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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윤 Oct 04. 2018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서

애벌레가 잎을 갉아먹고 있었다. 위에서 아래로, 다시 위에서 아래로. 잎은 조금씩 세상에서 사라져 갔고, 먹을 만큼 먹었는지 애벌레도 뒷걸음질로 물러갔다. 바람이 불자 깊게 파인 잎은 다른 잎들과는 다르게 파르르 떨리는 듯 보였다. 그때였다. 애벌레가 먹어버린 딱 그만큼의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나타났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자그마한 허공일지라도 무척이나 신기한 경험을 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사건이 아니었다면 볼 수 없었던 잎 저편의 세상과의 만남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곳엔 정말 아무것도 없었던 것일까. 존재하지 않는 것이 존재하는 곳에 존재할 수 있을까. 애벌레처럼 뒷걸음질로 물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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