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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칠마루 Oct 23. 2024

7년 만의 싱가포르 여행

20번째 결혼기념일을 맞아

10월 17일 목요일


5시에 일어나 짐을 정리하고 45분 만에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그런데 새벽 2시가 다 될 때까지 아내랑 짐정리한 것은 비밀). 잠자리에 들면서도 여행할 때 서로 싸우지 말자 했는데 마지막 정리하면서 내 퉁명스러운 말 한마디 때문에 몇 분 정도 말다툼이 있었습니다. 큰 아이의 싸우지 말라는 말에 부부 둘 모두 잠시 휴전 > 제 사과 이후 종전이 되었습니다.


3시간 정도만 잠을 자서 그런지 공항으로 운전하는 내내 졸렸습니다. 청라 쪽에서 공항고속도로로 빠지지 못하고 5km를 돌아왔습니다. 컨디션이 좋을 때도 운전하다 한 번씩 헤매는데 오늘은 잠을 못 자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습니다. 때마침 아내가 옆에서 알려주지 않았다면 아마 길을 놓친 줄도 모르고 계속 운전했을 겁니다.


싱가포르항공 카운터에서 체크인 후 짐을 부치고 나니 08:30이었습니다. 비행기 시간은 11:10인데 2시간이 넘게 여유가 있습니다. 공항에서 이렇게 여유가 있으니 한결 느긋해집니다. 매번 비행기 탑승시간에 쫓겨 지나치기 바빴던 면세점 거리 구경을 합니다. 탑승구가 43번이니까 그쪽으로 가면서 버버리, 루이비통 등의 명품 매장을 지나갔습니다. 어라, RIOT GAMES에서 일반 점포의 3배 정도 되는 규모로 전시관을 열었습니다. LOL 게임 같은데 직접 게임할 수 있게 컴퓨터와 닌텐도스위치 여러 대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아내는 게임 캐릭터 인형 앞에다 두 아들을 세우고 사진을 찍느라 바빠 보였습니다.



아침밥을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중인데 다들 밥 생각이 없었습니다. 식당가를 지나쳤더니 큰 아이가 어디든 앉아서 쉬자고 합니다. 30번 탑승구 인근의 카페에 앉아 샌드위치와 커피, 물을 먹고 마시며 잠시 한숨 돌려봅니다.


항공성 중이염이 있어 처방받은 약(슈도에페드린)으로 먹었지만 착륙 전 왼쪽 귀가 아파 고생을 좀 했습니다. 착륙허가를 기다리는 비행기가 많아 30분 정도 공항 주위를 맴돌다 착륙했습니다. 그 덕에 귀가 덜 아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장까지 10분쯤을 걸었습니다. 왜 이렇게 공항을 만들었는지 설계자가 궁금해집니다. 입국 신고는 여권을 스캔하고 얼굴 사진을 찍으니 끝이었습니다. 다만 랜덤으로 한 두 명은 지문을 등록하게 했습니다. 따로 기준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여행 책에서 추천한 대로 현지 유심을 사서 온 가족의 전화기를 개통했습니다. 스타허브의 12 싱달러 유심으로 100GB에 국제전화 30분, 현지통화 500분을 14일간 이용할 수 있어서 가성비도 좋고 무엇보다 싱가포르 현지에서 데이터가 끊기지 않고 맘껏 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습니다. 다만 입국신고 > 수화물 찾기 > 현금 찾기 > 현지 유심사기(현금만 받습니다, 매대에서 여권을 등록해 주니 공항의 Travelx에서 사세요, 편의점에서 사면 등록 안 해줍니다, 네 명 등록하는데 족히 15분 넘게 기다렸습니다) 후 택시를 타고 호텔(Mercure Icon singapore city center, 4성급 호텔로 텔록 아이어 역과 150미터 거리, 시내 중심지 옆에다 교통 좋음, 가성비는 좋으나 방 크기가 작아 캐리어 펼칠 공간이 마땅치 않아요, 욕조는 당연히 없고요, 밖에서 신나게 놀고 숙소에선 잠만 잔다는 분에게 어울립니다, 지은 지 몇 년 되지 않은 새 건물이라 깔끔합니다, 네 명이 한 방에 묵는데 1박당 30만 원으로 싱가포르에선 중간 가격입니다)로 오니 7시가 넘었습니다.


짐을 정리하고 저녁을 먹으러 동방미식이라는 중국음식점으로 갔습니다. 호텔에서 500미터라 걸을만합니다. 시리얼 새우는 맛있어 보이는 외관과 달리 무지하게 짠맛이었습니다, 꿔바로우는  한국과 비슷했으나 끝맛에서 뭐라 말하기 힘든 미묘한 향신료가 느껴졌습니다. 볶음밥은 강추합니다, 불맛이 확 느껴졌습니다. 배불리 먹었지만 글쎄요, 우리 가족 별점은 10점 만점에 7점입니다. 아, 싱가포르 식당에선 물, 티슈 다 돈 받습니다, 물티슈 한 장 쓰고 1.2 싱달러 내려니 참 아깝네요. 원래 계획은 라우파삿 사테거리를 가려했으나 가족 모두가 지쳐 21:30 오늘 일정을 마무리합니다.


