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천 산책기

by 김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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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데믹 상황이 이어지면서 새로 생긴 취미는 산책이다. 집에서 삼 분 거리에 있는 우이천이 산책하기엔 최적이다. 도봉산에서 시작해 중랑천으로 이어지는 이 강은 한적하고, 평화롭다. 자전거 도로와 구분된 산책로에서 사람들이 천천히 걸어가고, 강아지들은 강변 풀숲 사이에서 풀냄새를 맡는다.


내가 강변을 드나들게 된 건 올해 초부터였다. 그 전까지는 저녁까지 밖에서 보내고 집에서는 잠만 자니 우이천을 갈 일이 딱히 없었다. 코로나19는 내가 집 주변을 최대한 벗어나지 않게 했고, 그제야 집 뒤의 우이천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나는 하루에 한두 번 우이천을 통해 수유역까지 산책하고 온다. 카페나 술집에 가고 싶거나 도저히 집에만은 못 있겠다 싶을 때 마스크를 쓰고 나간다.


나처럼 답답함 때문에 우이천을 찾는 사람이 올해 많이 늘은 게 분명하다. 작년에 내가 바쁘게 다리 위를 오고가며 강을 내려다볼 때는 강가 산책로가 이렇게 붐비지 않았다. 몇몇 등산객이나 산책자들이 드문드문 지나갔을 뿐이다. 다들 갈 곳이 많았을테니 강변을 걸을 시간은 없었을 것이다. 헬스장이 문 닫은 지금, 사람들은 운동 기구가 있는 곳에서 운동한다. 카페를 대신해 서로 걸어가며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부모님과 나와서 강을 부유하는 오리들을 구경한다. 내가 생각에 잠겨 산책을 하려면 이제 그런 사람들을 잘 비켜 걸어야 한다.


여름이 오면서 강물이 따뜻해졌을 때 사람들은 바지를 걷고 강이 얕은 곳에 들어갔다. 할머니들이 뒷짐을 지고 천천히 걸었고, 아이들은 머리까지 푹 빠져서 물장구를 치고 놀았다. 돌탑도 그 무렵 처음 생겼다. 누가 만들었는지 모를 돌탑은 언젠가부터 강가 모래밭에 동그마니 세워져 있었다. 누가 심심해서 세웠거니, 나는 대수롭지 않게 보고 넘겼다. 그 후 여름 내내 돌탑은 모래밭에 연달아 대여섯 개가 넘게 생겨났다. 그사이 확진자는 무지막지하게 늘어났다가 잠잠해졌고 다시 급속도로 늘어났다. 우이천의 사람들은 마스크를 은근슬쩍 벗거나 코에 걸쳤다가 제대로 쓰기를 반복했다.


인간사가 어떻게 흐르건, 강은 유유히 제 갈 길을 간다. 오리는 둥지를 틀고 왜가리는 송사리를 잡아 먹는다. 송사리는 떼를 지어 정신없이 헤엄치고, 그 위를 나비와 잠자리가 지나간다. 올해가 작년과 같았다면 나는 이런 것들을 보지 못하고 지나갔을 것이다. 예를 들어, 엄마 오리 뒤를 오종종 쫒아가는 아기 오리 다섯 마리, 징검 다리 위에 아이들이 돌과 풀잎을 가지고 소꿉놀이를 한 흔적, 한낮이면 교량 아래 그늘에서 장기를 두는 할아버지들과, 밤이면 그 교량 위에서 박쥐처럼 무리지어 잠드는 비둘기 떼.


강을 변하게 한 건 코로나 같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올해 쏟아졌던 심한 폭우였다. 몇 달 동안 하늘에 구멍난 듯 비가 쏟아지면서 산책로는 폐쇄됐다. 비는 그 전 날보다 적게 오거나 많이 올 뿐, 아예 오지 않는 날은 없었다. 강물은 자전거 도로까지 불어났다. 산책로는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오리들은 자전거 도로 끄트머리에 모여 비를 맞았다. 강물이 그렇게 불어나기 전에 엄마 오리는 아기 오리를 데리고 제방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 날도 비가 많이 내렸다. 산책로의 사람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오리 가족을 지켜봤다. 경사는 높은데 물살이 거세서 조막만한 아기 오리들이 계속 미끄러졌기 때문이다. 엄마 오리는 제방 위에서 날개를 퍼덕이며 초조해했다. 아기 오리는 계속 굴러떨어졌다. 사람들은 어쩔 줄 몰라했다. 다들 우산을 썼어도 빗물이 튀어서 옷이 젖어 있었다. 마지막 아기 오리가 열 번의 시도 끝에 제방에 올라섰을 때야 사람들은 흩어졌고, 나도 갈 길을 갔다.


폭우가 가라앉고 산책로가 다시 열렸을 때, 강물은 많이 탁하고 거셌지만 금방 제 모습을 찾았다. 변한 건, 돌탑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누군가 초여름 내내 쌓아놨던 돌탑은 물살에 휩쓸렸다. 가장 처음에 생겼던 돌탑만 남기고. 그 탑은 지금도 모래밭에 혼자 서 있다. 나는 강가를 지나며 그 돌탑을 볼 때마다 처음 그걸 쌓았을 사람의 대단찮은 마음과, 폭우에도 쓰러지지 않는 힘에 감탄한다. 올해 우리가 돌탑에 비는 소원은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가족의 건강, 일상의 회복, 이 시기가 그저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마음. 강물은 멈추지 않고 모래밭을 흐른다. 사람들은 그 옆을 걷는다. 잠깐 발길을 멈춰 돌탑 밑에 몸을 웅크리고 잠든 오리들을 본다. 그리고 다시, 저마다 갈 길을 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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