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즐겨 보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하트 시그널 3다. 친한 친구들이 하도 재밌다고 해서 시작했는데, 어느새 진도를 쫓아가 친구들과 함께 본방을 사수하고 있다. 나는 이 프로그램의 시즌 초반에 박지현 - 정의동 두 사람의 취향이 이상하리만치 잘 맞는 걸 보며 설렜던 적이 있었다. 여러 주제로 대화가 잘 통하는 두 사람을 보며, 등장인물 8명 중 취향이 잘 맞는 조합으로는 최고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박지현의 하트 시그널이 취향과는 무관한 사람에게 닿는 걸 보며, ‘취향이 남녀 사이에 도움을 줄 순 있어도 전부가 될 수는 없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H와 처음 만났던 때를 떠올려 보면, 우리는 서로 다른 것 투성이었다. H는 새로운 세계를 간접 경험할 수 있는 미드를 좋아했고, 나는 주변에서 일어날 법해서 더 생생하게 느껴지는 한국 드라마를 좋아했다. 당시 H가 가장 마지막으로 본 한국 드라마는 무려 2004년작인 ‘파리의 연인’이었고, 내가 유일하게 본 미드는 거의 미드계의 조상님 격인 ‘프리즌 브레이크’였다. 우리는 서로의 관심사와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선호하는 노래 스타일도 정반대였다. 예를 들면, H는 비욘세처럼 힘이 있고 파워풀한 보컬을 선호했고, 나는 제이레빗처럼 말랑말랑한 보컬을 좋아했다.
우리의 어긋난 취향은 서로의 생일이 되면 더욱 명확해졌다. 연애 초반, 나는 H의 생일에 부드러운 소재에 픽사 스튜디오 캐릭터가 프린트된 티셔츠를 선물했다. H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그 티셔츠를 입지 않았다. 내가 선물한 티셔츠는 왜 안 입냐고 묻자, H는 대답을 얼버무렸다. 그리고 먼 훗날, 나는 어머니께 ‘우리 아들은 어릴 때부터 가슴이 커서 라인이 안 드러나는 빳빳한 티셔츠만 입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유를 듣고 나니 연애 초반에 대답을 얼버무렸던 H가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한편, H가 고른 선물도 만만치 않았다. H는 후드티와 맨투맨을 즐겨 입는 내게 강렬한 플로랄 패턴의 10cm 굽의 하이힐이나, 스트랩이 체인으로 된 연핑크 컬러의 미니 백을 선물했다. 거울 앞에 서서 이리저리 옷을 갖다 대봤지만, 후드티나 체크 패턴 셔츠에 꽃무늬 하이힐과 체인 백이 어울릴 리가 있나. 결국 우리의 선물은 각자의 옷장에 고이 모셔졌다.
그래도 그중 다행인 건 시간이 흐르고, 각자가 가진 취향의 파이가 확장되거나 바뀌면서 그 가운데 교집합의 영역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 첫 번째는 달리기다. H를 만나는 내내 뛰는 건 죽어도 싫었던 내가, 어느 날 숨이 차오를 때까지 뛰는 그 느낌을 좋아하게 된 것이다. 늘 혼자 나가서 달리곤 했던 H는 나의 이런 변화를 매우 반가워했다. 우리는 함께 달리기로 즐거워할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는 드라마. 내 인생 드라마 중 하나는 ‘나의 아저씨’다. 2년 전만 해도 H는 한국 드라마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 ‘나의 아저씨’가 넷플릭스 메인 페이지에 소개되었고, 넷플릭스를 굳게 신뢰하는 H가 이에 관심을 보이는 거다. 나는 그 관심을 덥석 물었다. “나도 오랜만에 다시 보고 싶다. 진짜 좋았는데…. 우리 같이 볼까?”
그날부터 우리는 정주행을 시작했고, 매회 울다 웃다를 반복했다. 급기야 H는 ‘이 좋은 드라마를 왜 2년 전에 너 혼자 봤냐’고 말할 정도로 흠뻑 빠져버렸다. (내가 같이 보자고 그렇게 말할 땐 안 들리더냐!)
요즘 우리는 ‘나의 아저씨’를 주제로 한참을 떠들다 잠이 들곤 한다.
“박동훈은 왜 저렇게 지안이를 잘 챙겨준 거지? 저건 무슨 감정일까?”
“인생이 너무 고달프니까. 오히려 지안이로 인해서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렇게 우리에게도 공통된 취향이라는 게 점점 생겨나는 중이다. 취향을 공유하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한 우리는 서로가 어떤 것을 왜 좋아하고, 왜 싫어하는지에 대해 많이 대화해 보기로 했다.
비록 취향이 너무 달라 결혼반지조차 다른 디자인을 선택했고, 아직도 상대방이 좋아할 만한 선물을 고르기 힘들어하는 우리지만,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내일은 우리의 교집합이 조금 더 커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