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을 만난 남자친구와 어김없이 그저 그런 데이트를 끝낸 밤,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서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데 그에게 전화가 왔다.
"………선주야"
"응? 왜?"
"…우리 헤어지자"
"……응?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
"응? 오빠, 그게 갑자기 무슨 말이냐고"
"………"
늘 말이 많던 그의 침묵이 낯설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건 아니잖아. 그것도 전화로. 우리 7년 만났어. 헤어지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많이 생각해보고 내린 결론이야. 우린 아닌 것 같애. 헤어지자"
나의 첫 직장에서의 수습기간이 끝날 때쯤 스멀스멀 결혼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나보다 6살이 많던 그는 집에서 결혼을 재촉한다며 결혼 이야기의 운을 띄웠다. 결혼하기엔 어린 나이라 생각했을 뿐더러 '너무 사랑해서 결혼하고 싶어'도 아니고 집에서 결혼을 재촉하니 등떠밀려서 결혼하자고? 가정을 이룰 생각이 없던 나는 그와 몇 번의 다툼을 했고 "이제 진짜 결혼얘기 한 번만 더 하면 오빠 안 만날거야"는 나의 망언에 더 이상 결혼얘기는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서로의 진심을 모른 척하고 지내길 몇 달, 나는 그의 이별 선언에 진작 끝냈어야 할 관계를 방임한 벌을 한 방에 몰아서 받는 기분이었다.
기울어진 시소에서 항상 우위를 점했던 내가 그에게 냅다 역전을 당했고 준비 없는 낙하에 온 몸이 물리적으로 쿵-쿵- 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오빠, 진짜 나 오빠 없으면 어떻게 살라고. 7년을 이렇게 전화 한 통으로 끝내는 게 맞아?"
"……더 할 말 없어. 헤어져."
7년간 상냥하고 순해서 말랑거리는 두부같았던 그의 처음 보는 단호함에 나는 더 이상 매달릴 수 없었다. 그의 모닝콜과 함께 눈뜨는 순간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모든 걸 의지했던 나는 그가 사라지자마자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말그대로 와르르르르르-.
자상하고 나한테 참 잘했던 그였기에 주위에서도 나의 이별에 적잖이 충격을 표했다. 이별의 슬픔은 크고 오래갔다. 그가 떠난 후, 평일에는 수시로 눈물이 흘러 퉁퉁 부은 눈으로 일했고 주말 낮에는 하루종일 자고 밤에는 클럽에서 동틀 때까지 놀아제꼈다. 어느 일요일에는 웬일로 집에서 늘어지게 자고 있었는데 친구들로부터 부재중 전화가 여러통 찍혀있었다. 내가 자주 가던 클럽에서 칼부림 사고가 나서 걱정이 돼 안부연락을 한 것이다. 클럽에 주말마다 출근 도장을 찍으니 그럴만도 했다.
친구들은 물론, 학창시절 내내 모범상을 놓치지 않던 딸이 정신이 반쯤 나가서 다니니 부모 입장에서는 더 미칠 노릇. 12시 통금미션의 연이은 실패로 부모님과의 마찰이 심해졌고 안팎으로 의지할 곳이 없어 정신적 한계를 느꼈다. 부모님의 걱정스러운 말들은 오히려 더 큰 반감을 일으켰고 28년간 안했던 일탈을 3달간 몰아서 해버린 끝에 독립을 선언했다.
28년 인생 처음으로, 그것도 내 힘으로 부모님의 그늘을 벗어난다는 사실은 꽤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했다.
뭉치고 뭉쳐져 단단한 돌덩이가 되었던 나의 슬픔은 부모님에게로 던져졌고 부모님은 더 이상 안되겠는지 독립을 허락하셨다. 그렇게 보증금 500, 월세 50만원,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의 오피스텔을 계약했다.
7년 연애 끝, 독립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