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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크 Dec 21. 2017

인간의 조건

블레이드 2049 & 니어: 오토마타

오래된 명제 하나. 인간은 특별한 존재다. 눈부신 문명의 발전과 화려한 현대 기술은 이를 증명하는 단서로 받아들여진다.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아 평균수명 100세 시대에 이르기까지 기록된 역사는 그 명제에 쐐기를 박는다.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건물, 축적된 데이터로 개인의 취향을 파악하는 인공지능은 모두 인간이 이룩한 산물이다. 인간 외의 생명체는 이처럼 찬란한 문명을 이룩한 적이 없다. 그래서 누구도 ‘인간은 특별하다’는 정의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적어도 지구 위에 살아 숨 쉬는 생명체들 중에서 인간이 독보적인 ‘무엇’을 지녔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므로.


‘무엇’에 대한 규정은 다양하다. 여러 가지 단서를 모아 독자적인 결과를 내놓는 사고력과 창의력, 또는 ‘국가’의 개념 유무. 그 요인이 어떤 종류건, 인간의 특별함을 뒷받침해주는 증거로 활용된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인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독립 요인으로는 지목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라곤 인간과 침팬지의 DNA가 염기 서열만 다르고 96%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문화계에서도 ‘인간다움’의 원천을 찾는 여정은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개중에는 의도적으로 인간과 단순히 외형만 닮은 ‘인간이 아닌’ 존재를 나란히 배치해 두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작품도 많다. 외형적 차이로 인간과 다른 종을 구분하는 건 의미가 없어서일까. 그런 맥락에서 <블레이드 러너 2049>와 <니어: 오토마타>도 어찌 보면 ‘인간다움’을 정의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인 셈이다.


* 아래 문단부터는 <블레이드 러너 2049>와 <니어: 오토마타>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의심은 갈망을 키운다

블레이드 러너 2049



1982년,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는 과학 기술이 극단적으로 발전한 미래 도시의 모습을 묘사한 작품이다. 보통 과학 기술이 발달한 미래는 인간이 노동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로운 삶을 누리는 유토피아로 여겨지지만, <블레이드 러너>의 미래 도시는 사뭇 다르다. 흡사 대도시 유흥가의 밤거리 풍경인 데다 비까지 내려 잔뜩 우울하다. 우주 한복판을 배회하는 복제인간의 처지처럼. 우주 식민지 개척을 위한 노동을 대신하는 복제인간(Replicant, 레플리칸트)들은 인간과 동등한 생명체로 대우받지 못한다. 이따금 우주 식민지를 탈출해 인간의 세계에 발을 들이려는 복제인간은 '블레이드 러너'에 의해 '폐기'된다.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이 설정을 고스란히 계승한 영화다. 이 세계에서도 몇 번의 소동이 발생하지만 복제인간은 계속해서 생산된다. 단, 인간의 명령에 무조건 순종하도록 다시 프로그래밍된 ‘신모델'이 출하된다. 신모델 중 일부는 폭력 사태를 일으키고 외곽에 숨어든 구모델을 ‘폐기’하는 블레이드 러너로 활동한다. 구모델이 몇 기 남지 않은 2049년, 주인공 K는 잔존 구모델을 ‘폐기’하던 중 예상치 못한 상황에 봉착한다. 생식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 복제인간이 출산을 했다는 근거 자료를 마주친 것이다.


복제인간, 마치 인간의 역사를 답습하듯


복제인간은 인간의 위험을 대리하는 소모품이다. 인간의 노동을 그대로 이어받아야 했기에 사람의 외형을 그대로 본떴을 뿐 ‘인간성’을 가져서는 안 됐다. 복제인간이 ‘인간성’을 갖게 되는 순간 일방적인 억압 체제를 무너뜨리려 사회 혼란을 일으킬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블레이드 러너 2049> 세계의 사람들은 몇 번의 폭력 사태를 통해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고, 체제 전복을 막기 위해 복제인간에게서 몇 가지 요소를 일부러 삭제했다. 그것이 생식 능력과 감정인데, 구모델 중 생식 능력을 지닌 개체가 있다는 건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K의 의심은 이 순간부터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명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으나 거대한 파도 앞에 자신이 서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며 단서를 찾아 나선다. 호기심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순간. 어떻게 보면, 이 순간부터 K는 ‘진짜’ 인간이 된 것이다. 제작자는 알고리즘에 오류가 생겼다고 표현할지 몰라도, 자신이 특별한 존재임을 점차 확인해 나가는 K의 행보에서는 달뜬 흥분마저 느껴진다. AI 여자친구 조이의 대사는 K의 의심이 더욱 거세지도록 숨을 불어넣는다. 너는 그냥 복제인간이 아니야, 사실 특별한 존재였어, 그런 특별한 존재에게는 이름이 필요해. 하고 말이다.


