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교실에서 일하기
초등 돌봄교실에서 일년 반 동안 일했다. 시급 11,150원. 난 돌봄 세 반 중 유일하게 8시간 전일제인 1반 선생님의 보조로 일하면서 잡다한 서류 처리와 아이들 돌봄을 맡았다. 1반 선생님은 이 학교에서 8년 째 근무 중이다. 작년부터 이명과 두통이 심해져서 이제는 그만둘 거라고 내게 여러번 말한다.
“조금만 큰 소리가 나면 머리가 너무 아파서 더는 일할 수가 없어요. 올해는 정말 그만해야지.”
약을 먹어도 선생님의 두통이 잘 낫지 않아서 1반 아이들은 조용히 놀아야 한다. 데시벨에 신경쓰다보면 아이들이 내는 소음이 얼마나 크고 높은지 실감하게 된다. 우는 소리, 웃는 소리, 다투는 소리, 흥분할 수록 목소리는 쨍쨍 올라간다. 장난감끼리 부딪치고, 레고 블록을 뒤지는 소리가 가장 요란하다. 8년 동안 매일 여기서 일하다면. 1반 선생님의 이명은 직업병일까?
1반 선생님은 돌봄 교실의 서류 작업을 총괄한다. 근로 계약, 프로그램 계약, 부자재, 등록생 관리…선생님은 컴퓨터 앞에서 일어날 새가 없고 사과박스로 만들어진 파쇄 서류는 금방금방 차오른다. 돌봄 교실이란 사실 서류로 만들어진 건물이 아닐까? 아이들이 그 안에서 우당퉁탕 뛰어다니는 종이집.
난 한 달에 한 번 결재를 받으러 행정실로 찾아간다. 결재 서류는 시간제 돌봄 교사들의 근로 계약 갱신. 시급은 10,702원. 시간은 주15시간 미만. 나는 다른 선생님들의 시급을 알 생각은 없었지만 어쩌다 알게 된 이후로는 계속 신경 쓰였다. 선생님들이 나보다 적게 받는다니. 난 이 일을 할 경력도 자격증도 없다. 내 시급이 높은 건 내가 한국장학재단 소속의 근로자이고 장학금 명목으로 돈을 받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와 크게 다르지 않은 내 상황과 달리 시간제 돌봄 교사들은 자격증이 필요하고 엄연히 근로 계약서를 쓰는 피고용자다. 업무량도 많고 학부모 민원도 상대해야 한다.
시간제 선생님의 근무 시간은 하루 두 시간 반. 돌봄 교실은 8시간 운영하기 때문에 하루에도 두세 번씩 선생님이 바뀐다. 한 학교에서만 일하는 선생님은 거의 없다. 그러면 한 달에 삼십만원 정도인 보수가 너무 적기 때문이다. 이 학교 저 학교로 오가느라 퇴근 10분 전부터 자리를 뜬다. 결근이라도 나면 보충 인력은 없다. 주 15 시간 미만 계약으로 어떻게든 인력을 메꾸려는 1반 선생님의 노력은 대단하다. 하지만 거미줄처럼 촘촘한 주변 시간제 돌봄 교사들의 근무 시간은 여유치 않고, 대부분 내가 투입된다. 스무 명의 어린 애와 물에 술 탄 듯 일하는 대학생 한 명! 처음 대체 인력이 됐을 때 나는 무척 당황해서 식은땀이 났다. 무슨 일이라도 나면 어떡하지!? 고학년을 담당하는 선생님이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날 보고 말했다.
“선생님. 조심해야 해”
“네.”
“여기선 절대 자기가 했다고 하지 마. 책임질 일을 만들면 안 돼. 그냥 시키는 대로 했다고만 하고, 딱 그만큼만 하는 거야. 살짝만 어긋나도 아무도 책임 안져. 독박 쓰는 건 자기야.”
난 그 충고를 받아들여서 최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있을만큼 눈치껏 일하는 기술을 익혔다. 감정소모는 줄이고 시간이 빨리 지나기만 기다리는 기술. 3학년부터 받는 고학년 돌봄교실은 교육청 소속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소속이다. 고학년 돌봄교실은 건물 2층에 동떨어져 있고, 부자재도 턱없이 부족해 다른 반에서 남는 책과 재료를 받아온다. 고학년 담당 선생님의 계약서상 퇴근 시간은 3시 반이지만 사실 다섯시가 넘어서 퇴근한다. 서류와 아이들 돌봄을 동시에 할 순 없고, 아이들이 거의 가고 난 네 시부터야 서류 작업을 하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나중에 이런 거 말고 제대로 된 직장 가. 아직 젊잖아. 공부 열심히 해서 제대로 된 직장 가.”
