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밤중에 소가 찾아온 이야기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

by 김나은

할머니 구술생애사 인터뷰 과정에서 나온 재밌는 옛 이야기들이 있다. 그냥 없애기 아쉬워 글로 남겨둔다.


밑의 글 속 '임순'은 나의 할머니 유임순이다. 그녀는 올해로 여든 두 살, 1942년 생이다. 충남 태안의 시골 마을에서 길쌈과 누에치기를 하며 자랐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인 나는 임순의 손녀. 올해 스물 다섯. 임순이 태어나고 오십 칠 년 뒤 내가 태어났다.




<오밤중에 소가 찾아온 이야기>


초가집 방 한 칸에 동기간이 항꾸 모여 살던 시절. 임순의 아버지는 쟁기보재기질(쟁기질)을 배우지 않아 농사일에 서툴렀다. 임순의 어머니는 그를 대신 해 산 너머 집에서 소와 일꾼을 불러다 쟁기보재기질을 시켰다. 일꾼은 멀리서부터 임순의 집까지 소를 데리고 와 임순네 땅에서 일을 하고 갔다. 임순의 나이가 열 살 정도였던, 어느 여름날 밤. 방에 누워 자는데 어디선가 딸-랑! 하는 소리가 들렸다.


딸랑-딸-랑!


‘옛날이는 소 모가지다 방울을 달었다. 워낭이라구 허지. 소가 워디가 있는지 알려구. 그 워낭 소리가 밤중이 마당이서 들리는겨. 우리 집은 소 키우지두 않는디.’


임순의 귀에 딸랑 딸랑 워낭 소리가 울리고, 소가 콧김을 뱉는 것 같은 크흥- 소리도 들렸다.


-옴마, 밖이서 워낭 소리 나구, 막 소가 한심 쉬는 거 같은 크흥! 소리두 나.

어린 임순이 말했다.

-무셔. 옴마. 밖이서 무신 소리 나.

임순의 어머니가,

-아이, 이 밤중에 무신, 소가, 누구네 소가 우리 집에 오노! 애가 벨 소리를 다 헌다. 언능 자!

-옴마, 그 소리 또 나.

말소리에 임순의 큰언니가 깼다.

-성, 저 소리 안 들리나?

임순이 큰언니한테 물었다.

-증말 무신 소리 들린다. 잘못 들은 건 아니네.

임순의 아버지가 문 열고 나가보았다.

-저기 조 씨네 황소가 우리 마당에 오노 자네.

아버지가 다시 들어오며 말했다.

-마당에 드러눠서 자.


‘소가 드러눠 자믄, 머리를 살짝만 움직여두 워낭이 딸랑딸랑 허니께, 그 소리가 들린게더먼. 소가, 우리집에 매번 쟁기보재기질 일해주러 오던 조씨 네 소여. 워찌 왔는지 밤중에 우리 마당에 오노 잤던겔라. 우들은 그냥 그런갑다 허구 다시 잤지. 그 조씨 네 집 식구들은 밤새 자지두 못허구 소 찾으러 댕겼다드라.’


조씨 네 집은 산 너머로 꽤 멀리 떨어져 있었기 떄문에 소는 산등패기를 한참 넘어왔을 것이다.


‘우리 어무니가 짐승게다 잘 혔어. 보리 이삭 갈어서 소 죽 쒀 주구, 큰 재배기(그릇) 두 개에다 소죽을 잘 저어서 만들어 놨다. 하나는 일 허지 전이 먹구, 하나는 쉴 때 오노 새참으루 먹게 헌다구. 소들두 죽을 암치게나 쑤믄 안 먹어. 그러믄 소 주인두 속 상혀서 그 집 밥 안 먹어. 죙일 일 시키구 부릴 생각만 허구 밥두 암치게나 줘서 소 안 먹게 헌다구. 우리집에선 그 소가, 죽을 남긴 적이 한 번두 읎어. 장작불 때서 폭폭폭폭 솥치게 끓여다 맛있게 해주니께, 그 맛있게 먹은 걸 기억하구 온 게다.’


다음 날 임순의 아버지가 조씨 네 집에 가서 소식을 전했다. 그 집 식구들은 사라진 소가 남의 물건을 다 망가뜨리고 다닐까 봐 한숨도 자지 못했단다.


‘여름에는 밭을 많이 가니께 소를 많이 데려다 썼지. 자주 오가니께 우리집을 한 식구라구 생각혔나 봐. 그 소가.

울 어무니가 걔 등을 살살 쓰다듬으마,

-잘 먹어라, 이? 애썼다. 일 허느라 애썼지? 많이 먹어라.

해줬으니께, 그게 좋았나 봐. 우들도 어려서 마실 대니마 놀러간 집에서 맛있는 거 주구 잘해주믄 한 번 더 가구 싶은 마음 드는 것처럼, 소두 똑같은 마음이 들었는게라.’


이처럼 소와 같은 한낱 짐승도 사람과 꼭 같은 생각과 마음이 있으니, 언제나 인정(人情)으로 착하게 대해야 한다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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