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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켓 팝송 Aug 17. 2019

귓것

 귀신.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을 얕잡아 부르는 말.      

    

 늦깎이로 대전에서 문학 공부를 할 때의 일이다. 옥탑방에서 자취를 한 적이 있다. 옥탑방에 대한 로망도 있었고, 월세가 비교적 저렴한 편이라서 옥탑방으로 구했다. 용운동. 근처에 용운도서관이 있고, 주공 아파트 버스 정류장이 보이는 옥탑방이었다. 홍상수의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처럼 옥상에 낑깡나무 화분이 있지는 않았지만, 옥상을 마당처럼 독립적으로 쓴다고 착각할 수 있어서 좋았다.

 문제는 그 옥탑방에 이사 간 후부터 그 방에서 잠을 자면 악몽을 꾸는 경우가 많았다. 여름밤이었다. 가뜩이나 열대야 때문에 잠이 오지 않는데 겨우 잠이 들면 꼭 악몽을 꿨다. 수맥이 흐르면 악몽을 꾸게 된다고 들은 것 같은데, 눕는 방향을 동서남북 바꿔 봐도 소용이 없었다.

 같은 학과 K에게 고충을 말하니 K가 안경을 벗고 이마에 맺힌 땀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말했다. 

 “이 집에 전에 살던 사람한테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게 아닐까.”

 K는 UFO 탐사 동아리를 만들기 위해 대학 행정실에 가서 동아리 등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무슨 안 좋은 일?”

 내가 마시던 커피를 벤치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를테면 살인이나 자살 같은.”

 “뭐?”

 “그때 죽은 원혼이 그 방에 아직도 남아있는 모양이지.”

 “에이, 설마.”

 K는 땀을 많이 흘린다. 다한증이라서 늘 손바닥이 흥건하다. 귀신이 있는 곳에 가면 땀이 더 많이 난다고 K가 말했다.

 옥탑방에 돌아와 누웠는데 K의 말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때 죽은 원혼이 그 방에 아직도 남아있는 모양이지.’

 창문을 열면 뜨끈한 바람이 불어오는 열대야였다.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귀신의 신음처럼 들리기도 했다.

 이대로 잠이 들면 또 가위에 눌릴 게 뻔했다. 그래서 나는 전전반측 잠을 못 이루다 주인에게 가서 이 옥탑방에 사연이 있는지 물어볼 생각으로 일어났다. 그때였다.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누구지?’

 현관문을 열어보니 집주인이었다. 주인아저씨는 런닝을 입은 채 부채질을 하며 문 앞에 서 있었다. 

 “학생. 집에 있었네.”

 “아, 안녕하세요.”

 “지난 달 전기세가 갑자기 많이 나왔네.”

 “지난 달 전기세가요? 전기가 갑자기 늘 일이 없었는데요.”

 주인아저씨는 전기요금 고지서를 내게 들이밀었다. 정해진 전기요금을 매달 내고 있었는데, 이번 달은 특별한 경우라서 금액을 더 내라는 것. 나는 날도 더운데 계속 실랑이를 벌일 기분이 아니었다.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서 가려던 주인아저씨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고개를 돌려 내게 말했다.

 “근데, 잠은 잘 와?”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 이 옥탑방에서 혹시 사람이 죽거나 뭐 그런 일이 있었나요?”

 “아니, 뭐, 누가 그런 소릴 해? 그런 일 없어.”

 “근데, 아까는 잠이 잘 오는지 왜 제게 물으신 거죠?”

 “잠이 잘 오는지 궁금해서. 날이 더워서 잠이 와야 말이지.”

 주인아저씨는 연신 부채질을 하며 말했다. 손바닥에서 땀이 많이 났다.

 그 뒤로도 악몽의 나날이 계속 이어져 결국 나는 겨울에 고시원으로 이사를 했다. 겨울방학이 되어 고향 제주에 가보니 집이 이사를 했다. 아버지가 고향집을 팔고 낡고 허름한 여인숙을 구입했다. 이름이 ‘들꽃 여인숙’.

 아버지는 301호, 형은 302호, 나는 303호에 머물렀다. 303호에 누워 있으면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그 방을 거쳐간 수많은 사람들의 숨소리가 다 들리는 것 같았다. 

 그래도 용운동 옥탑방과 들꽃 여인숙에서 시 여러 편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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