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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자책봉 Mar 29. 2024

비정한 현실은 왜 또 우리를 금융위기로 내모는걸까

<금융의 지배> / 니얼 퍼거슨

※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의 금융역사책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투자를 열심히 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추천하는 책입니다.


내가 그 어느 때보다도 확신하는 사실 하나는, 금융 분야에서 종의 기원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경우 화폐에 대한 진실도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금융 시장은 최근 독일 대통령의 불만처럼 '제자리에 도로 넣어야 할 괴물'이 아닌 인류를 비추는 거울과도 같아서, 우리가 일하는 매 시각 우리 자신뿐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평가해 준다. 매력뿐 아니라 결함 또한 또렷이 비춰준다면 거울에는 잘못이 없다.
- 니얼 퍼거슨(저자)

금융을 이해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위기의 시대에 돌아보는 세계 금융의 역사


<금융의 지배>


차례

1부. 탐욕의 꿈

2부. 채권의 득세

3부. 거품 만들기

4부. 위험의 도래

5부. 절대 안전 자산

6부. 제국에서 차이메리카(Chimerica)로


저자 소개

작가 니얼 퍼거슨

1964년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출생. 옥스퍼드 대학교 모들린 칼리지에 장학생으로 입학. 1985년 최우등으로 졸업하였다. 근대 제국주의에 관한 정통 학설에 도전한 수정주의 역사가로도 알려져 있으며, 저널리즘에서도 다양하고 폭넓은 활동을 하고 있다. 함부르크 및 베를린에서 2년간 연구하였으며, 1989년 케임브리지 대학교 크라이스트 칼리지 연구 교수를 지냈다. 그 후 피터하우스 칼리지와 1992년 옥스퍼드 대학교 지저스 칼리지에서 근대사를 강의하였다. 2000년 옥스퍼드 대학교 정치사 및 금융사 교수를 지냈다. 현재 하버드 대학교 역사학 교수이자 비즈니스스쿨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5년 미국 외교 전문지 <포를린폴리시>와 영국 정치 평론지 <프로스펙트>의 '이 시대 최고 지성 100인'으로 선정되었다. 주요 저서로는 <제국>, <현금의 지배>, <종이와 쇠>, <실제의 역사>, <전쟁의 이면>, <콜로서스>, <증오의 세기>, <시빌라이제이션> 등이 있다. 


시퍼런 색의 배경에 돈 모양의 눈알을 가진 인물이 그려있는 표지가 이목을 끄는 오늘의 책은 바로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의 <금융의 지배>다. 부제로는 '세계 금융사 이야기'를 갖고 있는 이 책은 부제에서 나타나듯 인류가 금융 시스템을 도입한 이후에 발생했던 여러 가지 일들 중 특히 금융으로 인해 인류의 역사에 중차대한 일이 발생했다거나 반대로 인류에 역사적 흐름에 좌우되던 금융계의 역사와 그 뒷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물물교환이 시작되던 선사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인류는 방대한 역사와 함께 금융, 그러니까 상호 간의 거래에 대한 개념 역시 발전해 왔는데 작가는 그중에서도 인류역사상 최대 팽창의 시대라고 불릴 수 있을 정도로 신대륙 개척에 힘썼던 대항해시대부터 작가가 글을 쓰는 시점인 2008년 금융위기 초입까지를 중점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 책이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경제와 역사 전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잘 알고 있을 신대륙으로부터 막대한 양의 금, 은이 유입되면서 스페인에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는 이야기나, 주식시장의 최초 모델 격인 길드(Guild)가 네덜란드에서 신대륙 개척에 대한 자금을 모집하며 발전했다는 것 이외의 새로운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아르헨티나의 국가명 자체가 스페인 정복자들이 부르던 '은'에서 유래되어 실제 국가명의 뜻이 '은의 나라'라는 것이나, 서구문학에서 등장하는 가장 유명한 고리대금업자(셰익스피어, 베니스의 상인)가 베니스에 기반을 둔 것이 우연이 아니라 당시 상업의 중심지였던 베니스의 상인들이 기독교인과 달리 빠져나갈 구멍이 있던 유대인들과 접촉하며 베니스를 중심으로 고리대금업이 성행했다는 것들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책의 '제3장 거품 만들기'에 등장하는 '존 로'라는 인물의 이야기였다. 당연하게도 나는 이 인물을 책을 통해 처음 접했고, 그의 기이한 행동에 놀라면서도 비슷한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그의 서사에 더욱 끌렸다. 베니스의 산모이제 성당에 묘비가 있는 존 로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이름 있는 가문의 아들로 태어나 세계 최초로 자산 가격 거품과 붕괴를 만들어낸 인물이다. 젊은 시절부터 투기사업과 도박 등에 몰두하던 그는 물려받은 재산을 탕진하다가 실수로 동료를 죽이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도망쳤다. 그런데 1690년대 금융 혁신의 세계적 수도였던 암스테르담은 존 로에게는 최상의 도피처였다. 로는 자신이 도박에 빠졌던 것처럼 네덜란드의 금융 시스템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특히 완벽하지 않은 금융제도 탓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주가를 떨어뜨리려 음해 소문을 퍼뜨리며 투기 거래를 하는 전문가들의 행태에 매우 큰 감명을 받았다. 일찍이 금융제도의 개선사항, 안 좋게 표현하면 빈틈을 간파했던 로는 네덜란드에서 자신의 뜻을 펼치고 싶었지만 네덜란드를 포함한 여러 국가에서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런데 그를 받아들인 국가가 있었으니 바로 프랑스였다. 당시 프랑스는 루이 14세가 전쟁을 치르며 과도한 공공부채를 짊어지게 되었는데, 파산을 눈앞에 둔 프랑스로써는 당시 통화로 사용되던 금과 은의 순도를 낮추면서까지 이를 해결하고자 했으나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하필 이때 존 로가 이를 해결할 수 있다며 프랑스에 등장했던 것이다.


