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다 쓰러진 직원이 처음이었나보다. 이렇게나 회사에서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다니!
쏟아지는 업무량에도, 매일 같은 야근에도 ‘회사생활이 다 그렇지 뭐’라고 자위하며 다녔다.
다 이렇게 사는 줄 알았지 난. 왜 유튜브보면 새벽에 일어나서 야근에 운동까지 하는 대단한 사람들도 있으니까.
아파보니 알겠다. 다들 이렇게 살지는 않는다라는 걸.
병원에 누워있으니 현타가 왔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일을 했는가 묻는다면
‘인정받기 위해서’, ‘내 실력을 보여주고싶어서’랄까.
그럼 누구한테?라고 묻는다면 ‘글쎄’.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 거였는데, 건강보다 중요한 건 없는 거였는데.
클럽에서 놀다가도 아니고, 여행가서 거나하게 취해서도 아니고 정말 미련하게도 일을 하다가 쓰러졌다.
26살, 지금 생각하면 더 놀아도 됐을 나이에 공공기관에 취업을 했다.
그 어렵다는 취업문을 뚫고 그것도 공공기관 정규직으로 취업을 했다는, 지금보면 정말 평범하기 그지없는 그 사실이 26살의 마음에는 크나큰 자부심으로 남았다.
그 26살은 10년째 대리다.
기형적으로 승진적체가 심한 구조에 하급직원의 승진에 관심이 없는 간부들의 콜라보가 더해져 나같은 10대리들이 무수하다.
탈출은 지능순이라 했던가. 이직 시도를 안해본 건 아니다.
하지만 핑계를 댈 수 없을만큼 많은 업무량에 치여 제대로 된 공부를 해보지도 못하고 이직 시도는 그렇게 유야무야 뭉개져버렸다.
그렇게 서른, 서른하나, 어느새 서른여섯. 나이를 먹고나니 ’이 나이로 어디 신입으로 가긴 좀 그렇지‘ 싶어서 전문직 시험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마저도 회사일이 너무 많아서 인터넷 강의를 끊어놓고 정지 최대횟수를 채우고 결국엔 환불받기를 몇 번.
‘..일도 존나 많이 시키면서 탈출도 못하게 하네’
그렇게 퇴사를 입에 달고 살지만 결국은 탈출하지 못한 채 10년을 대리로 살고 있다.
꿈이 원대했던 20대였다. 동남아시아 인턴 6개월, 미국 근무 3개월, 토익 950점, 한국사1급, 컴활1급. 나의 취준생 시절 스펙.
세계를 무대로 일하는 커리어 우먼을 꿈꿨다. 이렇게 재미없는 공공기관에 처박힐 운명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았거든. 정말로.
잠깐 미국에서 지내는동안 나이에 상관없이 꿈을 이룬 사람들을 만나서 그런지 더욱더 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도저히 미래가 보이지 않는 이 곳을 떠날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으니 비참했다.
월급은 소중하나, 월급만 소중하다.
함께 일하는 동료, 회사 문화, 동기부여요소 뭐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는 이 곳에서 평생을 일한다는 무서운 생각이 문득 떠오르면 고개를 세차게 저어버린다.
오늘도 야근이고, 내일도 야근이다.
내가 5년 전에 썼던 보고서를 자기 것인양 그대로 복붙해서 쓰는 저 부장도
점심메뉴를 아침부터 닦달하는 저 과장도
하라는 일은 안하고 쫑알쫑알 뒷담화하는 저 대리도 안짤린다.
평생직장이 평생감옥이 아닌가 싶다.
어서빨리 이 곳에서 탈출해야 내가 살아.
‘내 꿈은 10년 대리가 아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