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이 꼭 특별한 날이어야 할까요?
내 생일은 일 년 중 가장 찬란한 달 4월의 네 번째 날이다. 죽을 사(死)와 음이 같다고 예부터 불길하다고 여겨지는 숫자가 반복되는 날이지만 별로 신경 쓰이진 않는다. 오히려 그런 이유로 지인은 물론 그리 친하지 않은 사람들도 내 생일은 잊지 않고 축하해 주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것들과 별개로 생일이 언젠가부터 그렇게 특별한 날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니 오히려 그냥 남들 모르게 조용히 넘어갔으면 좋겠는 날이다.
아마도 이런 생각이 처음 마음에 자리 잡게 된 계기는 사춘기 즈음의 어느 생일날 엄마의 한마디였던 것 같다. 내 생일을 아는지 모르는지 저녁이 다 되어가는 시간 섭섭한 마음에 뾰로통해있는 내게 엄마가 한마디 하셨다. "생일이 무슨 대수라고..." (정확한 워딩을 기억나지 않으나 비슷한 뉘앙스의 말이었다.) 아마 그날 나의 투정이 심했을 수도, 엄마에게 다른 기분 나쁜 일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 이후 나는 집에서 생일을 특별히 티 내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생일을 그냥 넘어간 건 아니었지만(기본적으로 미역국을 끓여주거나 선물이나 용돈은 받았다), 어쨌든 그 이후 적어도 가족에게 생일에 뭔가 바라진 않았던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웃긴 건 한창 생일을 기다렸을 어린 시절엔 바쁘다는 이유로 얼굴도 볼 수 없던 부(父)는 나이가 들면서 가족들의 생일날에 둘러않아 꼭 케이크에 촛불 켜고 노래도 부르고 싶어 하셨고, 어느 해 생일엔 엄마가 내가 당연히 가족과 저녁식사를 할 줄 알았다고 말해서 나를 조금은 뜨악하게 만들었다. 우리 집은 뭐든 가족은 함께! 라기보다는 독립적으로 각자도생의 분위기이기에 더욱 그랬다. 사실 위의 생일 에피소드도 섭섭하긴 했겠지만 그렇게 특별히 기억에 남아있진 않았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 생일이나 기념일 등에 그렇게 집착하지 않는 내가 어딘가 이상한가 생각하다가 기억이 난 것이었다. 부모님이 이런 상황을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어린 시절의 기억이나 경험(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은 이렇게나 한 사람의 가치관에 영향을 미치는가 보다.
물론 생일날의 좋은 기억들은 많다. 고등학교 시절 수학여행과 겹쳤던 생일날 경주의 숙소(지금 생각해 보면 감옥에 가까운)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친구들이 깜짝 파티를 해주어 울기도 했고(물론 기뻐서!), 대학시절 친구들과 맛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으며, 대학원생 시절엔 알러지 약 때문에 병든 닭마냥 졸면서 랩에서 나가기를 거부하여 깜짝 생일파티를 준비하던 후배들을 초조하게 만들었던 일 등등 즐거운 기억이 많다.
하지만 입사 후 부서 사람들이 챙겨주는 생일 파티는 고맙긴 했지만 쑥스럽다는 감정이 더 컸다. 그리고 그즈음을 기점으로 생일에 크고 작은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들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차라리 사람들이 모른 채 넘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앞서 말했듯이 생일의 날짜가 기억하기 쉬울뿐더러 회사 근태 시스템에는 친히 부서의 생일자를 공지해주기도 한다...), 언젠가부터는 일부러 짧은 여행을 계획하거나(가족 및 주변 지인들로부터 멀어지기가 목적) 그냥 연차를 내고 쉬어갔다. (회사 사람들에게서 멀어지기 위한 목적. 몇몇 사람들은 의무감처럼 남의 생일을 꼭 챙겨야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고맙긴 하지만 나는 정말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진지하게 그냥 넘어가면 좋겠다고 했음에도 꼭 일을 벌이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챙겨줬던 당사자들은 호의를 거절당했다고,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호의라는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가끔 나와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이 생일 주간을 운운하며 SNS에 과시하듯 사진을 올리는 것을 보면서 그들의 체력과 열정에 감탄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생각한다. 나에게도 앞으로 생일이 무조건적으로 즐거운 날이 될 때가 올까? 답은 '아니오'일 것이다. 팬데믹 이후로 생일에 일상에서 멀어지는 것이 어려워졌고,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 지난해엔 생일의 끝을 눈물로 마무리 지었는데, 올해 생일은 의도치 않게 핫플에서 밥도 먹고 무탈한 날을 보냈다. 그래, 나에게 생일은 이 정도면 좋은 그런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