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전에 먹지 않아도 똥인지 된장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책을 줄창 읽었다. 책을 읽으면 세상 사는 법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독서는 정보를 얻기 위한 가장 구닥다리 방식이다.
책은 그 자체로는 재미있을 지 모르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것 같지 않다.
오히려 현실에서 발을 떼는 데 도움이 되면 모를까.
이런저런 풍파를 거치면서 책으로 세상을 알려 한 내 믿음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결론으로 도달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번에 난 또 같은 실수를 했다.
보호관찰 청소년에게 일대일 검정고시 멘토링을 해주는 프로그램에 선발됐다.
보호관찰 청소년들은 소년원에 가기 전, 혹은 소년원에 갔다 온 청소년들을 말한다.
발대식에 가니 국가에 대한 경례를 하고, 청소년 범죄에 대한 전문적인 설명을 했다.
보호관찰 청소년들이 얼마나 소외되었고, 제멋대로이고, 우리와 다른 삶을 살았는지...
나름 마음의 준비를 시킨 거겠지만, 별 생각 없이 멘토링을 신청한 나는 겁을 잔뜩 먹고 말았다.
오티 선생님이 어린왕자 속 여우와 왕자처럼, “네가 네 시에 온다면 난 세 시부터 행복해질 거야.”라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청소년들을 잘 길들여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난 그런 엄청난 일은 할 수가 없다! 나 자신도 제대로 간수를 못하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길들일 수가 있지? 난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보통 식은땀을 흘린다. 말도 더듬고...뚝딱거린다...
머리가 텅 빈 나는 도서관에 가서 청소년 문제에 관한 책을 잔뜩 찾아보고 말았다.
거기서 내가 만난 아이를 길들일 한 줄기 방법이 있는 것처럼.
소년원, 거리의 청소년, 가정 폭력. 한국 사회는 청소년에게 너무 암울하다.
책 속에서 아이들의 특수한 삶은 한 권의 사회적 문제로 붕 떠오르고 있었다. 내 어깨는 더 무거워졌다.
문제적인 아이들. 특별한 아이들. 아직 만나보지 않아 베일에 싸인 상태에서 이런 말만 듣다 보니
내 머릿속에서 미지의 내 멘티가 음울하고 반항적이고 불우한 모습으로 빚어지고 있었다.
멘토링을 시작한 지 한 달이 되어가는 지금, 우리는 순조롭게 공부하고 있다. 먹을 걸 사들고 가 소소한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내가 들은 어떤 말도, 내가 읽은 어떤 책도 내 멘티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한 사람은 무엇으로도 환원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만의 일상, 흥미, 습관, 고유한 삶... 그걸 미리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어떤 단어도 한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를 단숨에 표현할 수는 없다.
타인을 알아간다는 건 서서히 서로의 특징에 익숙해지는 걸 말하는 건 아닌지.
검정고시를 치른지 벌써 7년이 된 내가 횡설수설 개념을 설명하면, 멘티는 잠깐 멈칫하다 “아, 오키오키”하며 답을 맞춘다. 그 신기한 과정 속에서 난 문제를 푸는 그의 옆 얼굴을 가만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