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 하나,스물넷

인터뷰의 어려움

by 김나은




노트북 앞에 앉아 일주일 내내 이어폰을 끼고 녹취록을 풀던 나는 더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악 내지르며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화가 치밀어 올랐고 이 프로젝트는 영영 물거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의 삶을 글로 쓰겠다는 처음의 목표는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꺾여, 나는 할머니가 싫어져 버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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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여든한 살인 친할머니는 1941년 충남 태안 시골 마을의 영세한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다. 말이 양반이지 농사와 길쌈만을 업으로 하며 자식 여덟과 초가집 한 칸에서 복작거리며 산 집이었다. 올 초 할머니 이야기를 바탕으로 책을 만들겠다는 어설픈 프로젝트 계획서를 써서 낼 때 나는 할머니를 명절 혹은 두어 달에 한 번 보면 많을 정도로 자주 보지 않고 있었다. 일 년에 네댓 번, 그게 할머니와 나의 평균적인 만남 횟수였고 만날 때에도 아버지나, 작은어머니 등 다른 사람이 있어서 단 둘이 시간을 보낸 적은 거의 없었다. 여자는 배우면 여수(여우)가 된다는 부모님의 반대로 한 번도 학교 문턱도 밟지 못한 할머니는, 내게는 그 대신 속에 옛이야기를 아주 많이 담고 있는 분처럼 보였다. 전래 동화, 도깨비 이야기, 돌아가신 증조할아버지 이야기 등이 명절이면 밥상머리 앞에서 하나둘씩 풀려나왔고 난 전 쪼가리를 집어 먹으며 세상 다시 없이 재밌게 그 이야기를 들었다.


할머니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남겨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도 다 그 때문이었다. 노인 한 명이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는 격언과, 할아버지가 죽고 난 후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텔레비전을 보고 계실 할머니의 모습, 점점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다는 할머니의 말 등이 겹쳐 나는 하루빨리 생애사 인터뷰를 진행해야겠다는 생각에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내게 할머니의 지난 삶은 흥미로운 옛이야기였고, 그녀의 입을 통해 박물관에서나 봤을 법한 이야기를 직접 듣는다는 재미를 느낄 거라 기대했다. 할머니는 이미 내게 준비된 한 권의 책이었다. 내가 간과했던 것은, 할머니의 삶은 아직 현재 진행 중이며, 그녀도 나도 아직 벗어나지 못한 복잡하고 험난한 우리 가족사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난 인터뷰를 위해 거의 주말마다 할머니 댁을 찾았고 한 번 갈 때마다 짧게는 서너 시간 길게는 여덟 시간 분량의 녹음본을 얻었다. 생전 인터뷰를 해본 적이 없는 할머니는 질문에 관계없이 당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원할 때까지 하셨고 나는 몇 시간 동안 녹음기를 켜놓은 채 고개를 끄덕이며 적당한 반응을 해주며 듣는 게 인터뷰 진행 과정이었다. 부처님, 사주팔자, 아버지가 할머니의 전 재산을 ‘홀랑 벗겨먹은’ 사연과 그렇게 아버지 집안을 홀딱 빨아먹고도 십 년 전에 제멋대로 이혼한 몹쓸 며느리인 내 엄마에 대한 험담. 아무리 나와 내 언니가 ‘이끔 세상’에 산다 하더라도 부모 공덕을 모르고 자유라는 이유로 저 잘난 맛에 살면 안 되며, 어떻게든 돈을 모아 빚에 허덕이는 아버지를 도와주어야 한다는 설교. 인터뷰 녹음본의 7할은 이걸로 채워졌고, 나머지는 내가 그나마 듣고 싶어 했던 옛이야기들로 채워졌다. 누에 치고 뽕따고, 단옷날엔 널 뛰고 아궁이에선 육이오 총탄이 터지고.


할머니 집에서 직접 그 넋두리를 들을 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게 어렵지 않았다. 대충 고개를 주억거리며 다른 생각을 하면 됐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원 사업에 합격해 인터뷰를 시작하게 되었을 때 아버지와 나눈 대화 같은 것.


-할머니 인터뷰를 해서 책을 만들 거예요.


-네가 할머니를 인터뷰한다고?

-네, 재밌을 것 같지 않아요?

-쉽지 않을 걸.

-아빠의 엄마잖아요. 팁 같은 거 있어요?

-할머니를 다루는 건 말이야… 할머니는 돌고래 모는 것처럼 살살살 몰아야 제대로 된 이야기가 나와. 너 그거 할 수 있겠니.

