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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칠마루 Nov 25. 2024

우울증 약을 먹고 있습니다만

별 거 아닙니다

큰 아이 상담(1주에 세 번)때문에 쉬는 날에는 상담 선생님과 대면할 때가 많아졌습니다. 큰 아이를 통해 아빠가 집에서 버럭 화를 낼 때가 있다는 말을 들었던 상담 선생님은 제게 개인상담이나 정신과 진료를 받아보는 게 어떻냐는 권유를 하셨습니다. 사실 같은 문제로 2021년에도 10차례 상담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로부터 2년 전인 2019년에도 회사의 상담 서비스를 통해 5번 정도 상담받았고요, 그러나 상담받은 때만 조금 나아졌을 뿐, 아이들에게 버럭 화를 내는 버릇은 쉽사리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지금 기억나는 상담 내용은 화가 날 때면 그 자리를 피하는 게 좋다였습니다(상담 선생님들이 여러 얘기를 해주셨지만 제게는 이것만 기억에 남았네요). 그런데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애들에게 화내는 습관을 고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아무래도 상담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듯했습니다. 흔히들 이렇게 얘기합니다. 정신과에선 약을 처방하고 상담으로는 개인의 속 얘기를 하며 치료하는 거라고, 그렇습니다. 상담은 해볼만큼 해봤으니 이젠 정신과에서 진료받기로 결정했습니다. 


상담 선생님이 알려주신 집 근처에 있는 정신과로 향했습니다. 첫 진료라고 하니 A4 8장 정도를 줬습니다. 간단한 심리검사 같은데 그걸 체크 후 간호사 선생님께 드리니 15분 정도 뒤에 진료받으라고 이름이 불리더군요, 진료실에 들어가니 훤칠한 훈남 의사 선생님이 반겨주셨습니다. 왜 병원에 왔는지, 평소 잠은 잘 자는지, 술은 얼마나 마시는지 물었습니다. 아이들에게 화를 버럭 낸다, 소방관이 된 이후로 성격이 조금 변했다는 주변의 말도 있는 데다 아이 상담 선생님의 권유로 병원에 오게 됐다는 대답을 했습니다. 약을 먹어서 가정의 평화가 온다면 기꺼이 약을 먹겠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빙긋 웃으시더니 약 10분간의 문답 시간 동안 열심히 타이핑을 하며 여러 질문을 하셨고 항우울제를 1주일 동안 먹어보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항우울제를?"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전문가가 그렇게 얘기하는데 그러려니 해야지요, 처방받은 약은 데팍신 50mg 1알이었습니다. 이 병원 역시 그동안 아이가 ADHD로 진료받았던 정신과와 마찬가지로 병원에서 환자에게 직접 약을 주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첫 진료비는 약을 포함해 37,000원이었습니다. 


1주일 동안 매일 아침에 먹었는데 약으로 인한 부작용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말은 항우울제인데 제게는 짜증을 줄여주는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상담에 대한 선입견은 없었지만 정신과에는 아픈 사람만 가는 곳이라는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막상 정신과에 가서 약을 먹어보니 그냥 감기 걸려서 이비인후과 가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다시 약을 받으러 병원에 갔습니다. 이번 진료는 금방 끝났습니다. 


의사 : 약 먹으니 어땠어요?

나 : 네, 괜찮았습니다.

의사 : 별다른 부작용은 없었나요?

나 : 네, 이상 없었습니다. 

의사 :그럼, 2주 치 약을 드릴 테니 제때 드시고 다시 오세요

나 : 네


알약도 가로*세로 0.5cm 크기라 먹는데도 별 부담이 없었습니다(아침 습관이 일어나자마자 물 한 잔과 영양제를 먹는 거라 영양제 먹을 때 같이 먹습니다). 이 약을 먹은 뒤로 확실히 집에서 짜증 내는 일이 줄어들어서(물론 아내가 옆에서 저를 잘 제지하기도 합니다만) 이변이 없는 한 계속해서 정신과를 방문해 약을 복용할 예정입니다. 혹시나 정신과 가기가 꺼려지는 분들이 있다면 제 글을 읽고 용기 내서 가보시기를 권합니다. 별 거 아니더라고요, 항우울제 그거 말만 거창하지 그냥 진통제 먹는 것보다 더 쉽습니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추신

브런치를 시작하고 나서 2년 반의 기간 동안 대부분 1주일에 한 번꼴로 글을 써왔습니다. 가끔은 의무감에 글을 쓸 때도 많았습니다. 글쓰기 전만 해도 이런 소재로 써야지 맘을 먹고 나서도 막상 쓰기 시작하면 중간에 맘에 들지 않아 지우게 되거나 글이 생각대로 써지지 않는 일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분간은 비정기적으로 맘 내킬 때 글을 써볼까 합니다. 물론 이렇게 공지하고 나서도 1주에 한 번씩 쓸 수도 있습니다. 그때그때 다를 예정입니다. 며칠 사이에 추워진다고 합니다. 다들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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