그 '특별함'도 결국 공허함이 된다


순종하는 자와 거역하는 자

니어: 오토마타



<니어: 오토마타>의 안드로이드 역시 복제인간처럼 인간의 위험을 대리한다. 요르하 부대에 속한 메인 캐릭터 2B와 9S는 기계생명체가 점령한 지구를 재탈환하는 임무에 투입된다. 여기서 기계생명체는 오래전 지구에 침입한 외계인들이 생산한 일종의 군대다. 외계인들은 지구에 있는 공장을 이용해 기계생명체를 대량 생산하고 인간들을 달로 내몬다.


한때 인간의 행성이었던 지구는 안드로이드와 기계생명체가 대치하는 전쟁터로 변모한다. 흥미로운 점은 주인공인 안드로이드와 기계생명체 모두 인간과 외계인, 즉 창조자에 의해 위험한 임무를 억지로 부여받은 장기말에 불과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들은 서로 왜 싸우는지도 모르는 채 각자의 주인을 위해 움직인다. 단, 아담과 이브라는 기계생명체가 ‘탄생’하기 전까지.


아담과 이브의 질문은 상당히 철학적이다


아담과 이브는 ‘탄생’한 순간부터 2B에게 끊임없이 질문한다. 우리는 왜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지, 왜 싸우는지, 그리고 어째서 죽지 않는지. 네트워크에 백업 데이터만 남아 있다면 죽어도 죽은 게 아닌 그들에게는 생소한 문답이다. 그리고 아담은 이내 인간의 역사에 매료되어 창조주를 거스르고 죽음을 선택한다. 인간을 모방하는 행위를 넘어 진짜 ‘인간성’을 획득하기 위해서. 2B는 그 순간에도 인간에 순종한다.



인간다움은

성역이 아니다

<블레이드 러너 2049>와 <니어: 오토마타>의 시선은 각각 복제인간과 안드로이드의 내면으로 향한다.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 생각했지만, 그 기대가 깨진 후 모든 것을 내려놓는 K. 그리고 부서진 9S 앞에서 눈물 흘리는 2B. 그 렌즈 속에서 관객은 어느 순간 그들이 인간이 아님을 잊게 된다. 이미 그들은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존재로 태어났으니까.


<니어: 오토마타> 속에서 스스로 비폭력을 선언하고 평화를 원하는 기계생명체를 모아 군집을 이룬 파스칼, 그리고 요르하 부대 지도부에 대한 의심을 품는 9S의 모습은 인간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심지어 기계생명체들은 인간의 추한 모습도 투사한다. 사이비 종교에 목숨을 바치고 카미카제를 조직한다.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적’을 목도하고 혁명단을 조직하는 복제인간들의 눈빛에서는 변화를 향한 의지가 느껴진다.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인간성’을 획득하고 있는 그들을, 어느 누가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까.


외형이야말로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 것


두 작품은 하나의 공통된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끊임없이 가치를 부여하는 ‘인간성’은 대수롭지 않은 것일 수 있다는 것. ‘인간성’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은 유구한 역사를 이어온, 특별하고 싶었던 인류의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블레이드 러너 2049> 마지막 장면, K의 표정에서 읽히는 끝없는 허무함과 먹먹함을 담아내는 앵글은 두 작품을 마주한 우리의 모습을 비추는 것일지도 모른다. 존엄, 가치, 특별함에 얽매여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인간 역시 거대한 우주의 하나일 뿐인데.


* 이 글은 게임 전문 매체 <게임어바웃>의 비정기 연재 코너 '패드앤팝콘'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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