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1월 초 속초 셀프주유소
지난 11월 6일~7일 친구가 신청했던 숙소(친구회사 연수원)에 당첨되어 그 녀석(30년 지기 친구)과 같이 속초에 다녀왔습니다. 아내에게 허락받은 1박 2일의 여행이라 괜히 들떴습니다. 원래 계획형인 저는 여행 1주일 전부터 속초의 유명한 식당과 명소를 인터넷으로 찾아봤고 대략 뭘 할지 일정을 세웠습니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여행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11월 6일
6시 이전 집에서 속초로 출발
8시~9시 양양 후진항 도착, 방파제 둘러보기, 파도 감상
10시 속초 외옹치 해안 도착, 해안산책로 일주
11시 속초 그바다로(해물모듬장)
14시 영금정 및 속초등대 전망대, 카페 바다담다(바다담다 라떼 강력 추천, 창가에서 영금정 앞의 바다 감상)
15시 친구 회사 연수원 도착
17시 연수원 내 헬스장에서 운동
19시 저녁식사(속초 승진호 홍게 무한리필)
21시 장사항 산책, 카페 할리스
22시 취침
다음 날
08시 카페 고성 델피노 더엠브로시아(많이 비싼 데 전망이 끝내줍니다)
10시 동명항 이동, 산책
11시 30분 엄지네 포장마차 속초점(본점으로 가세요, 차디찬 음식이 나옵니다. 전날 남은 음식을 냉장고에 보관했다 준 것 같았습니다. 차라리 강릉 본점으로 갈 것을 ㅠㅠ)
12시 이후 집으로 복귀
친구 녀석과 전 둘 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합니다. 만나서 하는 건 카페 가서 차 마시고 밥 먹는 게 전부입니다. 간혹 시간이 많을 때면 같이 운동하기도 합니다. 친구 녀석이 태권도, 검도, 킥복싱 합계 10단이라 일반인인데도 소방관인 저보다 체력이 더 좋습니다. 그래서 운동할 때는 친구는 트레이너, 전 운동하러 오는 일반인으로 역할이 정해져 있습니다(친구에게 복싱 자세 교정을 받거나 서킷 운동 등을 많이 배웁니다). 때로는 이런 우스갯소리도 합니다. 너랑 나는 서로 직업을 바꿔야 한다고(친구 : 공기업 직원, 저 : 소방관, 학창 시절 기억을 떠올리면 영락없이 서로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을 택해 일하고 있네요).
만나면 밥값이든, 차값이든 번갈아가며 계산하곤 합니다. 때로 용돈이 다 떨어졌을 때는 그날 하루는 온전히 돈 있는 놈이 쏘기도 합니다. 갑작스러운 1박 2일 여행을 선물해 준 친구가 고마워서 제가 친구 차에 기름을 넣어주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일어난 일로 인해 며칠 전 저녁에 친구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가 왔습니다. 지난 속초 여행 때 썼던 주유소 결제 문자가 있냐는 연락이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있지라는 대답과 함께 그날 썼던 카드 승인내역을 찾아봤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딱 그 주유소에서 친구 차에 기름을 넣었던 내역만 없었습니다. 친구 말로는 그날 카드 도용신고가 됐는데 이 시간대 주유소 CCTV를 찾아본 경찰한테서 전화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 뒤에 바로 자초지종을 모르는 친구 녀석이 다시 제게 연락했던 것입니다. 카드 결제를 한 건 저니까 제가 직접 통화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친구에게 경찰 연락처를 받아 다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카드 도용 관련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요즘 주유소는 다 셀프결제입니다. 저는 늘 주유할 때면 실물카드 대신 삼성페이로 결제를 해왔습니다(실물카드는 카드 투입구에 카드를 넣지만 삼성페이 결제는 그냥 전화기를 카드 투입구에 가져다 대기만 하면 됩니다). 친구 차를 주차한 뒤 계산하려고 주유기 앞에 서서 삼성페이로 결제를 마쳤습니다. 결제 시 울리는 알람도 체크하지 않았습니다. 본인이 본인 카드 쓰는데 그걸 뭐 일일이 체크하나요? 그렇게 친구 차에 휘발유 40리터를 넣고 차의 주유구까지 닫았습니다. 그런데 제 눈에 갑자기 실물 카드 1장이 주유기 카드투입구에 꽂혀 있는 게 보였습니다. 이때만 해도 이 실물카드로 휘발유 40리터가 계산됐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늘 하던 대로 제 카드(삼성페이)로 결제했으니까요. 카드투입구에서 카드를 뽑아놓고 그 자리에 그냥 놔둘까 하다 주유소 사무실로 들어갔습니다. 주유소 관계자에게 카드를 인계할 생각이었습니다. 사무실에 들어가니 아무도 없어서 그냥 유리로 된 사무실 탁자 위에 올려놓고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할 일을 마쳤다는 생각에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카드를 잃어버린 주인이 분실신고를 했고 이후 사용자가 저와 제 친구가 탄 차로 지목이 되어 차량 조회를 통해 속초경찰서 수사관이 제 친구에게 전화해 잃어버린 신용카드의 사용 여부에 대해 물어본 것이었습니다. 만약 카드 사용내역이 있다면 관련 증거를 사진으로 보내달라 요청했다네요, 그러니 친구는 당연히 제게 주유소에게 결제했던 내역이 있는지 물어볼 수밖에요. 이후는 제가 직접 그 수사관과 통화한 내용입니다.
