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은 아직 다 밝지 않았다.
밤이 물러났다고 하기에는 이르고, 그렇다고 남아 있다고 하기에도 옅은 시간. 그 잠시 겹쳐진 틈에서 한 남자의 척추를 따라 느껴지는 배낭의 무게가 아래로 내려앉았다. 그 남자는 가방을 다시 들쳐 업으며 골목길로 들어선다. 공기는 차가웠고, 골목은 조용했다.
간판은 작았다. 시선을 붙잡지도 않았다. 문도 낮고 좁았다. 굳이 들어오지 말고 가시던 길 그대로 가셔도 괜찮다는 듯. 남자는 그 앞에 서서 숨을 잠시 고르고 문 손잡이를 밀었다. 삐걱대며 나무 문이 서로 스치는 소리와 남자의 마른 숨소리가 동시에 안으로 들어온다.
안은 생각보다 더 단정했다. 금은방이라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공간. 벽을 가득 채운 진열장도, 쇼케이스도 없다. ㄷ자 모양의 나무 탁자가 공간을 감싸고 있고, 그 끝에 있는 작업대에 앉아있는 한 사람이 등지고 구부정하게 앉아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다. 반들한 윤이 나는 짙은 마호가니 색의 탁자에는 서너개의 쥬얼리 피스가 띄엄띄엄 놓여있었다. 팔고 있는 건지 그냥 거기에 있는건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남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는 금은방이라는 건가' 하고 생각하며 몇 개 안되는 피스를 바라본다. 인기척이 느껴지자 앉아있던 사람이 등을 돌려 바라본다. Trail 이다. 그는 빨간 원석 조각을 손 끝으로 굴리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엔 남자의 꺼칠한 얼굴과 그 위로 솟아오른 옅은 카키색의 배낭이 보인다. 손에 쥐고 있는 것을 잠시 내려다 보다 그 남자의 얼굴로 다시 눈을 돌린다. 이 둘은 아직까지 서로를 가만히 보고 있을 뿐, 아무말도 없다. 남자는 자신을 바라보는 트레일의 눈을 계산하는 눈이 아니라, 시간을 가늠하는 눈 같다고 생각했다. 오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
남자는 스툴에 걸터 앉았다. 배낭은 내리지 않았다.
Trail은 빨간 돌조각을 내려놓았다.
“새벽에 오는 분은 드뭅니다.”
낮고 담백한 목소리였다.
“길이 끝나서요.”
그 남자가 말했다.
Trail은 고개를 아주 조금 끄덕였다. 끝났다는 말과 끝나지 않았다는 표정이 동시에 있다는 것을 안다는 듯이.
그 남자는 가방 어깨 춤에 달려있던 가리비 껍질의 끈을 풀어 탁자위에 올려놓았다. 끈은 닿아 있었고, 가리비 껍데기의 끝이 조금 깨져있었다.
Trail의 손이 천천히 움직여 깨진 조개 껍데기의 모서리를 엄지로 문질렀다.
"끝까지 가보겠다고 달았던 것입니다.”
그 남자가 말했다.
“끝까지 가셨습니까.”
Trail은 잠시 껍질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네. 갔습니다.”
그 남자는 숨을 고르고 덧붙였다.
“그런데 도착하니, 끝이 아니었습니다.”
Trail은 고개를 아주 미세하게 끄덕였다.
그 남자는 길을 이야기했다. 새벽이면 땅이 차가웠고, 해가 뜨면 갑자기 눈이 시릴 만큼 밝아지는 길이었다. 발바닥이 돌의 결을 외우게 되는 길이었다. 같은 방향으로 걷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결국은 각자의 속도로 멀어지고 가까워졌다.
“몸이 타버릴 것 같았는데, 아무것도 붙지 않았습니다.”
Trail은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그래서 떠나셨습니까.”
“붙지 않는 것을 들여다보기 싫었어요."
말을 하면서도 그 남자는 조개 껍질의 깨진 자리를 보고 있다가 덧붙였다.
"도망친거죠."
가게 안이 조금 더 밝아져온다.
