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이 집에서 못 살 것 같아
2022년 푸00오 아파트
2020년부터 코로나가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정말로 운 좋게 아내의 성화로 2018년에 매수한 아파트에 살고 있을 때였다. 28평 아파트였지만 인근의 30평 아파트보다 공간이 넓게 나온 편이라 네 식구의 모든 짐을 넣을 수 있었다. 40년 넘도록 단독주택이나 일반 다세대주택에서만 살다가 아파트로 이사오니 여러 문화적인 충격이 컸다. 주차장이 갖춰진 것, 관리사무소가 있어 웬만한 일은 대신 처리해주는 것, 청소 아주머니께서 계단이나 아파트 내 다른 공간을 청소해주시는 것(빌라에서 살 때는 집 앞 계단이 더러우면 내가 치워야 했다. 안 그러면 며칠이고 더러운 상태가 그대로 간다)이었다.
다만 걸리는 것이 있었으니 8살, 6살 아들만 둘이라 집에서 시끄럽게 뛰는 것 때문에 명절 때마다 이웃집과 아래층, 위층 모두 돌아다니며 선물세트를 돌렸었다. 다들 애 키우는 집이 어떻게 조용할 수 있냐며 기분 좋게 넘어가 주셨기에 층간소음 문제로 골머리를 앓지 않았다. 빌라에 살던 때는 겨울이면 외풍 때문에 창틀에 문풍지를 붙였지만 아파트에 살게 된 이후로는 창호가 좋아서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 아파트에 사는 2년 반 동안 비가 세차게 내리거나 눈이 많이 오는 날엔 이렇게 좋은 집에 살아도 되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기도 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으니 그건 아내가 집에서 강의실로 쓸만한 공간이 없었다는 점이다. 아내는 00 대학에서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 강사다.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리는 동안엔 학교로 출근하는 대신 인터넷을 연결해 집에서 온라인 수업으로 학생들을 가르쳐야 했다. 공간이 없다 보니 안방의 드레스룸(말이 드레스룸이지 그냥 0.5평 정도의 크기에 독서실 책상 1칸이 겨우 들어간다)의 짐을 모두 들어내고 책상과 의자를 놓은 후 골방에 갇혀 하루 4시간의 수업을 진행해야 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았고 교육방송을 보며 수업을 진행하거나 때론 아이들 역시 인터넷으로 연결된 채 학교 수업을 들어야 했다. 수업을 진행하려면 아이들과 떨어진 독립된 공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드레스룸이 좁은 강의실로 탈바꿈했고 1년 정도 아내는 어찌어찌 비좁은 공간을 참아가며 수업을 해왔다. 그러다 골방에서 수업을 하던 아내가 도저히 못 버티겠으니 집을 큰 곳으로 옮기자는 제안을 했다.
이사할 곳을 알아보고 대출은행, 이사업체, 청소업체 선정 등 여러 과정을 거쳐 200m 떨어진 곳의 34평 아파트로 이사하게 되었다. 지금 살고 있는 곳보다 조금 더 큰 평수에, 아파트 브랜드 인지도도 높은 편이었고 1000세대의 대단지여서 관리비도 지금 사는 곳과 비슷했다. 그렇게 좋은 줄로만 알았던 지금 사는 푸00오 아파트는 막상 살아보니 생각보다 별로였다.
처음으로는 거실 타일이 떨어졌다. 타일 크기는 가로 35cm * 세로 25cm 정도였다. 내가 처음 발견했을 때는 거실 천장 마감재에 타일 윗부분이 기댄 상태였고 아래 부분은 접착제가 다 떨어진 채 간신히 끝부분만 붙어 있었다. 그 타일을 보수하는데 15만 원이 들었다. 수리업자를 불렀는데 다행히 지금 사는 아파트 단지에 자주 수리를 해오신 분이었다. 의외로 이 아파트는 타일이 깨지거나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욕실 쪽 타일 점검도 해주셨다. 점검 결과 욕실에서도 타일 3장 정도가 미세하게 금이 가 있는 상태였다. 바로 타일 보수를 할 필요는 없지만 향후 금이 간 부분이 더 커진다면 공사를 해야 하고 비용은 50만 원 내외가 나올 거라고 했다. 일단 타일 문제는 그렇게 끝이 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욕실 벽에 붙어 있는 상부장의 슬라이딩 도어가 말썽이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문을 밀어도 잘 열리지가 않았다. 제조업체에 전화하니 출장비만 20만 원에 부품 수리비는 별도 청구라고 한다. 전화하자마자 하는 말이 이미 보증기한이 지나서 무상 AS는 안된다고 밑밥 먼저 깔아놓는다. “이야, 장사는 이렇게 하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제조업체를 통한 수리를 포기하고 검색의 달인인 아내가 나섰다. 역시 아내는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00이네 홈케어라는 업체를 찾아내 욕실 상부장 수리를 맡겼고 검색한 지 3시간 만에 수리를 마쳤다. 수리비는 딱 1만 원이었다. 의정부에서 주로 활동하는 분인데 마침 옆 동에서 수리하고 있다가 아내의 전화를 받으셨다고 했다. 정말 운이 좋았다.
2021년 5월에 이사해서 겨울이 되니 웬만한 건 다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둘째 방에 연결된 비상 탈출 발코니에서 또 다른 문제를 발견했다. 사실 그 발코니는 제대로 환기가 되지 않았는지 전에 살던 집주인이 나가고 난 뒤, 우리 부부가 확인했을 때는 온통 곰팡이 투성이었다. 다행히 붙박이장을 설치하는 업체의 담당자가 관련 업체를 소개해줬고 탄성코트보다 더 좋다는 세라믹 코트로 안방과 둘째 방의 발코니를 마무리했었다. 그래서 발코니의 곰팡이 문제가 해결된 줄로만 알았다.
