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가 없던 임순의 젊은 시절. 마을 사람들은 모두 밤이면 등잔불을 켜고 살았다. 그 시절 캄캄한 밤에는 도깨비불이 자주 나타났다. 젊은 임순도 도깨비가 켠다는 그 푸른 불을 많이 보고 살았다.
‘도깨비불이 눈앞 여기서 번쩍! 허믄 막 저쪽으루 죽죽죽죽 날러가서 또 번쩍! 허구 또 자아기 멀리서 번쩍! 허구’
임순은 그 불빛만 봐도 겁이 났다. 특히 구질구질하게 비가 오고 축축한 날에 산자락에서 도깨비불이 나타나면 특히 무서웠다. 시어머니 정년은 임순만큼 겁이 많지는 않았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밤 열 한시, 정년이 임순의 집(당시 분가한 상황)에 들렸다 느지막히 자신의 집으로 올라가려 대문을 나오니 맞은편에서 도깨비불이 번쩍번쩍 나타나 푸른 ‘빛줄기를 찔찔찔찔 흘리마 불떵어리 떨어트리듯 흩뿌리고 시뻘개졌다 퍼래지’며 정신없이 사람을 홀렸다.
-저노무 도깨비불, 왜 저 지랄허구 대녀. 내가 도깨비불 본다구 끄덕이나 할 중 아니!
정년은 그렇게 내뱉으며, 성큼성큼 자기 집으로 향하는 어두운 언덕길을 올랐다. 임순은 그 불을 보니 ‘머리가 하늘로 솟고 몸띵이가 막 쪼이는 것 같이 땡기고 무셔’웠다고 한다.
도깨비는 사람을 붙잡으면 뒹굴고 감아서 싸운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월산리는 특히 도깨비가 많았던 것 같
다. 임순은 시집살이를 하는 동안, 밤새 도깨비와 싸운 산 등 너머 남자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 남자는 밤중에 길을 가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와 싸움이 붙었다. 밤새 뒹굴어가마 누가 이기나 싸웠다.
‘도깨비인 중 몰르구 기냥 싸우는디, 그 남저가 워칙허다 상대 손을 잡으니께 구녕으루 손가락이 쑥 들어가드랴. 도깨비가 워디 다쳤나벼. 그러니 구녕으루 손가락이 쑥 들어갔으니, 그 상태루, 질바닥에 있는 지랑풀을! 잡아당겼댜.’
지랑풀은 길옆에 나는 잡초 비슷한, 길쭉한 풀이다. 남자는 도깨비 구멍에 손가락을 넣은 채로 다른 손은 지랑풀을 가져다 그 구멍에 밀어 넣고 꼭꼭 묶고, 새끼를 꼬아서 한 번 더 묶었다. 남자는 그대로 집으로 가 잔 뒤, 날이 밝아 싸움 장소로 가보니 지랑풀로 묶인 자리에 도리깨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도리깨는 깨나 콩을 두드려서 터는 농기구다.
‘밤새 싸운 게 도리깨 도깨비였던 것이지.’
남자는 싸움에서 이겼지만, 도깨비가 사람을 죽일라고 끌고 다니다 포강에 풍덩 빠지면, 사람이 함께 빠져 그대로 죽는 수도 있다고들 했다.
그 시절에는 변소에 짚을 쌓아두고 밑을 닦았기 때문에, 그 짚들을 쓸어내는 ‘대빗자락’이 있었다. 날이 궂은 때면 그 대빗자락이 날아다녔다.
‘아주 빗자락이 거꾸로 쳐들려서 불 켜가마 이리 번쩍 저리 번쩍하마 널러 대녔다. 도깨비 됐응께!’
그 ‘뒷빗자락’이 도깨비 되어 욕봤다는 얘기가 많아서 마을 어른들은 변소 빗자루는 절대 그냥 버리지 않고 화장실 주변에서 불로 때어 없애 버리게 했다. 전기 없던 시절, 어두컴컴한 밤에는 도깨비불이 번쩍거리며 산자락을 날아다니며 사람들을 겁먹게 했지만, 가로등으로 온 세상이 환해지고 어두운 밤도 사라지면서 도깨비들도 더는 날지 못하고 점차 사라져 버렸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