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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ra Days Jul 21. 2023

[번외] 택일이 뭐길래

30만 원 주고 출산 택일을 받다

고위험산모로 입원 중이던 2023년 5월 5일에 쓴 글


나는 불자이다. 자랑스럽게 “불자입니다”라고 하기엔 아직 지식도 부족하고 배울게 많지만, 적어도 내가 믿는 큰 우주의 틀은 그렇다고 말을 할 수 있다.


그렇게 말하는 내가 명리학을 믿는다고, 심지어 아주 귀여운 수준으로 공부한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 그렇게 당당하지 않게 만드는 면모들이 있다.


어느 종교든 어느 지역에 정착을 할 때 토착신앙과 합쳐져 그 종교의 색처럼 되어버리는 게 있는데, 사실 많은 사람들이 불교에서 사주를 봐준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불교의 일부종파에서 토착신앙 (예: 무속신앙 등) 결합된 된 문화인 것이고 실질적인 불교의 가르침과 앞날을 점치거나 사주상으로 이 사람이 이렇고 저렇고 하는 것은 상당히 어긋난다. 그래서 나는 “스님”이 사주팔자를 봐주거나 택일을 해주는 사람으로 치부되는 것이 불편하다. 하지만 그 역시 여러 문화 중 하나기에 내가 솔로몬 마냥 옳다 그르다 할 수 없다.


여담이지만 “제사” 역시 불교의 문화가 아니며, 유교의 문화고 실제 알고 보면 불교의 49재 같은 문화 역시 “제”가 아닌 “재”를 쓰며 엄연히 다른 것인데 한국에서는 많이 혼재되어 사용된다.


(사주팔자를 보는 것이 불교 가르침이 아니라는 것 관련해서 더 알고 싶은 분들께 - 석가모니 부처님은 존우화작인론, 숙작인론, 무인무연론이 옳지 않다 하셨는데 더 관심 있는 분들은 찾아보시기를 - 연기법을 공부하는 것도 중요)


불교뿐만 아니라, 나의 가깝고 친한 친구들 중 꽤 많은 이들이 기독교나 천주교 신자인데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타 종교에서도 역시 사주팔자 등을 믿지 않으며 불교에서 말하는 것과는 약간 다른 맥락의 이유지만, 사주팔자라는 단어는 강하게 말하면 터부, 약하게 말하면 샛길 혹은 일탈 같은 느낌이다. (여딤이지만 나중에 역학 공부를 하며 이야기하게 된 분이 기독교 모태신앙이셨는데, 결국 사주팔자 역시 다 하나님이 설계해 놓은 큰 지표라고 믿으신다고 했다. 내 친구들 중 명리학을 정말 불편해하는 친구들도 있기에, 그 말이 정말 센세이셔널했고 세상만사 각자 보는 것 역시 상황과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었다)


여하간 각자의 종교를 가지고 이 코스모폴리턴 잡지 마지막의 별자리 코너보다는 조금 더 무게를 가진 것 같은 “명리학”이 신빙성이 있다 하는 것은 더 스무스하지 않은 무엇이 있는 것 같다. 사실 별자리 역시 따지고 보면 우리가 아는 것보다 매우 깊이가 깊고... 중국에서도 중국식 별점 자미두수가 있는데... 까지 들어가면 끝도 없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러 경험들을 통해 명리학이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이 되었고, 그것에서 더 나아가 알음알음 공부하기 시작한 지 좀 되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제왕절개를 한다면 택일을 해주고 싶었고, 여러 몸의 상황에 맞춰 제왕절개를 결심하게 되며 30만 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택일을 받았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소위 말하는 재벌집, 정치가 집안 중 많은 집에서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첫 번째이자 최고의 선물로 택일을 선사한다는 글들을 보며 우리 집은 아주 평범한 근로소득자 가정이라도 적어도 제 밥숟갈 잘 물고 건강하게 생활하며 인복 많은 아이로 자라는데 (기본적으로 부모의 가르침과 가정환경이 팔 할이지만) 추가적인 보탬이 되지 않을까 싶은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출산 11주 전부터 갑자기 입원을 하게 되며 고이 받아둔 날짜와 시간은 모두 물거품이 되고, 아기가 나오네 마네 하며 고비를 넘길 때마다 혼자 만세력 (사주팔자와 지장간, 12 운성, 대운 등을 보여주는 차트)을 돌려보고 대략적인 장단점을 살펴보며 속을 끓이기 시작했다.


출산 일정보다 한창 앞당겨지게 생긴 제왕절개 수술의 가능성에 대해 마음의 준비를 하며, 이미 여러 변수가 생겨버린 택일받은 사주팔자에 나는 나름의 여러 시나리오를 돌려보며 최대한 내가 피하고 싶은 것은 피하려고 노력을 해보았다.


사주에 오행이 골고루 분포가 될 것 (특정 오행으로 쏠린 사주가 아닐 것), 비겁 다자가 아닐 것, 형충파해를 피할 것, 원진살이 없을 것, 내가 선호하지 않는 일간이 아닐 것, 대운이 잘 흐를 것, 음팔통이 아닐 것, 무인성에 재생살 사주가 아닐 것, 오행의 순환이 순조롭고 길신을 적어도 두 개 이상 갖고 있을 것 등등.


그렇게 돌려보고 나니, 그거에 다 부합하는 사주는 단 하나도 없었다. 세상에 좋고 나쁜 사주는 없단 말처럼, 결국 모든 개념은 강점의 다름이지 무조건적으로 좋은 명식은 없었다. 물론 상대적으로 더 낫다고 판단되는 명식은 있지만, 여러 변수를 컨트롤해 그 온전함을 선사하기엔 너무 많은 고비와 예측불가함이 있었다.


결국 이 몇 주의 고민은 아이가 태어나는 날 역시 각자의 인연이고, 또 개개인이 태어나며 쓰임이 다 있기에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는 시기였던 것 같다.


나의 모성애와 가정의 울타리로 이 아이가 올바르고 건강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게 정성스레 빚고 길을 밝혀주는 것, 그것이 내 몫일뿐이라고.




실제 이 글을 쓰고 그다음 주에 나는 아이를 출산하였고, 받은 택일 날짜보다 4주나 이른 날이었다.

사주팔자랑 무관하게 나의 아이가 태어난 것 그 자체만으로, 그 날은 길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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