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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창쌤 May 24. 2024

나도 학폭 교사는 처음이라서 2

학폭 담당 교사의 좌충우돌 학폭 ZERO 도전기

햄버거쌤.

학교폭력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 때문에 40분 가까이 되는 영상을 아이들이 끝까지 집중해서 볼지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영상에 두 가지 아이디어를 추가했다. 첫 번째 아이디어는, 교육이 종료될 때까지 손으로 ‘X표시’와 함께 ‘안 돼요’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맞히는 퀴즈를 추가했다. 두 번째 아이디어는 중간에 광고를 넣는 것이었다. 유명한 햄버거 광고와 과자 광고를 패러디하여 집중력이 떨어질 15분, 25분 정도에 삽입했다. 광고에 나오는 것처럼 집에서는 정장을 입고 햄버거를 최대한 맛있게 먹는 모습을 찍고 학교에서는 동료 선생님과 함께 과자를 배부를 때까지 먹으며 열심히 촬영했다. 고맙게도 ‘햄버거쌤’이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로 아이들은 재밌었다는 반응이었다. 담임 선생님들도 너무 좋았다며 응원과 격려가 담긴 메시지를 보내주셨다. 노력이 보상받는 기분이 들어 정말 뿌듯했다.


○○중학교 학교폭력 예방의 선봉 방패이지스.

영상을 제작하며 느낀 점은 학교폭력은 예방이 생명이라는 점이다. 어떤 질병이든 미리 대비하면 막상 닥치더라도 그 고통이 덜한 것은 자명하다. 따라서 학기 초인 3, 4월에 속전속결로 학교폭력 예방 캠페인을 진행해야 예방 효과를 제대로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예방 교육 영상을 통해 달궈진 지금 분위기를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중학교 학교폭력 예방의 선봉 방패!’라는 구호와 함께 ‘이지스’라는 명칭의 학교폭력 예방 캠페인단을 교내 자율동아리로 등록했다. 이지스는 아테네 여신의 방패인 ‘아이기스’의 영어 발음이다. 우리에게는 바다의 방패라고 불리는 전투 순양함 ‘이지스함’이 익숙하다. 이지스는 제우스가 아테네에게 준 선물로 벼락을 맞아도 부서지지 않고, 한번 흔들면 폭풍이 일어나고, 적군에겐 공포를, 아군에겐 용기를 주었다고 전해진다. 학교폭력이라는 적군의 공격에 용감하게 맞서 무찌르자는 다소 낯 뜨거운 말과 함께 이지스 캠페인단을 모집했다. 정말 고맙게도 21명의 학생이 지원했다.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었다. 너무 유치하다 싶은 홍보 문구가 오히려 중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았던 것 같다. 숫자도 많겠다, 우리 중학교 역사에 남을 과감한 캠페인에 도전하기로 했다.


화개장터 대신 ○○장터!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 따라 화개장터엔.’으로 시작하는 조영남의 구수한 트로트, ‘화개장터’를 우리 중학교 버전으로 바꾸어 ‘○○장터’로 개사했다. 원곡의 첫 소절을 ‘은평구와 서대문을 가로지르는~ 불광천 줄기 따라 ○○학원엔’으로 바꾸는 식이다. 저렴한 편집실력으로 인해 꼬박 삼일을 밤잠 줄여가며 ‘○○장터’ 편집을 완료했다. 뻔한 캠페인은 싫었다. 재밌는 노래와 함께 왁자지껄한 장터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노래를 찾다 보니 화개장터가 제격이었다. 정직한 박자와 낮은 음역 덕분에 음치인 나도 맛깔나게 부를 자신 있었다. 성공적인 캠페인을 위한 필요조건을 달성했지만, 충분하진 않았다.


방관자도 가해자우리 모두 방어자가 되자방가방가.

캠페인은 무료로 나눠주는 게 있어야 호응을 유도하기 쉽다. 간식이 가장 먼저 떠올랐는데, 너무 식상하기도 하고 학교폭력과 연관성도 떨어졌다. 고민이 길어질 무렵, 교사이신 어머니께 고민 상담을 했다. 어머니 지인분께서 상담교사이신데, 위클래스 캠페인을 할 때 문구가 들어간 주문 제작형 볼펜을 나눠준 적이 있다고 말해주셨다. 듣자마자 이거다 싶었다. 볼펜에 들어갈 문구는 이지스와 함께 고민해서 투표로 결정했다. 간단하면서도 의미도 있고, 재밌어야 했다. 그래서 탄생한 게 ‘방관자도 가해자, 우리 모두 방어자가 되자! 방가방가’ 볼펜이다. 끝부분이 하트로 장식된 귀여운 분홍색 하트 볼펜이 도착했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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