그렇게 잊고 지낼 즈음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겨울이 되었다. 안방 발코니는 멀쩡했지만 둘째 방의 발코니는 영화 겨울왕국처럼 얼음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발코니 안에 있는 짐을 모두 들어내었다. 제습기로 처리가 될까 했지만 추운 날씨에 제습기는 30분 남짓 작동하다 컴프레서가 얼어버렸다. 제습기로도 안되고 결국 단열을 전문으로 하는 00 업체를 불렀다. 그 업체 사장님은 꼼꼼하기로 맘카페에 정평이 나 있다. 공사를 제대로 하고 허위로 공사비를 청구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 업체 사장님이 우리 집 겨울왕국 발코니를 보시더니 하시는 말씀이 가관이었다. “이건 창문 열어놓는 것 말고는 해답이 없어요, 그냥 겨울엔 창문 조금씩 열어 놓고 사세요, 그게 최선입니다.” 왜 얼음이 어는지는 모른다. 그저 바깥과 내부의 온도 차이로 인해 생긴 습기가 낮은 온도로 얼어버린 거라고 추정할 뿐이다. 그래도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 도대체 집을 어떻게 지었길래? 결국 영하 10도 남짓한 추위에도 발코니 창문을 열고 살기로 했다. 그게 마음이 편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올해 5월 안방 에어컨이 설치된 천장 옆부분에 물이 새는 흔적이 보였다. 처음엔 5cm, 1주일 뒤엔 10cm, 점점 흔적은 커져만 갔다. 에어컨 배관 누수 같아 점검업체를 알아봤다. 우와, 여름은 에어컨 점검 업체의 성수기였다. 전화연결은 쉽지 않았고 그마저도 예약은 최소 2주 전에 해야 한다고 했다. 수리비는 출장비 포함 50만 원이 시작 금액이었다. 여러 업체에 전화를 했지만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았다. 전화받는 목소리나 어조를 통해 상대방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는 것, 아마 사회생활을 조금 하셨던 분이라면 무슨 느낌인 줄 알 것이다. 하염없이 인터넷을 뒤지다 혹시 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이사나라의 조보현이라는 사장님이 전화를 받았다. 다행히도 그쪽 방면의 전문가를 섭외하게 되었다. 통화 결과 본인의 일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이 느껴지는 분이었다. 한참 성수기라 여러 예약으로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짬을 내어 우리 집에 오셨고 2번의 방문 끝에 알아낸 안방 천장의 누수 원인은 에어컨 배관이 아니라 아파트 외벽에 생긴 크랙을 타고 스며든 빗물로 밝혀졌다. 그걸 알아내기 위해 천정에 25cm*25cm 정도의 구멍을 뚫게 됐다.
이제 관리사무소에서 외벽 크랙을 보수해야 하는 일이 남았다. 원인을 파악한 게 7월 초, 관리사무소에 이 사실을 알렸지만 동대표 2명이 없어서 입주자 대표회의가 열리지 않으니 동대표 2명이 선출된 후인 9월 이후에나 처리가 될 거라고 했다. 그래서 9월까지 기다려서 전화해보니 또 다른 동대표가 사임을 해서 다시 11월 정도에나 크랙 보수를 시작할 수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총 4달을 기다렸지만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11월까지 기다려 다시 연락했더니 이제야 동대표가 모두 선출되었고 이제 입주자 대표회의에서 아파트 외벽 크랙 보수 및 재도색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결국 11월 말이 되어서야 아파트 게시판에 외벽 크랙 보수 및 재도색 알림이라는 공고가 붙었다. 시행시기는 내년 3월이었다. 5달 가까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우리 집 안방 천장은 훤히 뚫려 있었다. 심지어 비가 오면 물이 샐까 봐 훤히 뚫린 천장 밑에 세숫대야를 받쳐 놓은지 무려 4달이 넘었다.
이 정도면 많이 기다렸고 오래 참았다. 구멍 뚫린 천장이라도 먼저 해결하기 위해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했다.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고 제대로 해결하려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10번이 넘는 전화 연결 끝에 관리사무소장과 통화를 하니 그제야 못 이긴 척 천장을 막아주겠다고 한다. 그것도 처음엔 시트지로 붙여놓겠다고 했다. 어이가 없어서 따졌고 그렇게 얻어낸 것이 배전함 같은 걸로 천장 구멍을 막는 것이었다. 그나마 천장과 색을 맞춘 흰색이라 다행이었다(제목 배경 사진 참조). 그마저도 완벽하게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나머지는 내가 하면 된다. 푸 00오 이 아파트에 이사 와서는 마치 예전 30년이 넘은 빌라에 사는 것 같았다. 집을 고칠 일이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져 왔다. 겉보기만 번지르르하지 실상은 속 빈 강정이었다. 아내도 나도 이 집에 더 이상 정이 가지 않는다.
그나마 우리 집은 별 문제가 없는 편이었다. 다른 동은 세탁실 하수 배관의 연결부위가 잘못 설치되어 있어 배관에서 누수가 됐고 배관이 지나가는 벽이 온통 곰팡이 투성이라고 들었다. 벽 안의 배관이 문제다 보니 공사비나 수리 기간도 만만치 않은데 입주한 지 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상태 그대로라는 말을 들었다.
더는 못 견디겠다.
내년 6월이 되기 전, 우리 가족은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떠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