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 La Tengo < This Stupid World > (2023)
척박한 노이즈의 토지 위로 나지막이 드리운 서정의 꽃밭. 아이라 카플라와 조지아 허블리 부부를 주축으로 1984년 결성한 요 라 텡고(Yo La Tengo)의 음악은, 늘 이 모순되고 비현실적인 상상이 빚어내는 카타르시스를 자극하곤 했다. 예를 들어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의 반항스런 슈게이즈에 콕트 트윈스의 아스라한 드림 팝을 섞어내는 식이다. 이들은 열여섯 장의 정규작 가운데 여러 장르의 정수를 배합하며 매번 새로운 논리 구조를 가져왔고, 어느덧 인디 록의 '절충주의'라는 독특한 수식마저 얻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밴드의 인기 요인은 불변함에 있었다. 낙관적 따스함이 웃돌던 < I Can Hear the Heart Beating as One >(1997)과 슬로코어의 자줏빛 밤 산책을 품은 < And Then Nothing Turned Itself Inside-Out >(2000), 두 작품이 명반으로 평가받는 이유 역시 러닝타임 내내 일관된 아늑함을 조성한 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19 속 혼란과 우울을 요동치는 드론(Drone) 사운드로 표현한 직전 실험작 < We Have Amnesia Sometimes >를 제외하면 이들의 음악은 항상 변화 속에서도 부담스럽지 않은 적정선에 위치했다. 득을 취하면서도 능숙하게 중용의 자세를 고수해온 안정적인 작업 방식이 곧 특색을 결정한 비결이 된 것이다.
그런 < This Stupid World >는 디스코그래피에서 아홉 개의 표본을 선별한 모종의 아카이브 앨범과도 같다. 때론 신경질적으로 일그러지고, 때론 온화하게 어루만지던 나날의 기록을 차곡차곡 찍어 발행한 사진첩인 셈이다. 걸걸한 잔향과 반복적인 구성을 내세우며 일말의 타협 없이 내달리는 드라이브 대곡 'Sinatra Drive Breakdown'과 슈게이즈 작법에 안온한 보컬을 입혀 중화 작용을 펼친 'Fallout', 크라우트록을 위시한 모토릭 리듬에 간결한 어쿠스틱을 수놓은 'Tonight's Episode'가 차례로 등장한다.
눈여겨볼 지점은 분위기를 반전하고 준비한 온기를 공유하는 포크 록 'Aselestine'과 지난날을 회상하듯 장대한 몽환경을 설치하며 마지막을 능숙하게 장식하는 'Miles away'다. 각각의 곡에서 코트니 바넷의 'Depreston'에 담긴 기분 좋은 무료함과 뷰욕의 'Hyper-ballad' 같은 점멸하는 주마등이 스치듯 떠오른다. 즉흥 잼과 변칙적 박자 가운데 적적하게 죽음을 읊조리는 'Until it happens' 역시 독특한 존재감을 남긴다. 40년 경력에 달하는 베테랑의 가지각색 노하우가 발현하는 순간이다.
다양한 장르 운용 기법을 가져온 비슷한 계열의 정산 작품 < I Am Not Afraid of You and I Will Beat Your Ass >(2006)에 비하면 소모성이 조금 짙기도 하다. 개별 트랙의 소구력보다 작법 구현에 집중하며 활동의 당위성을 부여하려 하자 특유의 담백함만큼이나 밋밋함이 동반하는 구간이 생긴다. 그럼에도 여타 협업의 편법 없이 오래도록 색감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범접하기 힘든 감탄이 몰려온다. 위태로이 흔들리지만 절대 꺼지지 않는 촛불, 현재와 저편 사이의 공백을 계속 상상하게 만드는 얇은 장막. 요 라 텡고의 영역은 건재하다.
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