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생겼다는 말은 리치맨을 춤추게 한다. 리치는 활짝 웃으며 손님을 맞아들였다. 방금 시골에서 상경한 듯 구겨진 옷에 보따리를 주렁주렁 든 중년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편의점이 신기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이고, 물건도 많고 깔끔하고 화려하니 참 보기 좋다.”
리치는 당장 주저앉을 듯 휘청거리는 손님에게 의자를 권했다. 손님은 서울 오는 길이 멀고 험하다며 혀를 내둘렀다. 생수 한 병을 사서 들이키고 나서야 비로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손님이 휴대폰에 적어 온 학원 이름이 지원이 다니는 곳이었다.
"여기서 글짓기 가르친다고 했어요." 손님의 말에 리치는 감을 잡았다.
"집 주소는 모르세요?" 물으니 무안한 얼굴을 했다.
따로 알려주지 않았는데, 동네는 여기가 맞다고 하고. 따님 사진을 보여달라니 스마트폰이 아닌 지갑에서 꺼낸 진짜 사진을 보여주며 어린 시절 것밖에 없다고 했다. 사진 속 꼬마는 비록 앞니가 빠지고 없었지만, 지원이 분명했다.
“우리 지원이 친구였어요? 아이고, 세상에! 서울 바닥도 참 좁네. 여기서 우리 딸 친구를 다 만나고.”
엄마는 리치의 손을 덥석 잡았다. 리치도 엄마의 손을 마주 잡았다. 두 사람은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 딸, 어떻게 지내요? 밥은 잘 먹나 몰라. 대학 간다고 올라가서는 한 번도 오질 않아서. 취직해서 바쁘다며 명절에도 안 오고, 전화도 잘 안 하고, 잘 받지도 않고…. 글쎄 어제는 꿈을 꿨는데 얘가 엄마 배고파, 하면서 울잖아. 안 올 수가 없었네, 차마.”
엄마의 목소리에 물기가 어렸다. 주름진 손에는 화상과 굳은살이 가득했다. 리치는 엄마의 손을 토닥여 주었다.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지원은 오지 않았다. 톡과 문자를 보내도 읽지 않았다. 리치는 엄마만 두고 갈 수가 없었다.
엄마는 편의점 바깥 플라스틱 테이블에 앉아 하염없이 지원을 기다렸다.
리치는 그 앞에 앉았다. 지원이 씩씩하게 잘 지낸다는 것, 동화책을 실감 나게 읽어주어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다는 것, 편의점에서 맥주는 절대 사지 않으며 싱싱한 샐러드와 영양 만점 도시락을 사간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엄마는 한 마디도 놓치지 않을세라 딸의 소식을 귀담아 들었다.
*
결국 두 시간이나 늦게 끝났다. 수당도 받지 못하는 야근을 했다는 게 짜증스러웠다. 모른 척하는 원장도, 일찌감치 가버린 부원장도, 징징거리는 수학도 꼴 보기 싫었다.
‘때려치우고 싶어.’
지원은 홧김에 뽑은 사직서를 꺼냈다. 원장 책상에 내려놓고 내일부터 출근하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했지만, 결국 들고 나왔다. 언젠가는 사직서를 멋지게 내던질 날이 올까. 하지만 그 후에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리치와 했던 채팅이 떠올랐다. 어떤 물고기는 어항에 넣으면 딱 그만큼만 자란다. 그런데 바다에 넣으면 커다란 고래가 된다. 지원 또한 어항에 갇힌 물고기인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바다로 가는 길을 모르는데.”
버스에 내려 터덜터덜 집으로 가는 길에, 리치를 만났다. 지원을 알아본 리치가 버럭 화를 냈다. 도대체 이 시간까지 뭐 하는 거야! 문자도 안 보고, 전화는 또 왜 안 받아! 지원은 팔팔 뛰는 리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싸우기도 귀찮았다. 배터리가 떨어졌다고 대충 대꾸하고 돌아서려 했다. 그때였다. 익숙한 목소리가 발목을 붙잡았다.
“지원아!”
“엄마? 엄마가 왜 여깄어?”
지원은 파르르 떨었다. 뜨거운 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열이 올랐다. 마음속 깊은 데부터 까닭 모를 분노가 치밀었다. 황급히 가방 속 라이터를 찾아 주먹에 꽉 쥐었다. 그러지 않으면 소리를 지를 것 같았다.
지원의 기분을 알 리 없는 엄마는 반가움에 어쩔 줄 몰랐다. 딸을 쓰다듬고, 보따리를 내밀고, 식구들 소식을 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네 오빠는 취직했어. 다음 달부터 일 나간대. 머리 좀 식히고 다시 공부한다고 하더라. 생산직이라 걱정이긴 한데, 워낙 똑똑한 애니까. 아, 그리고 네 언니는….”