나 : 안녕하세요, 분실카드 사용 관련해서 전화드렸습니다.
경찰 : 아, 네, 00 주유소 카드 도용건 때문에 친구분에게 전화드린 수사관 000입니다. 선생님 성함과 주민번호 알려주세요
나 : 000, 주민번호.....
경찰 : 11월 6일 00:00에 카드를 쓴 적이 있나요?
나 : 그때 제가 삼성페이로 결제를 했고 그 후 아마도 주유를 마친 뒤에 카드투입구에 카드가 꽂혀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카드가 주유 시작 전부터 꽂혀 있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암튼 카드를 뽑아 그 자리에 놓고 갈까 하다 사무실로 가져갔죠, 사무실에 사람이 없어 그냥 탁자 위에 두고 왔습니다. 저는 제 카드(삼성페이)로 결제했다 생각해서 당연히 카드 승인내역은 따로 챙겨보질 않았고요, 설마 그 실물카드로 결제가 됐을 줄을 꿈에도 몰랐네요.
경찰 : 아, 네. 저희도 CCTV를 보니 선생님께서 카드를 들고 사무실로 향하는 게 확인됐습니다. 그런데 셀프주유기의 특성상 실물카드가 꽂혀 있으면 삼성페이로 카드를 인식시킨다 해도 먼저 꽂혀있는 실물카드로 계산이 진행된다고 하네요, 그래서 카드 주인에게 실 사용금액(휘발유 40리터)을 보내주시면 이 사건은 종결처리될 예정입니다. 가끔 괘씸죄로 카드 도용 관련해서 고소까지 진행하는 분들이 있는데요, 다행히 선생님은 카드를 사무실로 돌려주려는 영상이 확인되어 카드를 고의로 사용했다는 의혹은 피하게 됐습니다. 그게 아니었다면 제법 귀찮은 일들이 일어날 수도 있었습니다. 제가 카드 소유주 연락처 알려드릴테니 통화해 보시고 사용금액 보내주시면 됩니다.
나 : 수사관님,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민감한 내용인데 굳이 제가 직접 카드 소유주와 통화할 필요가 있을까요? 수사관님이 중간에서 소유주에게 연락하신 후 제 연락처로 계좌번호와 금액을 보내달라고 연락하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제가 카드 소유주에게 좋은 내용으로 연락하는 것도 아닌데 자칫 일이 마무리되지 않고 말싸움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경찰 : 아, 보통 저희가 중간에서 따로 연락은 하지 않는데 말씀을 들어보니 그게 오히려 낫겠네요. 제가 카드 소유주에게 그렇게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나 : 감사합니다. 연락받는 대로 바로 사용금액 보내겠습니다.
20분쯤 지나 카드 소유주에게 계좌번호와 사용금액이 얼마라는 문자가 왔고 바로 그쪽으로 송금했습니다. 염려와는 달리 카드 소유주는 송금 후 따로 답장을 보낼 필요 없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그렇게 저의 1박 2일 깜짝 여행은 카드 도용 사건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친구에게 사후 처리가 잘 마무리됐다는 연락 후 친구와 저는 이런 일도 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참, 살다 보니 별 일이 다 있네요.
결론
셀프 주유기 사용 시 혹시 카드가 꽂혀 있다면 바로 주유하지 말고 꼭 카드를 뽑아 주유소 관계자에게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카드 도용으로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릴 수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