내가 이 일이 꽤 적성에 맞는다고 말하자 고학년 담당 선생님은 내 어깨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런 일이란 뭘까? 제대로 된 직장이란? 난 직업의 사다리를 오르는데 아무 관심도 없었다. 나는 그냥 생계비가 필요했고, 내 시급에 만족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 계속 일해야 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고학년 돌봄교실의 오전 시간제 선생님, C씨는 돌봄교실 전담사 총파업날 내게 햄버거와 커피 세트를 사줬다.
“이상한 사람들이야. 우리는 저 사람들만큼 노력을 안 했잖아. 그런데 똑같이 대접받으려 하면 안 되지. 저 사람들은 그만큼 힘들게 공부했으니까 받는거라고. 우리는 말이야, 봉사하는 거야. 봉사한다고 생각해야지 안 그러면 일 못해.”
난 고개를 끄덕였지만 하나도 공감하지 않았다. 일은 일이다. 형편없는 대우를 대가로 받는다는 모멸감말고 순전한 만족감을 줄 봉사활동은 차고 넘친다. 돌봄 노동은 특히 노동자에게 여러 자질을 요구하는 일이다. 아이들에게 쏟을 상당한 에너지와 사고력, 수용력. 돌봄은 통제와 관련되어 있고 그런만큼 자기 절제와 책임감이 무엇보다중요하다. 돌봄 교실의 근무 조건이 이런 자질을 독려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많은 돌봄 전담사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그에 따라 내가 생계와 피로로 지친 엄마한테서 겪었던 것과 비슷한 태도로 아이들을 대한다. 하지 마! 가만히 있어! 넌 정말 이상하고 날 너무 힘들게 해. 봉사한다는 마음은 그냥 전부 뒷전으로 넘겨버리고 싶은 마음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건 의지도 책임감도 의무도 다 필요 없는 그저 그런 일이다! 싶은 마음. 무책임할지 모르나 나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그 무책임함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데 노동자가 어디에 책임감을 가진단 말인가?
“선생님은 여기서 왜 이렇게 오래 일해?” C씨가 내게 물었다.
“시급이 세니까요.”
“얼마 받는데?”
“11,150원이요.”
C씨가 커피를 내려놓고 어이 없다는 듯 날 보았다.
“그게 많아? 난 말이야, 학원에서 일할 때 가장 적을 때도 시급 5만원씩 받았어. 그 밑으로는 내가 안 한다고 했어. 내가 그만둔다고 하면 원장님이 날 붙잡았다니까.”
이어 C씨는 스카이 대학을 나온 국어강사였던 자신의 이력을 길게 이야기했다. (“난 전부 다 해봤어. 알아?) 그녀는 결혼했고, 강사 일을 그만두었고, 이제 다섯 살짜리 아들이 있고, 돌봄교실이 끝나면 바로 유치원으로 가 세 시간씩 일한다. 난 그녀가 보육교사 자격증 말고도 사회복지자격증을 따려고 애쓰는 걸 안다. 자격증 하나로는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좋아서 하는 일이지. 언제든 그만 둘 수 있어.”
C씨가 그만두면, 그녀는 다시 시급 5만원의 일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 시기에 난 에너지가 구멍 난 모래포대처럼 술술 빠져나가는 느낌에 지쳤고, 일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와 이 일을 계속하면서 살 수 있을까?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무엇이 우리는 일하게 만들까? 더해, 무엇이 우리가 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하는걸까? 마음 가짐? 시급? 종종 못 견디게 사랑스럽고, 금방 사그라드는 아이들을 향한 애정? 이런 것들이 언제까지 이 일이 ‘제대로 된 직장’이 아니라는 모멸감을 참아낼 수 있게 할까? 누구도 대답해주지 않으므로 이런 감정을 소화하는 건 노동자의 몫이다.
한 달 뒤에 C씨는 돌봄교실을 그만두었다. 유치원에서 주 5일 6시간 근무를 제안했기 때문이다. 고용보험에 퇴직금까지 주는 곳이라 결정했다고 했다. 나는 C씨의 근무 마지막 날 그녀에게 잘 가라고 인사하고 싶었지만 대체 인력으로 돌봄 2반에서 스물 세 명의 아이들과 씨름하고 있느라 시간이 없었다. 내가 그날 2반 미닫이 문의 작은 창문으로 본 건 퇴근하는 C씨의 이마였다. 그녀는 빠르게 걸었고 뒤돌아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