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낳고 경험한 것들, 그리고 앞으로를 위한 다짐
2023년은 정말 쉽지 않은 한 해였다.
단순 출산 전 입원의 여정, 그리고 쉽지 않았던 출산뿐만 아니라 출산 후에 겪었던 여러 변화들은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전혀 공감할 수 없는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몇십 킬로가 증가된 나의 몸, 버스 계단 하나 오르지 못하는 바닥이 난 체력, 난도질되어 붉게 올라온 나의 배 위 상처, 부족한 수면, '사람'을 길러내는 새로운 일과 그와 함께 부여된 막중한 임무, 그리고 무능력해지고 '사회에서 지워지는 나' 등.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날 때 가장 빛이 나던 나는, 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마저 (씻고 자고) 잘 보장받지 못하며 같은 하루하루를 보냈다. 친정가족과 남편의 참여로는 역부족이었다. "나 정도면 정말 도움을 많이 받았지"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가끔은 고생을 하는 나 자신을 보며 억울했다. 슬펐다. 답답했고 두려웠다. 하지만 나는 객관적인 눈으로 보았을 때 정말 좋은 엄마였다. 어쩜 나의 이 책임감과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나를 더 힘들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으나, 사람들이 말하는 '쉬엄쉬엄' '적당히'가 잘 되지 않았다. "왜 그러니까 피곤하게 모유수유를 하고 이유식을 다 만들어먹여?"라는 누군가의 질문에, 그 행위들을 하지 않으면 단순 '피곤함이 줄어들고 엄마의 삶이 편해진다'라고 답이 나온다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행위들을 내가 원하는 선까지 하지 않으면 그냥 그것은 나답지 않은 것이었다.
산후우울증의 호르몬 덕인지 나는 여러 새로운 경험을 하기도 했는데, 그중 하나는 과거에 대한 회상을 잘하지 않는 편인 나였음에도 나도 모르게 무의식 속에 꾹꾹 눌러 담았던 것들이 두더지 게임을 하는 것처럼 여기저기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내가 했던 선택들, 내가 관통한 시간들, 내가 맺었던 관계들, 내가 서운했던 혹은 반대로 잘못했던 기억들은 여러 형상으로 나를 쫓기 시작했다. 어쩔 때는 혼잣말로, 어쩔 때는 눈물로, 어쩔 때는 시선을 돌리는 것으로 응수했지만 3n년간 살아온 나의 몸 구석구석에 담긴 여러 기억들은 출산을 하며 함께 표면으로 올라왔다. 이게 다른 엄마들 역시 겪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나는 출산을 하고 8개월 남짓이 된 지금 역시 이따금씩 올라오는 기억들과 질문들을 마주한다. 어쩜 그 질문들은 앞으로 내가 살아갈 시간과 앞으로의 나를 위해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하는 과제일지도 모른다.
어쩜 이 모든 어려움들의 근본은 '에고'라는 생각을 했다. 아기를 낳고 기르는 것에 있어서는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내가 얼마나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았는지, 내가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앞서 쓴 여러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과정은 나라는 '존재' 자체를 받아들이고, 내가 해야 하는 '임무'에 충실해야 하는 그야말로 나를 깎고 내려놓는 여정인데 중간중간 불쑥불쑥 찾아오는 에고의 방해들은, 괜찮다가도 괜찮아지지 않게 만드는 능력이 있었다. 한해동안 나는 나의 아기를 길러내고 스스로를 다듬어가며 동시에 내 속에 있던 여러 에고와 욕망들을 받아들이는 시간들도 많이 보냈다.
2023년 말일, 한해를 되돌아보며 나는 생각했다. 나는 분명 이 한 해 동안 여러 곳에서 지워지고 잊혔지만, 분명 한 존재에게는 "오롯한 세상"이 되는 경험을 했다고. 그리고 이 경험은 일시적인 게 아니라, 아이가 조금 클 때까지는 계속될 경험이기에 나는 그 역할 속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충실히 임무를 수행할 것이다. 근본적으로 욕심이 많은 엄마라 육아 외에도 하고 싶은 게 많지만, 그럼에도 '부족한 엄마'라고 스스로를 너무 자책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나의 꿈을 위해 노력하고, 지속적으로 공부하며 발전해 나가는 모습이 분명 내가 키워낼 나의 작은 딸에게 많은 귀감과 양분이 될 것이라고도 생각이 된다. 훗날 나의 딸이 나를 보았을 때, 진취적이고, 담대한 동시 따뜻하고 섬세한 (or 섬세함을 잃지 않는) 엄마였으면 좋겠다. 나무만이 아닌 숲을 이야기하고, 다양한 관점과 마음들을 알아차리고 포용하는 것을 알려주는 엄마이고 싶다. 그런 개인이고 싶고, 동시에 엄마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