"필요한 것만 넣었다고 생각했는데, 배낭은 너무 무거웠어요. 숙소에 도착할 때 마다 덜어내고 또 덜어냈어요. 새벽에는 짊어질 만하다가 이내 곧 무거워졌어요."
Trail의 시선이 남자의 어깨에 머무른다. 그는 배낭을 내려보라고 말하는 대신 혼잣말 처럼 말했다.
“버리지 못한 것이 남아 있었나봐요."
다시 침묵이 내려앉는다. 그 남자는 자신이 짊어진 배낭안에서 무엇을 덜어내고 무엇을 남겨놓았는지 가늠해보다, 모르겠다는 듯 눈을 돌렸다.
"남겨둔 지도 몰랐을지도" 탁자 위로 그 남자의 목소리가 낮게 떨어졌다.
어느 날은 걸으면서 울었다고 했다. 이유를 찾지 않았다. 눈물이 흐르는 동안에도 발은 멈추지 않았다. 울음은 소리를 내지 않았다가도 어린 아이처럼 길바닥에 앉아 소리내며 울었다. 멈추려고 하지도 않고 닦지도 않았다고 했다. 혼자 걷는 길 위에서는 그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러다가 갑자기 웃음이 피식하고 나더라구요. 방금과 같은 길이었는데, 갑자기 선명해졌어요."
Trail은 고개를 들었다.
"무엇이요?"
"아무 것도 모자라지 않다는 거"
"배낭이 좀 가벼워지던가요?"
"아뇨, 똑같이 무거웠어요." 그는 웃음지었다.
"무게가 사라진다는 느낌이 아니라, 그냥 다 제자리에 놓인거 같았어요"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간 것 같은 그 길의 끝에 작은 바가 있었다고 했다. 낮은 천장, 오래된 나무 의자, 또르띠아가 몇개 쌓여있는 유리로된 찬장. 말이 많지 않은 사람들이 띄엄띄엄 앉아 있었다. 그는 레몬맥주를 주문했다.
잔 위에 고운 거품이 두껍게 올라와 있었고, 그 아래 금빛 액체 안에서 기포가 천천히 올라왔다. 레몬 껍질을 비튼 향이 코를 스쳤다. 마른 입으로 한 모금 삼켰을 때, 쌉쌀한 맥주의 맛 뒤로 레몬의 상큼한 산미가 따라온다. 숨이 가벼워졌다.
"더 버릴것은 없어보였어요"
“깨진 자리도 모양입니다.”
Trail이 가리비 껍질을 손에 올려 깨진 모서리를 천천히 쓰다듬는다. 그 손놀림에는 어떤 판단도 없었다. 그저, 눈앞에 있는 것을 만지는 사람일 뿐. 그의 모습에 남자는 안심이 된다.
새벽 빛이 탁자위로 스며들어 가게 안은 더 밝아져 있었다.
Trail은 탁자 안쪽에 손을 뻗어 서랍을 열었다. 그 안에서 금으로 만든 작은 조개 팬던트를 꺼냈다. 가장자리에 얇은 빛이 둘러져 있었다. 눈부시지 않게 소리를 내지 않는 빛이었다. 그는 그것을 가리비 옆에 놓았다.
배낭을 짊어진 남자는 두개의 가리비를 가만히 바라본다.
하나는 길 위에서 닳은 것이었고, 또 하나는 그 길이 남겨 둔 모양같았다.
어깨를 조금 펴며 그 남자가 말한다.
"이건 오늘의 것입니까?"
"네."
그 남자는 새 가리비를 들어 손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잠시 후, 닳은 조개 껍데기 안에 얹었다.
그가 문을 나섰을 때, 빛은 조금 더 짙어져 있었다.
배낭은 여전히 등을 눌렀고, 어깨에 파고드는 끈의 감각도 그대로였다.
그는 숨을 들이마셨다. 발이 앞으로 옮겨졌다.
그의 등이 사라진 골목 끝에서, 빛이 조금씩 더 앞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좌) 18k yellow gold, natural diamond
우) 18k yellow gold, turquoise, natural diamo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