10월 18일 금요일


아침 6시 좀 넘어 일어나 아내와 오늘 일정을 체크했습니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아침 10시 이후 비가
올 확률이 80%였습니다. 10시로 예약했던 리버크루즈 대신 맥스웰푸드센터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가든스바이더베이에 가기로 했습니다. 숙소에서 500미터 떨어진 푸드센터에 도착하니 아침부터 여는 곳이 열 곳 정도 있습니다. 아내가 가르쳤던 싱가포르 학생에게 추천받은 곳인 젠젠포리지에서 생선죽과 닭죽을 먹기로 했습니다. 생선죽에는 생강이 들어 있어 한 숟가락 먹을 때마다 입안이 화끈해지는 게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절 따라 생선죽을 시킨 둘째가 생강 때문에 죽을 먹지 못해 푸드센터 바로 옆에 있는 야쿤 카야 토스트에 들러 돌째만의 아침을 먹었습니다. 아침 한 번 먹는데 벌써 두 번째 식당이었습니다.


비가 올 예정이라 클락키 근처의 리버크루즈를 포기하고 가든스바이더베이 클라우드 포레스트에 왔습니다. 10시부터 2시간에 한 번씩 약 15분 정도 미스트 타임이라고 수증기가 뿜어 나오는 시간이 있는데 운 좋게도 이 시간에 딱 맞춰 왔습니다. 1시간 남짓 클라우드 포레스트를 보고 나니 벌써 11시 반이 넘었습니다. 이젠 800미터(더 가까운 길이 있었는데 그걸 몰라 빙빙 돌아갔습니다)를 더 걸어가 돌째가 고른 플로럴판타지를 볼 차례입니다. 클라우드 포레스트를 1/10 수준으로 줄여놓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날이 흐리기만 하지 비가 오진 않았습니다. 원래 계획대로 리버크루즈를 타러 클락키로 향했습니다. 우리나라 갈비탕과 비슷한 현지 음식인 바쿠테를 먹으러 레전더리 바쿠테에 왔습니다. 근처 송파 바쿠테에 비해 사람이 덜 몰리고 깔끔한 국물이 좋다는 평이 맘에 들어 이쪽으로 왔습니다. 음식을 가리는 큰 아이가 맛있다며 금세 먹었습니다. 아이 말로는 머릿속에서 음식에 관한 선입견을 삭제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져서 처음 본 음식도 잘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아이만의 깨달음일까요? 어찌 됐건 아빠 입장에선 대환영입니다).
 
리버크루즈를 타고 플러튼 오텔, 머라이언 동상을 지나 40분 정도 배를 타니 경치 감상은 뒷전이고 졸음이 쏟아졌습니다. 간신히 쏟아지는 졸음을 이겨내고 아내의 이번 여행 버킷 리스트인 포트 캐닝 터널 사진 찍기 미션을 러 갔습니다. 리버크루즈 선착장부터 걸어서 20분 또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23분 정도의 선택지 중 그냥 걷기로 했습니다. 얼마 전부터 유명해진 사진 명소로 보통 1시간씩 기다린다고 하는데 다행인지 40분 정도만에 우리 차례가 왔습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 배려가 많이 없어졌습니다. 뒤에 사람들이 줄지어 기다리는데도 모델처럼 자기만의 동작을 취하며 한 사람당 최대 10장이 넘는 사진을 찍었습니다. 마치 영화 아저씨의 원빈처럼 오늘만 사는 사람들 같았습니다. 원하는 사진을 얻기 위해 다른 이들이 기다리건 말건  사진이 중요해라는 말만 안 할 뿐이지 온몸 가득 그런 기운을 표출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겪었던 그런 성향은 국적, 성별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날이 갈수록 사려 깊은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 같아 씁쓸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덥고 오래 기다리는 게 힘들어 한 장씩만 후다닥 찍고 얼른 자리를 양보했습니다.

이제 오후 5시가 넘었습니다. 더위에 지친 우리 가족은 호텔에서 1시간쯤을 쉬기로 했습니다. 호텔로 가는 길에 2 싱달러 오렌지주스 자판기를 사람 수에 맞춰 네 차례나 이용했습니다. 호텔에서 쉬는 도중 가든스바이더베이에서 볼 곳 중 하나인 플라워돔(모네 등 인상파 화가의 그림을 디지털 이미지로 전시, 나머지는 꽃놀이)을 보지 못하고 지나쳤다는 사실을 아내가 깨우쳐줬습니다. 그 사실을 안 순간 등줄기가 서늘했습니다. 저는 그쯤이야 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사모님 입장은 달랐습니다. 꼭 봐야지, 이런 걸 놓쳤다며 두고두고 혼날 뻔했습니다. 쉬는 시간을 마치고 다시 플라워돔으로 향했습니다. 중학생 때 배웠던 점묘화의 대가 쇠라, 상파 화가 모네, 드가, 르느아르 등이 나왔습니다. 50여분의 관람 후 마리나베이샌즈 쇼핑몰 지하 2층에 있는 푸드코트(라사푸라 마스터즈)에서 저녁 9시가 다 되어 늦은 저녁을 먹었습니다. 비 때문에 일정이 제대로 꼬였지만 그래도 온 가족이 똘똘 뭉쳐 아침부터 저녁까지 움직였던 하루였습니다. 움직인 반경은 고작 3km 이내인데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해서 피곤했습니다. 그런 게 여행의 묘미겠죠. 오늘은 33,269걸음을 걸었습니다, 푹 자야겠습니다!


혤릭스 브리지에서 보이는 마리나베이 샌즈 호텔
플로럴 판타지 그림
야균 카야 토스트 실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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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박 6일 여행기를 알차게 적으려 했지만 둘째 날 강행군 이후 힘들어서 이쯤에서 마무리합니다 습하고 더운 날씨에 금방 지치게 됩니다. ㅠ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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