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손 악기점을 둘러보고 린다의 방에 들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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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알자스식 식사를 마치고 린다의 집으로 가기 전 미셸손(Michelsonne) 악기점을 경유했다.
린다 미셸의 집안은 미셸손 장난감 피아노 공장이 화재로 소실된 이후 오랫동안 재건을 위해 노력하였고 공장의 이름은 미셸손 악기점으로 다시 태어났다.
다만 현재 린다와 브리짓은 미셸손 악기점을 직접 운영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이 사장으로 운영하고 있다.
미셸손 토이 피아노만 판매했던 과거와 달리 미셸손 악기점은 야마하와 롤랜드의 전자피아노를 비롯하여 여러 전자 악기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기타를 구매하기 위해 시연을 하고 있던 손님의 연주를 잠시 구경하고 악기점을 둘러보던 도중 반가운 책이 보였다.
바로 내가 린다 미셸과 본격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은 계기가 된 책 ‘작은 피아노 미셸손의 위대한 역사’가 놓여있었다.
생각해보면 미셸손의 이름을 그대로 이어 받은 곳이니 한권 쯤 있을법했다.
내가 책을 보고 반가워하자 린다는 현 미셸손 사장님과 넷이서 사진을 찍자고 제안했고 나는 기꺼이 받아들였다.
사장님과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린다의 집으로 갔다. 다시 도착한 린다의 집에 들어서자 카페트에 누워서 일광욕을 하고 있던 리루가 다른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들고 있던 옷가지와 짐을 거실 한켠에 두고 린다의 안내를 따라 그녀의 방으로 들어섰다.
드디어 린다 미셸의 방에
도달했다.
방문을 열자 앤틱한 의자와 테이블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보존하고 있는 방이 아니라 생활감이 보이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방에 들어서자마자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테이블 옆 창가쪽 책장에 책으로만 보던 미셸손 피아노의 변천사를 그대로 알 수 있는 실물 악기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종은 물론이고 책에 수록되지 않은 희귀한 악기들이 건반을 내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들어오면서 많은 것들을 물어보려 했으나 순간 말문이 막혀서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악기들을 살펴보는데 집중했다. 린다와 브리짓은 그런 나를 자상하게 지켜봐주었다.
곧 나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입을 열었다. 그러나 내가 이 방에 처음 들어와서 내뱉은 말들은 감탄사의 연속뿐이었다.
정말 멋져요, 놀라워요, 귀여워요.
린다는 그런 나를 보면서 능숙하게 악기 소개를 시작했다.
이 분홍색 악기는 미셸손 피아노 공장에서 최초로 생산한 초기 모델이다.
1940년대에 생산된 이 피아노는 분홍색과 파란색 두 종류의 컬러가 있는데 분홍색은 여자아이들용이며 파란색은 남자아이들의 악기로 판매했다고 한다.
초기 모델의 특징은 검정건반이 색깔만 칠해진 페이크 건반이었으며 내부의 쇠막대기를 제외하고 모두 나무로 만들었다고 한다.
특히 악기 내부의 나무 해머는 빅터 미셸이 직접 깎아서 제작했다고 하는데 이 말을 하는 린다의 표정에서 자부심이 느껴졌다.
초기 모델 이후 미셸손 피아노 공장은 다양한 디자인과 크기의 악기들 생산했다.
악기의 형태와 소리를 계속 연구해서 발전된 피아노를 만들었다. 말 그대로 1 옥타브짜리 쁘띠 사이즈의 악기들부터 당시 프랑스의 뮤지션들이 눈독 들일 정도로 연주에 적절한 건반수와 휴대성, 음색은 물론 디자인까지 무엇하나 손색 없는 피아노들이 탄생했다.
악기가 발전함에 따라 나무로만 만들던 미셸손 피아노는 건반이나 해머 등이 플라스틱으로 교체가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틀은 나무로 제작한다는 원칙은 지켰다.
악기의 디자인이 다양하게 바뀐만큼 로고 디자인도 조금씩 바뀌었다.
책장에는 로고를 찍어내던 도장들도 잘 보존이 되어 있었다. 나중에 든 생각이지만 집에 있는 책을 가져와서 미셸손 도장을 찍어왔으면 좋았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미셸손 토이 피아노의 구성품도 함께 보여주었다.
토이피아노용 악보와 카탈로그, 스티커 등이었는데 빅터 미셸은 홍보물에 자신의 사랑스러운 두 딸을 모델로 채용했다. 사진속의 어린 린다와 브리짓은 어릴적부터 미셸손 피아노와 함께였다.
그리고 분홍색 스티커에는 재밌는 일화가 있었다.
원래 처음 제작된 스티커의 색깔은 초록색이었는데 아무도 녹색 스티커를 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옛날 프랑스 사람들은 초록색이 불행을 가져다준다고 믿었기 떄문이다. 그래서 결국 녹색 스티커는 단종이 되고 분홍색 스티커를 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스티커에 대한 설명을 마친 린다는 스티커와 악보를 소분하더니 나에게 선물이라며 건내주었다.
나는 행복한 기분으로 사양 없이 받았다.
테이블 옆에는 린다가 낸 책의 표지와 수록된 사진들로 브로마이드를 만들어서 벽에 붙여놓았고 그랜드 타입의 피아노와 작은 피아노들로 포토존을 꾸며놓았다.
브로마이드의 사진들은 미셸손 피아노의 모델이었던 브리짓과 린다의 사진 및 미셸손 피아노를 자신의 음악활동에 사용한 뮤지션들의 사진이 함께 있었는데, 토이 피아노의 여왕인 마가렛 렝 탄은 물론이고 몇몇 아는 연주자들이 눈에 띄었다.
그들 중 셀레스타 이후 폴란드에 가서 방문할 뮤지션인 파웰 로만슈크(Pawel Romanczuk)의 사진이 있길래 반가움에 이야기를 나눴다. 그 또한 린다의 방을 방문한적이 있었고 파웰 또한 프랑스어와 폴란드어를 구사하는 친구와 함께 왔다고 했다. 린다의 기억속에 그는 매우 유쾌한 사람이었고 나 또한 프랑스 일정 이후 폴란드 일정에 대한 기대감이 올라갔다.
내가 포토존을 들여다보는 동안 브리짓은 서랍장을 열고 서류뭉치를 꺼내 들어 테이블위에 올렸다.
나는 테이블로 시선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