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언니가 들려주는 사는 이야기

살면서 조금 미리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이야기

by 애나

30대는 내가 인생에서 가장 기대하던 시간이었다. 서른이 되기 전까지의 내 인생을 돌아보았을 때 남들과는 약간 다른 시간을 보내기는 했지만(대학 1학년의 휴학, 대학원 생활을 거친 미국 유학 그리고 박사과정을 그만두고 한국에 돌아와 치열한 취업 전선에 대해 1도 모르고 뛰어들어 직장인이 되기까지), 30대가 시작되었을 때는 남들과 비슷한 인생을 살게 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누구나 알 만한 큰 회사에 입사했고 사고 치는 가족도 없었으며 딱히 비혼주의자도 아니었기에 평범한 연애 후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인생을 살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생각은 30을 지나 40대에 들어서 보니 어찌나 안일한 생각이었던지 황당할 따름이다.


조직이 큰 회사에 들어가서야 내가 한국의 기업 문화에 얼마나 맞지 않는 사람인지 알게 되었고, 더불어 정규 교육 과정을 거쳐 대학원을 지나 유학까지 다녀오면서도 얼마나 내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직장에서 10년 넘게 여자라는 이유로 배제당하고 대기업의 중간관리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남자 집단의 불합리와 가스라이팅에 순응하며 회사를 백번도 넘게 나가고 싶었지만 내 인생을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나에게 매달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은 쉽게 포기하기 어려운 유혹이었고, 그래도 이만하면 좋은 삶이라고 자위하며 지나간 세월이 어느덧 14년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완전히 번아웃이 되어 골골거리는 중년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나에게도 좋은 롤모델이 있었다면 인생이 조금은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런 롤모델이 있었다 하더라도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았을 거라는 보장은 없고, 성격상 지나간 일에 대해 후회를 많이 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했던 선택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속상해하진 않지만 그래도 내가 고민할 때 누군가 조언이 아니라 내가 살아보니 이렇더라, 이런 상황에는 이런 일도 일어나더라 하고 얘기해주고 공감해주는 나보다 앞서 비슷한 길을 갔던 선배가 있었더라면 내가 여자 엔지니어로써 대기업 큰 조직에서 살아가는 일이 조금은 덜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물론 당연히 그런 선배들이 없진 않았지만, 회사에서 경험을 널리 공유하는 여성들 중 많은 성공한 여자들(슈퍼우먼이 되기 위해 본인의 가족을 포기하거나 또는 명예 남성화된 선배들)의 사례 또한 남성 중심적 사고에 입각한 것이기에 기대하고 찾아보았다가 실망했던 사례가 많았다.


나는 뛰어난 글재주도 없고 누군가에게 조언할 만한 위치도 되지 못하지만 그냥 이제까지 내가 살아온 인생 중에 특히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들, 그리고 나만 이런 불합리를 겪고 있나 고민하고 있는 이들이 내가 쓴 글을 보면서 나의 잘못 아니라고, 당신만 그런 일을 겪는 게 아니구나 공감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더불어 그것이 작은 위로가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