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 아닌 입원을 기다리며
중추신경계 림프종 치료
3월 4일, 광주 누나네 집에 형제들과 매형, 작은 아버지까지 모두 모였다. 아버지의 항암치료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였다. 2월 말 이후 주말마다 3번째의 광주행이다. 앞서 썼듯이 나와 남동생은 항암치료가 의미 없음에 한 표, 누나와 여동생은 항암치료를 해보자는데 의견이 모였다. 천안에 사는 작은 아버지는 아버지의 사업 관련 정리를 위해 내려오셨고 오신 김에 형제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아버지와의 중재를 담당하기 위해서였다. 형제들끼리 미리 얘기를 마무리한 후 막내 집에 계신 아버지를 누나네 집으로 다시 모셔왔다(아버진 발병 후 누나네 집에서 1주, 막내 집에서 1주 지내오셨다, 이젠 발병 3주 차라 다시 누나네 집으로 오셨다).
매형 : 아버님, 형제들 의견을 모아봤더니 항암 치료를 해보자고 합니다. 아버님 의견은 어떠신가요?
아버지 : (매형 말이 끝나자마자) 아니, 나 내버려 둬, 안 할 거야, 어차피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겠지(아버지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누나 : 아빠, 그래도 한 번만이라도 해보면 안 될까? 하다가 힘들면 그만두면 되잖아..(눈물이 뚝뚝 흘러내린다)
막내 : 그동안 운동 꾸준히 해왔잖아. 다른 사람보다 체력도 좋고,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거야, 한 번 해보자
나, 남동생 : (아무 말 않고 그저 듣기만 함)
아버지 : 아니야, 괜찮아.
작은 아버지(아버지와 9살 차이) : 형님, 애들 의견이 이런데 한 번 해보지 그래요? 힘들면 항암치료 하다가 멈추면 되지, 괜찮아요, 형님 우리 한 번 항암 해봅시다
아버지 : (단호하게) 안 할란다
다들 한숨을 내쉬며 아무 말도 못 한 채 1분쯤 정적이 흘렀다.
작은 아버지 : 그럼 형님 뜻대로 항암치료 안 하고 이대로 애들 집에서 지냅시다. 그거면 됐죠? 대신 형님 혼자서 절대 돌아다니면 안 됩니다. 아시죠? 괜히 혼자 움직일 수 있다고 돌아다니면 아이들 놀라서 일 못해, 꼭 애들하고 같이 산책 정도 하는 걸로 하고, 이젠 일 그만두고 편히 지냅시다.
아버지 : (고개만 끄덕인다)
그렇게 가족회의는 마무리됐다. 사실 토요일까지만 해도 아버지는 잘 걸으셨다. 다만 토요일 오후부터 한쪽 발을 질질 끄는 모습이 보여 다들 의아해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정상인과 같았는데 오늘은 왜 저런 증상이 나올까 하고 궁금해했다. 그렇게 주말엔 전과 같은 섬망 증세, 헛소리 같은 것도 없었다. 다만 지난 기억이나 일부 중요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여전했다.
주말을 광주에서 보내고 다시 300km를 달려 집으로 올라온 나는 가족회의 마무리에서 나온 것처럼 이젠 항암치료를 거부한 아버지를 위해 광주에서 입원 가능한 요양병원을 알아보고 있을 때였다. 누나 집에서 가까운 요양병원 리스트를 뽑아 놓은 후 열심히 전화를 돌리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누나의 카톡이 날아왔다. “아버지 항암치료 받으신단다.” 헐, 이건 뭐지, 다시 누나에게 전화를 했다. 지금껏 아버지는 한 번 말한 후에 뜻을 바꾼 적이 없었다.
나 : 무슨 말이야? 어제 올라올 때만 해도 항암 거부하셨잖아
누나 : 그런데 일요일 저녁부터 다시 걷는 것도 잘 못하시고 밤에 두 차례나 실수도 하셨어. 새벽에만 화장실 4번 가셨다. 다리 한쪽에 계속 힘이 빠지나봐. 내가 미심쩍어서 세 번씩이나 물어봤다. 치료받으신단다. 아직 병원에서 입원하라는 연락이 안 와서 계속 기다리고 있다. 일단 요양병원 알아보는 것은 멈춰봐. 이번 주 안에 입원하라고 연락올 거 같으니까
3월 6일 원발성 중추신경계 림프종을 앓고 있는 아버지의 증상은 다음과 같다. 가끔 얼굴에서 한쪽 입꼬리가 올라감, 지난 기억의 일부분을 떠올리지 못함, 어쩌다 가상의 상대방과 대화를 함, 한쪽 다리에 힘이 빠진 듯한 모습을 보임, 소변 실수가 잦음, 월요일 오후부터는 힘이 없어 식사도 안 하시고 계속 주무시려고만 함
아버지를 돌보는 누나는 날마다 잠을 설쳐 힘들어했다. 아버지의 실수로 인한 이불 빨래를 하루에 4~5번씩 하는 데다 7살 조카가 감기에 걸려 열이 오르내리니 쉴 시간이 없었다. 결국 매형이 일하다 오후 반차를 쓰고 집에 와서 누나 대신 가족을 돌봐야 했다. 아버지를 돌보다 누나네 가족이 앓아눕게 생겼다.
지금은 달리 뾰족한 수가 없다. 화순전남대 병원은 입원을 오후 3시 이후에 하니 수요일이나 목요일에 입원하라는 연락이 오길 기다릴 뿐이다. 금요일에 입원해 봤자 주요 의료진은 없을 것이고 항암은 다음 주 월요일에 시작할 것이기 때문에 내일과 내일모레 사이에 입원 연락이 오길 기도하고 있다. 항암 치료 후 좋은 결과를 얻을지 부작용 때문에 중단할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우리 가족은 유명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가 아닌 항암치료를 위한 “입원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