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 한달살기 3
보령에는 9가지 경치가 있다.
그중 첫 번째는 바로 '대천 해수욕장'
대천 해수욕장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패각분(조개껍질)으로만 이루어진 백사장이다.
사계절 축제의 현장이라고 한다.
오늘은 그곳에 가보기로 했다.
한달살기 숙소에서 대천항 둘레길을 따라 걷다 보면 대천 해수욕장이 나온다.
아이들은 씽씽이를 타고, 나는 물놀이 용품을 이것저것 챙겨서 걸어본다.
대천 해수욕장.
이름만 들어보았지, 40년 동안 단 한 번도 이곳에 온 기억이 없다.
한달살기를 하며 말만 들었던 대천 해수욕장을 찾는다.
생각보다 백사장 길이가 길다.
검색해보니 백사장 길이가 무려 3.5km다.
내게 너무나도 익숙한 해운대 백사장은 1.5km인데, 무려 2배 이상이 길다.
정말 규모가 어마어마한 편이다.
고향인 부산이라 해운대 해수욕장을 수도 없이 가보아서 인지, 그곳이 비교하는 중심이 되어버렸다.
주말이라 그런지 가족 단위의 방문객들이 많다.
학생들도 많고, 연인들도 간간히 보인다.
하지만 대천 해수욕장이 워낙 길어서 붐빈다는 인상은 없다.
대천 바다가 보이는 흔들 그네 의자에서 준비해온 샌드위치와 우유를 먹는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나오느라 아침도 못 먹은 둥이들을 위한 간단한 요깃거리다.
그리고 우리는 '플로깅'을 시작했다.
플로깅이란 조깅을 하면서 동시에 쓰레기를 줍는 운동으로, 스웨덴에서 시작돼 북유럽을 중심으로 확산됐다. 플로깅은 건강과 환경을 동시에 챙길 수 있다는 점에서 홈스쿨인 우리 가족에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는 '줍다'와 '조깅'을 결합한 '줍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우리가 지구를 지킨다니, 그럼 슈퍼맨 같은 거네요?
환경을 지키기 위한 작은 실천에 동참하자는 취지를 아이들은 나름의 해석을 하다니 재미있다.
준비해온 1회용 비닐장갑을 끼고서 백사장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쓰레기를 줍는다.
바다에서 마냥 놀기보다는 우리가 한 달 살기를 하는 동안에 환경과 자연을 지키는 마음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다.
마침 아이들은 재미있는 게임을 하듯 백사장 구석구석에서 쓰레기를 잘도 찾아온다.
폭죽놀이를 해서인지 폭죽의 잔해들과 빈 플라스틱 물병이 가장 많았다.
그래도 자원봉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부지런히 쓰레기를 주우셔서일까?
그다지 쓰레기가 많지는 않다.
깨끗하고 쾌적한 대천 해수욕장이다.
플로깅도 마쳤으니 아이들은 본격적으로 바다에서 놀기 시작한다.
아직 5월 초라 바닷물은 차갑고 바람은 세다.
하지만 날씨를 운운하며 몸을 사리는 건 어른뿐이다.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차가운 바다에 던진다.
몸을 흠뻑 젖혀가며 파도와 놀더니 불가사리를 잡아온다.
'별불가사리'라고 불린단다.
이름 그대로 이 생물은 색깔이 참 곱다.
아이들이 노는 동안 나는 모래사장에서 돗자리를 펴고, 준비해 온 따듯한 차를 마셔본다.
바다를 바라보며 마시는 차는 꽤 근사하다.
이보다 더 좋은 뷰가 있을까?
그리고 책을 읽는다.
내 시야에 보이는 것은 책.
푸른 바다와 하늘.
그리고 사랑하는 아이들.
행복하다.
행복이 별거 있나?
이런 게 진짜 행복이지.
그동안 몸과 마음이 참 바빴었다.
쫓기듯 열심히 살아왔다.
아등바등하던 삶에서 잠시 멈춤을 선언하고 지금은 보령에서 한달살기를 하고 있다.
잘했다 싶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나 자신을 돌보아야 함을 절실하게 느낀다.
물놀이를 어느 정도 한 아이들은 이제는 모래사장의 땅을 파기 시작한다.
"삽이 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내게
"삽 대신 손으로 파는 그 느낌이 더 좋아요!"라고 응수하는 아이들.
'그래 촉촉한 바다 모래를 손으로 파는 느낌이 좋지! 마음껏 즐겨봐라!'
우린 한달 살기 중이니까!
한달살기를 하며 나도 모르게 마음이 넉넉해진다.
배가 고파진 우리는 준비해온 도시락을 먹었다.
오늘의 도시락 메뉴는 바로 스팸 무수비!
스팸과 밥으로만 이루어진 간단한 메뉴라 준비하기에 부담도 없다.
잔잔한 서해 바다를 바라보며 먹는 무수비는 정말 꿀맛이다.
혹시 몰라 넉넉히 준비해 갔는데도 아이들은 모두 먹어치웠다.
그리고 또다시 이어지는 모래 파기!
오전 10시에 나왔는데 어느새 오후 5시가 다 되어 간다.
무려 5시간 동안 모래 구덩이를 판 것 같다.
"얘들아 이제 집에 가야지!"
"엄마 더 놀고 싶어요. 아쉬워요"
충분히 놀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아쉬운가 보다.
"우린 또 오면 되잖아."
맞다! 우리는 지금 한달살기 중이지?
오늘도 보령 한달살기의 하루는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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