-에이, 사람이 무슨 돌고래겠어요.


할머니 돌고래, 돌고래. 내 의도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그 비유는 지금도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 팁을 이해 못한 내가 보기 좋게 실패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해했어도 돌고래 모는 법 따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내 좁은 소갈머리는 인터뷰 당시에는 무던하게 고개를 주억거렸을지 몰라도 막상 집에 와 녹취록을 풀고 있자니 성질이 뻗쳐올랐다 가라앉기를 계속 반복했다.


언니와 내가 아들이었어도 할머니는 내게 곧 죽어도 아빠 빚을 내가 먼저 대신 갚아주어야 한다고 말했을까? 게다가 할머니 재산을 홀랑 벗겨먹은 건 무능력한 아버지나 지독한 엄마나 마찬가지인데 어째서 아들은 불쌍하기만 하고 며느리는 천벌 받을 사람이 되는가? 할머니가 지금도 원망하는 사람은 모두 여자이기만 하다는 것. 남편이 죽자 줄줄이 낳아놓은 딸 넷을 두고 도망가버린 할머니의 작은 동서, 아들을 낳은 것도 아니면서 자식 제대로 키운다는 명목 아래 자기 아들을 쥐 잡듯이 잡아 고생시키고선 홀랑 이혼해버린 내 엄마, 남의 자식이면서도 애써 키워주며 결혼까지 시켜놨더니 할아버지가 죽자 부조금으로 겨우 이십오만 원만 내놓고 얼굴도 들이밀지 않는 네 명의 조카딸들. 쓸만한 남자 따위 없으니 결혼 안 할 거라며 당신이 말 한마디만 꺼내도 단박에 무질러버리는 내 언니까지. 이 여자들은 공통점은 부모와 남편 공경할 줄 모르고 저 하고 싶은 대로 산다는 것이었다. 팔십 평생을 유교 법도에 얽매여 글자 하나 배우지 못한 채 시집살이와 병시중, 돌봄 노동, 농사와 밭일만 하며 산 할머니가 보기엔 괘씸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할머니 옆에 앉아 함께 커피를 마시며 난 서서히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아가고 있었고, 그로 인해 죄책감과 슬픔과 짜증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건 내가 할머니를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일은 있어선 안 될 것 같았다. 할머니는 내가 더이상 받아들일 수 없는 가치관을 여전히 섬기고 있었다. 할머니가 내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고 있는데도 그걸 덮어두고, 그저 그녀에게 굴복하게 될 법한 애틋한 정을 가진다는 건 패배일 뿐 아니라 내 삶과 나라는 인간에 대한 모욕이라고 느꼈다. 더해 그건 할머니의 재산을 ‘홀랑 벗겨먹은 뒤 길바닥에 돈을 뿌려가며’ 딸 둘을 어떻게든 서울로, 해외로, 더 먼 세상으로 보내고자 했던 엄마의 삼십 년 세월에 대한 모욕이기도 했다.


할머니가 내게 바란 것: 참회 업장. 업장소멸. 내 업보를 참회하고, 네 잘난 맛에 살지 말고 겸손하게 부모 공양하며 하루빨리 좋은 직장을 잡아서 사치로 돈 낭비하지 말고 하루빨리 아버지 빚 갚아주고(매우 중요!) 우둘우둘 괜찮은 남편 얻어서 절대 남편에게 눈 부라리지 말고 아들 낳아서 화목한 가정을 꾸린 뒤 남들에게 눈총 받지 않고 그냥저냥 살다 부처님 앞에 참회하고 가는 것. 당신처럼.


녹취록을 푸는 내내 나는 바를 정자로 할머니의 이런 되지도 않는 넋두리의 횟수를 적다 스무 번을 넘었을 때 종이를 찢고 노트북을 쾅 닫았다. 인터뷰 당시에도 듣고, 녹취록을 풀면서 또 들으니 그 소리가 도합 마흔 번을 넘어가고 있던 것이다. 게다가 녹취록 원고를 쓸 땐 손과 머리 모두 할머니 목소리에 집중하고 있어야 해서 고역이었다. 할머니의 넋두리를 듣고 있으면 나는 죄스러운 존재이며, 그 불쌍한 아버지의 채무자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이 보지도, 멀리 나가지도 말고, 전부 돈 나가는 일일 뿐이니까. 그저 얌전하고 부지런하게 희생만 하다 가는 것이야말로 내가 살아야 할 바른 삶.