로는 프랑스에 네덜란드식 공공은행을 세워 경제를 되살리고자 했다. 그런데 네덜란드와 한 가지 차이점은 프랑스에서는 종이 화폐를 사용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프랑스는 로의 지시에 따라 1716년 방크 제너랄(일반은행)을 세웠다. 그리고 그의 뜻에 따라 이 은행으로부터 금, 은으로 태환이 가능한 은행권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지폐의 시초 격 되겠다. 처음 이를 프랑스에 도입할 때는 일부 지역에서 반발이 있었는데, 강력한 권력을 갖고 있던 군주의 도움으로 성공리에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나중에는 모든 세금을 은행권으로 처리하기까지 했다. 강력한 절대 권력을 통해 신뢰와 신용이 발생한다고 굳게 믿었던 존 로와 프랑스는 궁합이 꽤 좋은 편이었다. 자신감을 얻은 로는 프랑스에 또 한 가지 아이디어를 준다. 그것은 바로 신대륙의 미개발 지역 중 하나인 루이지애나 지역을 개발하여 경제를 부흥시키겠다는 것이었다. 실제 당시만 하더라도 프랑스는 이렇다 할 식민지나 해외에 개발 중인 지역이 없었는데, 로의 계획을 들은 프랑스에게는 거부하기 힘든 제안이기도 했다.


통찰력 있는 여러 공작들이 존 로의 계획에 반발했지만 강력한 권력의 소유자 오를레앙 공에 의해 존 로의 계획은 끝내 성공적으로 추진되었다. 이에 더해 그가 루이지애나 개발을 위해 설립한 웨스트 컴퍼니는 담배 전매권을 비롯한 여러 특권들을 부여받게 되는데, 로의 입지를 더욱 탄탄하게 만들어 준 사건이 발생했다. 그가 세운 방크 제너랄이 방크 로열로 승격된 것이었다. 이에 존 로는 순풍에 돛 단 듯 자신이 원하던 일을 마구 펼치기 시작했다. 오늘로 치차면 로가 시도한 정책은 통화 재팽창 정책이었다. 1716년 불경기였던 프랑스 경제는 로가 은행권으로 통화 공급을 늘리면서 경기 부흥이 가능해졌다. 간접세 징수 대행권과 조폐 주조권 또한 독점하던 존 로는 공공부채마저 자신의 기업인 웨스트 컴퍼니의 주식으로 전환하는 등 프랑스 재정에 기여하는 듯했다. 한 나라의 국정 운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정도로 성장한 그는 계속해서 통화를 팽창시켰고 조금씩 자산 가격에는 거품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는 오늘로 치면 미국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와 미국의 거대 기업을 동시에 운영하는 그야말로 미친 운전수였다.




