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한국, 멤피스!

1950년대 인종차별 속 사랑이야기를 21세기 한국 대극장 봐야하는 이유

by 칙칙폭폭


뮤지컬 <멤피스>는 미국 남부 테네시주 동명의 지역을 제목으로 한다. 지명을 제목으로 한 또 다른 뮤지컬인 <시카고>가 금주법이 시행되며, 부패한 사법제도 아래 각종 범죄가 일어났던 1920년대의 재즈의 중심지를 조명했던 것처럼 뮤지컬 <멤피스> 역시 특정한 상황 속 지역에 주목한다. 1950년대 인종차별이 극심하던 남부지역에서 백인 남성 휴이와 흑인 여자가수 펠리시아의 사랑이 멤피스의 길거리와 클럽에서 흘러나오는 R&B와 교회의 가스펠 속에서 성장한 락앤롤 음악과 함께 어떻게 전개되는지 보여준다.

시작 전, 거대한 레코드판이 돌아가는 무대와 롹앤롤 음악들로 분위기를 데운다.

극에서는 구제불능 청년 휴이가 사랑에 빠진 음악, 그리고 그 음악을 들려주는 자신의 뮤즈를 세상에 보이기 위하여 인종차별을 뛰어넘고, 사랑을 추진력으로 삼아 다소 얼렁뚱땅 일궈낸 듯한 성공기가 유쾌하게 그려진다. 이 과정에서 휴이는 나와는 다른 것이라고 여기던 것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는 (다른 사람들 눈에는) 독특한 인물로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듀이 필립스라는 실제 인물을 기반으로 했다는 이 캐릭터는 관객에게 별로 똑똑하지도 않고 미숙한 인물처럼 비추어지면서도, 다른 사람의 시선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좇아 성공했다는 점에서 비범하게 느껴지도록 만든다.

휴이 역할의 박강현 배우

그러나 뮤지컬 멤피스에는 남들과 조금 남달랐던 취향을 가진 청년만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 이상으로 용기를 내어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자신의 목소리를 세상에 들려주겠다는 주체성을 가진 여성, 펠리시아가 등장한다. “Colored Women”이란 넘버에서 유색인종으로 겪는 어려움을 딛고 한 발자국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준다. 그녀는 휴이와 그녀의 오빠가 자신을 위해 행동해 주기만을 기다리지 않으며 그들이 함께할 미래에 대해 행동하고, 설득한다. 특히, ”Stand up”이라는 넘버에서 자신과 함께하는 동료들의 눈을 쳐다보며 그들을 독려하는 장면은 펠리시아 역할의 주연배우가 극 밖에서 함께하는 앙상블들을 격려하는 느낌이 교차하며 더욱 짜릿하게 다가온다.

멤피스 배우들

그렇다면 관객들은 이런 사랑, 저런 사랑을 그려내는 뮤지컬에서 우리는 이 둘이 인종차별이란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가는지 보기를 기대하면 되는 것일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그들의 사랑 이야기가 왜 무대 위에 올라가야만 하는 걸까. 고난과 역경에 부딪히고, 희생하는 것이 많아질수록 사랑이 아름답고 가치 있는지를 알려주기 위한 또 하나의 예시가 되는 극인걸까.


인종차별은 단순히 그들의 사랑을 고귀하게 만드는 장치가 아니다. 이들의 사랑에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외부에서 가해지는 인종차별이 아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예견되었을지 모를 백인 휴이의 당사자성의 문제에서 기인한다. 아무리 진정성을 갖더라도 비당사자의 태도와 목소리가 당사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인가. 인종차별의 문제를 다루기 까다롭다. 더 나아가, 이 문제를 구현하기 위하여 배우들이 재현하고자 보이는 외모적 변장이 되려 인종차별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도 생긴다. 흑인-백인의 인종차별 문제를 다른 유색인종 배우가 다루는 것 또한 조심스럽게 여겨지는 것은 바로 당사자성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유색인종 간에도 엄연히 나뉘는 계급에도 불편함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인종차별을 배경으로 한 사랑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인종차별에 부딪힌 그들의 사랑에 어설픈 동정과 연민을 느끼기 위해서가 아니다. 인종차별에 대한 역사는 당사자와 비당사자들의 노력이 합해져 사회에서 교정되어야 할 부조리로 인정받게 만들었고, 세상을 변화시켰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사회의 부조리한 면면은 모두에게 해당되지 않으며, 일부 당사자들만의 목소리로는 사회 전체의 상호이해와 협력을 불가능하게 하는 본질주의적 한계에 부딪힌다. 21세기 한국에서 1950년대 휴이와 펠리시아의 인종차별을 넘어선 사랑 이야기를 극장에서 만나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우리와 다른 이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지우고 이들을 수용하며, 일상을 일상으로 살 수 없는 부조리함 속에서 당사자는 당사자대로, 비당사자는 비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변화를 촉구하는 연대와 사랑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본 글은 뮤지컬 어워즈에서 부대행사로 진행하는 뮤지컬 비평클럽에 제출했다가 탈락해 버린 글입니다. ㅎ 다음을 기약하자, 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