지원은 엄마의 손길을 밀어냈다.
“엄마, 집에 가. 왜 맘대로 왔어, 부르지도 않았는데.”
목소리가 거칠게 갈라졌다.
어머머, 이 나쁜 지지배! 세상 못된 불효녀! 리치가 지원의 등짝을 찰싹 후려갈겼다.
“어머니, 지원이가 오늘 피곤한가 봐요. 이해해 주세요.”
리치가 대신 사과를 하자, 엄마는 안쓰러운 얼굴을 했다.
“그래, 얼굴 봤으니까 갈게. 이거 반찬이니까 냉장고에 두고 먹어. 미남 총각, 오늘 고마웠어요. 다음에 지원이랑 같이 내려와요. 맛있는 두부전골 대접하고 싶어서 그래.”
리치와 엄마가 요란한 이별식을 하는 동안에도 지원은 이를 악문 채 말이 없었다. 터미널까지 모셔다 드린다는 리치를 만류하고, 엄마는 등을 돌렸다. 발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지원은 우뚝 서 있었다.
“야! 너 미쳤어? 너희 엄마, 아까부터 와서 쫄쫄 굶은 채로 기다리셨어, 너랑 밥 먹는다고. 최소한 집 구경은 시켜드려야 할 거 아냐. 어떻게 그냥 보내? 와, 안지원 그렇게 안 봤는데 완전 개싸가지네!”
리치가 매섭게 지원을 몰아붙였다. 지원은 엄마가 주고 간 보따리를 리치에게 떠넘겼다.
“이거 너 먹어, 난 안 먹어.”
“대박… 누굴 양아치로 아나. 야, 내가 너한테 술은 얻어먹어도 엄마 반찬까지 뺏어 먹진 않아. 먹든 말든 일단 집에 가져가고, 내일 다시 얘기해. 너 지금 얼굴이 말이 아냐. 귀신같아.”
리치의 성화에 못 이겨 보따리를 들고 왔으나, 쳐다보기도 싫었다.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놔두었다. 지원은 화장을 지우고, 샤워를 했다. 이불에 기대어 차가운 맥주를 꺼냈다. 오늘 하루가 꿈만 같았다. 그동안 엄마는 지원에게 와준 적이 없었다. 입학식에도, 졸업식에도 오지 않았다. 그런 엄마가 서울에 오다니,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왜 왔어, 아직 서울에서 자리도 제대로 못 잡았는데…. 나 이렇게 좁은 원룸에서 사는 거 보면 속상할 거면서. 월급이 빠듯해서 용돈도 못 부쳐주는데. 이런 거지 같은 꼴 보여주기 싫단 말이야. 가뜩이나 힘든데 뭐 하러 와서 사람을 힘들게 해? 엄마가 언제 그렇게 나를 찾았다고….”
지원은 젖은 머리를 움켜쥐었다.
보자기로 꽁꽁 싸맨 보따리 귀퉁이에서 기름이 배어 나왔다. 음식물 쓰레기로 버린다 해도 정리를 해야 한다. 지원은 한숨을 쉬며 매듭을 풀어헤쳤다. 보나 마나 두부일 것이다. 엄마 아빠가 만든 두부만큼은 결코 먹고 싶지 않았다. 보기만 해도 목구멍이 턱 막힐 것 같았다. 내일 리치를 주던지, 학원에 가져가서 나누던지 해야겠다.
“두부가… 아니네.”
깔끔하고 정갈한 반찬이었다. 노른자를 뺀 새하얀 계란말이, 갓 담은 배추김치, 돼지고기 장조림, 오징어채무침, 빨갛게 볶은 어묵까지. 다 지원이 좋아하는 반찬이었다. 가끔 엄마가 만들어 주면 맛있어서 볼이 터져라 우물거렸다. 동생과 싸우다시피 마지막 한 입을 위해 필사적으로 젓가락질을 했다. 엄마는 천천히 먹으라고 잔소리를 하면서도 슬쩍 그릇을 가까이 밀어주었다.
지원은 반찬 그릇을 착착 포개 냉장고에 넣었다. 참기름 냄새를 맡으니, 꼬르륵 소리가 났다. 그러고 보니 오늘 저녁을 먹지 못했다. 집에 와서 라면이나 끓여 먹으려고 했다. 반찬이 잔뜩 생겼으니, 즉석밥만 데우면 되었다. 그러나 지원은 선뜻 움직이지 못했다. 후루룩 먹어 치우기엔 너무 아까웠다. 리치가 말하길, 엄마도 내내 굶었다고 했다. 지원은 차마 손대지 못하고 마치 풍경화를 보듯이 그리웠던 반찬을 보고 또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