그런데 그의 운전에 제동이 걸리고 말았다. 루이지애나 개발 때문이었다. 욕심과 야심 가득한 계획으로 루이지애나 개척을 위해 모집했던 투자자들은 루이지애나를 마주하고 할 말을 잃었다. 루이지애나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고, 벌레가 들끓는 늪지대가 끝없이 펼쳐져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고온다습한 기후에서 유행하던 유행병으로 인해 루이지애나에 방문했던 사람들의 80%가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입발린 그의 말과 달리 인간이 살 수 없는 환경임을 눈치챈 투자자들은 투자 가치를 되돌려 받기를 원했다. 당시 그들은 웨스트 컴퍼니가 루이지애나 개발을 위해 세운 미시시피사에 투자를 했었다. 기업과 은행을 동시에 운영하던 존 로는 순순히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었고, 약속했던 수익금까지도 전액 돌려주었다. 지폐를 찍어내면서 말이다. 이에 미시시피사의 투자자들은 깨달았다.

어? 투자금을 돌려달라고 하면 다 돌려주네? 생각보다 안전하네?


좋은 수익률에 안전함까지 더해지자 투자자들은 투자금이 회수될수록 더욱 투자에 매진했다. 그러면 계속해서 주가가 치솟았다. 이에 자극받은 로는 시장에 추가 주식을 발행함과 동시에 지폐 또한 발행했다. 매일매일이 신고가의 경신이었다. 의심스러웠던 분위기는 어느새 열광적으로 돌변했다. 부유한 파리시민들 상당수는 로에 홀려있었다. 어느 영국 대사관은 당시를 이렇게 묘사했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대공과 공작과 귀족 등, 한마디로 프랑스에서 위대하신 분들 모두가 출두했다. 다들 재산을 팔고 보석을 저당 잡혀 가며 미시시피 주식을 샀다. 백만장자(millionaire)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건 바로 이 시기였다.


