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건 나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를 읽고

by 애나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는 3년 전에 산 책이었다. 중간에 몇 번 시작은 했었는데, 왜인지 항상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 이 책의 저자는 허지원교수님으로 뇌과학자이자 임상심리학자이다. 따라서 이 책은 다른 비슷한 목적의 책들과 달리 마음이 부서진 상태에 있는 사람들의 뇌가 어떤 상태이기 때문에 우울하거나 무기력한 것인지 뇌 MRI 등의 과학적인 데이터와 함께 상담자들의 구체적인 예시를 바탕으로 쓰여 있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으면서 감정적으로 힘든 상황에 내가 어떤 태도를 취하면서 극복해 나가야 하는지 상담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은 여러 가지 일들로 무너지고 있던 내게 필요한 책이었고, 많이 안정되었다고 생각하는 지금도 필요한 책이다. 물론 책 속에 등장하는 내담자들만큼 극단적인 상황에 놓여있는 건 아니지만(이건 내가 판단하는 나일뿐, 전문가의 입장은 다를지도), 그들이 가진 자존감/완벽주의자 성향/애정 결핍과 관련된 문제는 일정 부분 내 안에서 나를 괴롭히는 것들이다. 그래서 읽을 때마다 내가 왜 이런 상태에 놓이게 되었는지, 그것이 내 잘못이 아닌 뇌의 당연한 반응이니 자책하지 말라고 하는 말들이 마음의 위로가 되는 동시에 나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왜 나는 무려 3년간 이 책을 여러 번 시작하고 끝내 마무리 짓지는 못했을까? 아마도 그 이유는 나의 회피성향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 자신을/지금의 상황을 직시하고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말하고 생각하면서도 이 책을 읽으며 필연적으로 마주해야 하는 내 안의 우울을 확인하게 되면 나 자신이 나를 해치게 될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위로가 되는 한편으로 나의 가장 나약한 부분을 투영하는 이 책을 끝까지 볼 수 없었던 것 같다.


지난 1년간 우울에 따른 무기력과 억지로라도 쥐어짜 낸 희망을 반복하며 살았다. 그리고 의도했지만 의도보다 길어진 앞으로의 1년을 지난 1년과 같은 시간으로 살기는 싫다고 생각했다. 더하여 이 나이 먹어서까지 극복하지도, 그렇다고 끊어내지도 못하는 관계에 또다시 상처받고 원망하고 포기하면서 생긴 내면의 상처가 지긋지긋해졌다. 그래서 다시 한번 이 책을 집어 들었고, 훨씬 이전에 알아야 했던, 마음이 부서질 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워줄 말들에 큰 위로를 받았다.


사실 휴직을 하고 그 이유가 번아웃이라고, 이 번아웃은 무엇/누구 때문인 것 같다고 말하고 생각했지만, 속으로는 나에게 실망하고 자책하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특별히 인생을 살면서 신체적 학대나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도 않았고, 원가족으로부터 받았다고 생각하는 정서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이 나의 이기심에 기반한 것은 아닌지 괴로워하고, 크게 자랑스럽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뒤쳐지도 않는 스펙과 직장에서 남들 다 겪는 일상적인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이렇게 힘들어하는 것 자체가 배부른 투정은 아닌지 하는 마음. 하지만 나는 또 가장 중요한 부분을 간과하고 있었다. 남들과 비교되는/남들이 생각하는 기준이 아니라 내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받은 정서적 상처와 그지 같은 회사에서의 관계가 나에게 깊은 내면의 상처를 남겼다는 것. 그것은 다른 이들의 경험과 비교될 수 없는 것이고, 그로 인해 괴로워하는 것이 내가 나약해서가 아니라는 것.


이 책이 더욱 깊이 와닿는 이유는 우울한 사람들에게 무근본의 해법이나 무조건적인 위로를 보내는 것이 아닌 뇌과학 연구의 결과를 바탕으로 우리가 괴로워하는 우울/감정의 원인을 짚어주고(내가 불안할 때 뇌의 어떤 부분이 활성화된다거나, 기능이 저하된다거나 하는 정보), 임상심리학자의 관점에서 현재 나를 괴롭히는 문제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 구체적 대안을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물론 그 대안이라는 것이 궁극적으로 보면 누구나 다 아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누구나 듣기 좋은 말들의 나열이 아닌 작가님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담백한 말투라 나에게는 울림이 더 컸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 내 탓이 아니라는 것."


참 쉬운 이 진리를 나는 마음이 무너질 때마다 잊게 된다. 그리고 반복되는 무기력에 빠지고, 평생 절대 용서하지 못한 사람들을 떠올리고 탓하는 악순환을 시작한다. 나약하다거나 또 시작이라고 지겹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이렇게 생겨먹은 걸. 하지만 계속 그 안에 갇혀있겠다는 것은 아니다. 허지원 박사님이 해주는 조언에 따라 그 기간을 줄이거나 부정적 감정들을 없애도록 노력한다.


"이제 당신이 당신의 양육자입니다. 애쓰지 맙시다. 그냥 할 수 있는 노력을 합시다.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삶의 의미가 뭐 그렇게 중요해요? 저도 매일 수습하면서 그냥 사는 거예요. 무엇이든 좋으니 당신 자신을 챙기세요. 당신은 당신의 인생을 살아요. 누굴 위해 살지 말아요. 당신이 행복해지는 것이 최우선이에요."


그리고 가장 잊지 말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


"자신에 대해 함부로 아무렇게나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덧, 누군가는 이 글을 보며 왜 맨날 똑같은 타령이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뭐 대부분은 그럴 만한 관심도 없겠지만...) 하지만 사람이 원래 그런 것인지, 내가 유독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부정적 마음과 무기력, 우울은 글 한편을 읽거나 쓰는 것으로 사라지지 않기에 계속해서 같은 얘기를 반복하게 된다. 그냥 누구든 그런 생각을 했다면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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