으로 누구보다 잘 살고 있지 않았느냐 했다. 그러나, 김지영이라는 코드는 분명 우리를 관통했고 그 앞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사실 나도 김지영이었다. 내가 누려왔던 것은 사실 타협이었다. 시어머니와 잘 지내고 그를 내 뜻대로 길들인 줄 알았는데, 그들이 싫어하는 것을 미리 눈치채고 알아서 하지 않았던 것이다. 육아를 위해 직장을 포기했지만, 불평등한 위치를 감수하기가 지긋지긋했던 것이다. 태생적으로 특혜가 부여된 남자가 아니라서 온전히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여자의 굴레를 귀신같이 알아챘다. 그것에 길들여지자 결정적인 순간 여자라는 게 발목 잡는 걸 알면서도 내색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런 나도 문뜩문뜩 젠더로서 고민을 앙금처럼 가라앉혔다. 그런 나와 그녀, 우리가 있는 한 이 시대의 김지영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친구와 대화하면서 그게 갑자기 터져 나왔다. 그날의 눈물은 속상하고 껄끄러우며 여전히 불공정한 응어리였다.   






만약 내 딸이 지금의 내 나이가 되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김지영의 시대가 저물고 공평한 게 당연한 세상이길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지영과 비교하고 뛰어넘는 걸 멈출 수 없을 겁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솔직할 수 없는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