그러나 로가 보여준 신용사기는 영원할 수 없었다. 그가 재무장관으로 임명되기 전부터 불안의 조짐이 일기 시작했다. 주식시장 밖에서는 인플레이션이 놀라운 속도로 치솟고 있었다. 그가 엄청나게 많은 지폐를 유통시킨 탓이었다. 이에 은행권의 가치 하락을 예상한 사람들이 금과 은으로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주식이 떨어지면서 존 로는 여러 조치를 취하지만 이제는 그의 모순적인 행동을 이해한 많은 시민들은 그가 만들어낸 금융체제가 자기 편한 대로 규칙을 바꿀 수 있다는 인상만 더욱 강렬하게 남게 되었다. 시스템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성난 군중들이 은행 주변에 운집했고, 은행은 마비가 되었다. 주변에서는 돌멩이가 날아다녔고 가치를 잃은 은행권이 나부꼈다. 결국 로는 1720년 5월 29일 공직에서 완전히 쫓겨나고 가택연금에 처해졌다. 본격적인 패닉은 막을 방법이 없었다. 프랑스에서 터진 거품 붕괴는 유럽 전역을 강타했다. 프랑스가 입은 손해는 경제, 금융뿐이 아니었다. 존 로의 거대한 사기극은 프랑스의 금융발전에 매우 큰 치명타를 입혔고, 프랑스는 여러 해가 지날 때까지 이 문제를 수습하지 못했다. 그렇게 프랑스 군주 왕실은 끝내 파산을 면치 못했고 혁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존 로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강력한 권력과 결합한 개인회사의 가치를 중앙은행을 동원해 마구 조작하던 그의 행태를 보고 있노라면 오늘날 미국의 모습이 떠오른다. 금리를 조절하고 여러 통화정책을 펼치는 연방준비제도, 자국의 발전과 이익을 위해 대의적으로는 경제 성장을 위해 채권을 발행하고 이를 연준이 구입하는 형태로 시장에 마구 자금을 풀어놓는 재무부, 그리고 그 수혜를 받는 미국의 거대 기업들. 어떤가. 단순히 기능만 놓고 그들이 하는 일을 나열했지만 어째서인가 비슷한 점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은가? 또 한 가지는 주식에 거품이 끼기 시작하는 것 역시 닮아있는 존 로와 미국이다. 물론 한 개인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했던 프랑스와 달리 미국의 경우에는 수많은 전문가를 통해 마련되는 정책들이지만, 그것이야 어쨌든 명분 쌓기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았던 주식시장의 과열을 느낀 사람들이 시장에서 이탈하면서 주식시장의 가치는 일시적으로 떨어졌다. 이 과정에 연준도 참여자들의 이탈을 유도했다고는 하나 그 영향력은 미미한 수준인 것 같다. 그런데 초기 의심자들에게 카드깡을 시전한 존 로 처럼 미국의 연준 역시 오늘날 투자자들에게 금리 인하라는 당근을 내보이고 있다. 하여, 당분간 미국 주식시장은 도무지 떨어질 일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그 과정의 끝이다. 어떠한 계기로 인해 가치가 거품인 것이 들통나는 시점에는 전 세계의 어느 누구도 주식의 폭락을 막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미 충분히 세계화가 진행된 세계 각국이 경제적으로 동조된 탓에, 미국 주식의 폭락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존 로의 이야기에서 생각해 볼 만한 것은 바로 비트코인이다. 만약 경기 순환의 이유에서건 연준이 의도해서건 다시 한번 금융위기가 발생하게 된다면 이미 옳지 않음이 증명된 존 로의 시스템 즉, 강력한 권력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금융 체제는 탈중앙화라는 모호하면서도 매우 위험한 이념과 함께 탄생한 비트코인의 제도화와 더불어 소멸하게 될 위험이 크다. 다른 금융체제로의 변화가 어렵던 1700년대와 달리 오늘날은 디지털 화폐라 불리는 블록체인 기술에 근간한 매우 강력한 대안책이 존재한다. 이것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시스템에 위협적인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와 비슷하다. 나는 비트코인을 신봉하지도, 블록체인 기술의 완전무결함을 믿지 않지만 디지털 화폐가 현 체제의 대안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는 이유는 순전히 그 기능 때문이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모여 집단지성을 이뤄낸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완벽한 대안이나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지만, 비록 그것이 소수일지라도 금융 시스템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존중할 수 있다면 그러한 행위로부터 우리는 최소한 존 로 같은 사기꾼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이 디지털 화폐가 몰고 온 첫 번째 혁신이다.


두 번째 혁신은 신뢰 그 자체로서의 화폐다. 이 책의 '제1장 탐욕의 꿈'에서 나오듯 화폐란 그것을 사용하는 사용자 사이의 믿음에 근간한다. 그것이 교환가치물로서 기능한다는 믿음 말이다. 그러므로 공정한 거래를 위해서는 양쪽 모두에게 가치 있는 물건을 사용해야 하고 그것은 현재 쉽게 말해 달러다. 기축통화니 뭐니 하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만약 이러한 메커니즘에 의해 화폐가 만들어진다고 한다면 그것이 비트코인이 되지 말라는 법은 더더욱 없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비트코인을 가치저장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에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미국의 달러다. 오늘날 미국은 역대 최고치를 매해 경신할 수준으로 달러를 찍어내고 있다. 이는 재무부의 부채 현황만 보더라도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왜곡된 불공정한 게임이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달러를 찍어낼 수 있는 국가다. 독점 규제를 외치면서도 사실 지구상 최대의 게임을 독점하고 있는 것은 미국이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다르다. 누구나 채굴에 기여를 한다면 보상으로 비트코인을 받을 수 있고, 그것을 통제하는 거대한 독점적 기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처음부터 비트코인 채굴에 참여한 사람에 비해 비교적 나중에 참여한 사람이 불리한 게임이 아니냐'라고 폄하하기도 하는데, 만약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분배의 문제를 해결하기 이전에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오징어게임을 구상하는 편이 더 빠를 것이다.


