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2 남산 소월길

by Trail

해는 진 지 오래이고, 도시는 아직 잠들지 않은 시간이다.

Trail은 작은 스탠드 하나가 켜져있는 작업대에 앉아 고운 줄로 금 조각을 다듬는 그의 손 위로 노란 빛이 얇게 내려앉는다. 밖에서는 바람이 한 번 문을 건드리고 지나간다.


코트에 밤 공기를 묻힌 채 한 남자가 들어와 나무 스툴 위에 조용히 앉는다. 그는 빈손이다. 탁자 위에 아무것도 올려놓지 않는다. 대신 손을 펼쳐 둔다. 손바닥을 한 번 쓸어내린다.



“길 위에 두고 왔어요.”


Trail은 고개를 끄덕인다.

없는 것도 가끔은 물건이 된다.


그는 남산의 길을 이야기한다.

도시가 아래로 가라앉고, 위로는 어둠이 천천히 내려앉는 시간. 도시는 발아래에 펼쳐져 있었고, 빛은 주단처럼 겹겹이 깔려 있었다. 빛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방이고, 식탁이고, 텔레비전의 화면일 것이다. 강을 건너는 다리는 가느다란 은실처럼 길게 뻗어 있었고, 차들은 그 위를 느리게 기어가며 붉은 실과 흰 실을 엮고 있었다. 고층 건물의 꼭대기에는 붉은 경고등은 주단 위에 박힌 매듭이 되어 깜빡거렸다.



“가까이 보면 제각각인데, 멀리서 보면 하나로 이어져 있더군요.”

그가 말한다.

“마치 누군가 밤마다 도시를 꿰매는 것처럼.”


Trail은 말없이 듣는다.


빛의 주단을 등지고 그들은 난간에 기대어 서 있었다. 그의 손이 차가운 금속이 손바닥에 닿고, 일정한 간격으로 박힌 볼트의 둥근 머리가 손금 사이에 박히듯 또렷히 느껴졌다.


그 위로 그녀의 손이 놓였다. 두 겹의 체온이 서로를 경계하듯 얇게 맞닿더니, 남자의 손 아래에서 올라오던 금속의 냉기가 느리게 달라졌다. 금속의 단단함은 여전했지만, 그 날카로운 또렷함은 부드럽게 번졌다. 두 사람의 손이 포개지면서, 난간 볼트의 작은 돌기는 안쪽으로 묻혔다. 체온과 체온 사이에서 낮고 둥글게 변해갔다.



"그때, 차갑다는 생각이 사라졌어요"

그날, 자신의 손 위에 얹혀졌던 그녀의 손은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완전히 물러서지도 않았다. 금속의 냉기를 함께 나누던 그 짧은 시간, 두 겹의 온기가 난간을 사이에 두고 이어져 있었다.


잠시 부드러운 침묵이 흐르고, 천정의 불빛이 나무 탁자위에서 조용히 떨린다.


Trail은 서랍을 연다. 작은 상자에서 귀걸이 한 쌍을 꺼낸다. 육각의 테두리 안에 투명한 스톤이 박혀 있다. 볼트를 닮았지만, 멀리서 번져오던 불빛을 품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다.


“오늘의 것입니다.”


그는 귀걸이를 손에 올려놓고 바라본다. 육각의 선, 그리고 그 안에서 흔들리는 작은 빛. 그의 손끝도 그 빛을 따라 미세하게 떨리는 듯 했다. 마치, 남산 아래 펼쳐진 주단이 아주 먼 바람에 한 번 더 스치는 것 처럼.


그는 귀걸이를 조심스럽게 상자에 넣는다. 뚜껑을 덮기 직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들여다보며 말했다.


“좋아해 줄까요?”


그가 묻는다.


Trail은 살짝 웃는다.

“보통 반짝이는 빛은 쉽게 외면하지 힘들지 않나요?"


그가 고개를 숙인다.

문이 열리고, 밤 공기가 안으로 스며든다.


밖에서는 붉은 불빛과 흰 불빛이 길 위를 건너고 있을 것이다. 서로를 스치며 흘러가다가, 어느 순간 나란히 이어지는 선들.


겹쳐졌던 손의 온기처럼,

보이지 않는 실 하나가 다시 이어진다.





18k yellow gold, 0.3ct lab diamo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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