기껏 하는 말이 늘 이모양이니 아무도 찾질 않지. 난 성질이 뻗쳐서 일어나 방 안을 뱅뱅 돌았다. 지금 시대가 어떤지도 모르고, 어떻게 며느리고 손녀고 다 당신처럼 목줄에 묶인 개처럼 집 안에서만 살길 바랄 수가 있나. 그게 사랑인가. 사랑 일리가 없지. 세상 물정은 하나도 모르고 저런 허무맹랑한 소리나 계속하니 아무도 찾지 않는 집에 시들시들하게 앉아있기나 한 거라고, 나는 나대로 혼자 가혹한 소리를 뇌까렸다. 인터뷰는 인터뷰고, 이야기는 이야기고, 분노는 분노고, 할머니는 할머니인 것을. 사실 난 이 네 가지 중 무엇하나 제대로 다루고 있지 못하다는 무력감에 휩싸여 있었고, 그 와중에 녹음본 속 할머니의 목소리는 가스레인지에 주전자 올려놓은 것 마냥 날 들들 볶아대고 있던 것이다.


난 아무리 고민해봐도 할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아니면 이해하고 싶지 않은 거였을까?) 어떻게 그 고된 시집살이를 그저 참고 해낼 수 있으며, 단 한 번도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고, 책도 한 권 읽지 않고, 사람을 만나지도 않고, 반항하지도 않고, 그저 내면과 외면 모두 시키는 대로 순종하며 살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난 부처님과 사주팔자와 유교 법도를 걷어 낸 할머니의 속 안 쪽에 무언가 있을 거라 믿었는데, 그 안은 그저 공허한 건지 아니면 내가 찾아내지 못하는 건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지간한 사람이 양파 같은 내면을 가지고 있다면 할머니는 수박 같아서 아무리 두들겨도 껍질이 깨지질 않았다. 그런 면에서 이 인터뷰는 어설픈 펜싱 싸움 같았는데, 내가 할머니 가장 내면의 속 얘기를 향해 찔러대는 동안 할머니는 아버지에 대한 내 부채감과 죄의식, 내 엄마에 대한 수치심 등을 건드려댔기 때문이다. 우리 둘 다 황소고집이라 꿈쩍도 안 한다는 점에서 비슷하기는 했다. 난 할머니가 얼마나 열심히 볶아대건 내 빈약한 주머니를 열어 아버지에게 한 푼이라도 줄 생각은 추호도 없기 때문이었다. 할머니도 내 인터뷰와, 자신의 이야기가 어떻게 풀려나올 것인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녀의 관심사는 내가 아버지를 얼마나 성심껏 돌보고, 엄마에 대한 당신의 억울함에 내가 얼마나 겸손하게 공감을 표하는지였다.


난 방 안을 뱅뱅 돌다가, 침대에 누웠다가, 맥주를 꺼내 마셨다가, 이문구 <관촌수필>을 꺼내 충남 해안 지방의 사투리가 그대로 반영된 양반집 자제의 고릿적 시대 얘기를 지루하게 읽다가, 할머니의 입담을 근거로 판단하건대 그녀가 글만 배웠더라면 이보다 훨씬 더 재밌는 얘기를 썼을 거란 생각을 하다가, 아버지와 전화 통화를 했고, 느지막이 침대에서 일어나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무엇이 화를 가라앉혔는지는 모르겠다. 아버지와의 통화 때문인 지도 모르고, 내 분노와 상관없이 할머니가 나보다 훨씬 더 오래 외로운 사람이라는 사실 때문인 지도 모르고, 사랑이 있건 없건 그녀가 내 할머니이고 내가 그녀의 손녀이므로 그 사이엔 사라지지 않을 절대적인 관계가 남아있다는 인식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와의 통화.


-어떻게 돼가니?


-아빠, 전 이제 할머니가 싫어요.

-내가 그럴 줄 알았지.


난 전화로 내 불만과 짜증과 화를 늘어놓았고 아버지는 낄낄낄 웃었다.


-이해할 수 없어도, 해야지. 팔십 평생을 그렇게 아무도 듣지 않고 홀로 늙은 거 아니냐.


그게 다야. 외로운 삶이지.

-내가 고민하는 건 어디까지 쓰느냐에요. 싫은 걸 좋다고 써요? 아니면 싹 다 지워요? 아니면…

-전부 써야지.

싫은 것도 좋은 것도 다 쓰고, 그다음엔 알아서 이야기가 만들어지게 둬.

-글이 무슨 파 농사짓는 것두 아니구...


난 100여 장이 훌쩍 넘어가는 녹취록 파일 화면을 앞에 두고 아득한 기분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