세 번째 혁신은 기능적 우월함이다. 오프라인 세계에서 금, 은 등의 현물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금융 시스템과 달리 디지털 화폐는 탄생 자체가 온라인 세계이며 블록체인 기술과 결합된 기능은 매우 혁신적이다. 물론 여전히 부족한 면이 있지만 지금의 금융시스템은 충분히 온라인화 되어있어서 사용에 큰 불편함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내가 당장 오늘 미국에 가더라도 내 스마트폰에 저장된 애플페이를 통해 나는 미국에서도 손쉽게 물건을 구매할 수 있다. 이것은 모두 기술이 진보된 탓이다. 그런데 디지털 화폐는 현 시스템을 뛰어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가장 압도적인 것은 거래 속도다. 현재 사용 중인 금융 시스템이 비록 불편하더라도 우리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긴 하지만, 어쨌거나 상황에 따라 여러 중개인을 거쳐야 하는 현 시스템은 중개인 없이 즉시 상호 간 거래가 가능한 디지털 화폐보다 기능적으로 복잡하고 그만큼 허점이 발생할 확률이 높다. 뭐 이렇게 시시한 이야기를 하느냐고? 그렇다. 소액 거래의 경우에는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대규모 송금의 경우 문제가 달라진다. 일례를 들면, 대규모 금액을 타국으로 송금한다고 가정했을 때 현 시스템의 경우에는 외환은행을 통해 거래를 해야 하고, 이동시간, 결제시간, 송금시간, 절차시간, 비용 등 생각보다 많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디지털 화폐에서는 이 모든 절차가 수반되지 않는다. 거래하고자 하는 상대방의 지갑 주소만 알고 있다면 언제든, 어디에서든 즉시 거래가 가능하다. 이것을 가장 대표적으로 잘 보여준 사례는 최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우크라이나 정부가 자신들의 지갑 주소를 트위터에 올려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암호화폐를 통한 자금지원을 받았던 것이다. 어떤가? 아직도 디지털 화폐가 가지고 올 혁신이 의심되는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여기서 디지털화폐를 믿으라는 종교적 발언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이 가지고 올 거대한 흐름을 파악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과거 금융역사와 미래 금융역사를 가르는 거대한 혁명이자 혁신이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는 결국 한 가지다. 과거에 발생했던 일들로 미루어 말미암아 미래에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 비정한 현실은 여전히 우리를 과거에 수십 차례나 있었던 금융위기로 내몰고 있다. 오늘자 뉴스에 따르면 우리나라 부동산 업체 700곳 이상이 파산을 했고, 전세 대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들이 전국에서 속출하고 있으며, 물가는 연일 고공행진하여 대통령까지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 미국은 여전히 금리를 동결하고, 자국과 자국 기업에게 보조금을 지원하고, 부채만기 협상은 언제나 그렇듯 이번에도 타결이 될 전망이다. 역사적 사이클이 흘러 다시 한번 금융위기를 앞에 둔 모순적인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비록 미래를 예지 하는 능력은 없지만 현재 상황이 무언가 비틀어져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은 있다. 물론 상황이 그렇게 흘러갈 것이라고 나의 금융생활이 멈출리는 없을 것이고, 또한 미국의 양가적 태도에 휩쓸릴 운명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


미국의 대선과 우리나라의 총선.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미중갈등 등 세계는 여러 가지 정치적인 얽힘으로 인해 더욱 불확실성이 증가했고, 이에 따라 더욱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올 한 해가 될 것이다. 이럴 때 가장 피해를 많이 보는 것은 결국 개인이다. 고래싸움에 괜히 새우등 터지지 않게 정신 바짝 차리고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이, 그리고 세계적인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 더 나아가 그것에 대응하기 위해서 역사를 배우고 또 배워야 한다. 금융시장에 발을 담그고 있는 인구가 역대급으로 많은 오늘날 시장 참여자들이 한 번쯤 읽어봤으면 하는 책이다. 정말이지 이 책은 레이달리오의 <변화하는 세계질서>처럼 두고두고 읽을만한 책이라는 생각이다. 리뷰가 길었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한 가지다. 니얼퍼거슨의 책 <금융의 지배>를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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