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만 찾는 주치의
아들과 딸이라는 드라마가 생각난다.
지난 2월 말, 아버지의 암진단 이후 나는 고향과 350km 떨어진 곳에서 일하는 소방관이라는 핑계로 한 달에 1~2번 고향에 내려가는 게 전부였다. 남동생은 배송기사로 일하고 있어서 한 달에 2번 쉬는 날이 아니면 아버지를 모시고 진료를 받는 게 불가능했다. 그래서 4남매 중 시간이 자유로운 누나와 여동생이 아버지를 모시고 입원과 퇴원, 외래진료를 전담해 왔다. 지난 4월 중순이었다. 원발성 중추신경계 림프종 치료를 위해 누나와 아버지가 담당 주치의에게 외래 진료를 받는 중이었다.
주치의 : 그런데 이 집은 아들은 안 오네. 아들은 대체 언제 오는 거예요?
누나 : 남동생 둘이 있는데 동생들이 바빠서 아버지 진료시간에 맞춰 내려오는 게 힘들어요, 제가 주로 오니 저한테 말씀하세요.
주치의 : 어차피 이 병은 수술 안 되는 거 아시죠? 6차까지의 항암치료 말고는 없어요. 그런데 가족분들이 항암치료 여부를 놓고 의견 충돌이 있다고 하니까 답답해서 그러는 거예요. 환자 본인도 그렇고. 아무래도 아들이 와야 제대로 얘기를 할 수 있지요. 그래야 가족들 의견도 하나로 모아집디다.(전라도 사투리)
그러니까 주치의의 말은 누나나 여동생 통해서 아무리 얘기해 봤자 가족 간의 분란은 지속될 터이니 꼭 아들이 아버지 모시고 진료받으러 와야 한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은 누나는 굳이 아들이 필요할까 싶었지만 주치의가 세번도 넘게 하는 말이니 너희들도 알 필요가 있다며 나와 남동생에게 하소연했다. 결국 5월 아버지 진료에 맞춰 남동생이 휴가를 냈고 그렇게 아들만 찾는 주치의와 첫 만남을 가졌다.
주치의 : 아버지 항암치료 때문에 가족들 사이에서 의견이 나뉜다고 들었어요. 지금 아버님 상태는 아주 좋습니다. 저번 4차 치료까지 마친 결과 치료받기 전인 2월 말에 비해 종양 2개 중 앞에 것은 크기가 1/3 이하로 줄었어요. 뒤에 남아있던 건 거의 사라진 상태네요. 지금처럼만 치료 잘 받으시면 됩니다. 다만 신장 상태가 나빠져서 3차 치료부터는 항암제 용량을 다른 사람에 비해 절반 정도만 쓰고 있어요. 항암도 중요하지만 항암 끝나고 신장 투석 하시면 안 되니까 그 부분은 저희가 민감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병원에서 해 줄 수 있는 건 항암치료 6차까지 잘 받으시면 완치될 확률이 높아진다는 사실입니다. 6차까지 마치고 나서도 환자 몸 상태가 좋다면 표적항암제 임상시험에 참가하는 방법도 있어요. 그러고 나서도 병이 재발한다면 그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호스피스 병원 알아보셔야 해요.
남동생 : 그러니까 6차까지 항암치료를 잘 받으면 완치 확률이 높아진다는 말씀이시죠?
주치의 : 네, 맞습니다. 가족끼리 한마음으로 뭉쳐서 치료받아야지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면 환자 치료도 효율이 떨어집니다. 잘 말씀드렸으니 이젠 환자분도 항암 안 받는다는 말씀 마시고 마지막까지 항암치료 잘 받으세요.
남동생 : 네, 알겠습니다. (아버지를 쳐다봤으나 아버지는 아무런 말씀이 없었음, 그렇게 아버지와 뒤돌아서 진료실을 나옴)
주치의의 당부는 누나의 얘기와 크게 다를 게 없었다. 다만 주치의 본인이 가족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아들과 얘기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냥 누나에게 전달받아 들어도 되는 것을 굳이 바쁜 남동생이 와야 했나? 가족 중 아무나 시간 되는 사람이 와서 듣고 말하면 되는 거지, 꼭 아들이 들어야 해결이 되고 딸이 들으면 일이 망가지나? 아들만 찾는 주치의의 의중을 알 도리가 없었다.
그 진료 이후로 아버지는 몸이 좋아지는 게 느껴졌는지 항암치료를 거부하겠다는 말씀이 쏙 들어갔다. 차마 여기에 쓰지 못한 우여곡절 끝에 아버지를 포함한 가족 모두는 6차까지 치료받기로 확실하게 결정했다. 남은 건 병을 이겨내려는 환자 본인의 의지와 주의사항(암환자는 익힌 음식만 먹어야 합니다. 운동도 걷기 정도만 살살해야 하구요, 여러가지 제약이 많습니다)만 잘 지키면 되는데 고집이 매우 세고 하고 싶은 건 꼭 해야 하는 아버지의 성격상 주의사항을 얼마나 잘 지키실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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