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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맞는다"라는 것

사실 "잘 맞는 사람"은 없어요. "잘 안 맞는 사람"도 잘 없지요.

by Nara Days

사람이 "잘 맞는다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할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저 사람도 좋아하고, 내가 싫어하는 것을 저 사람도 싫어하는?

우리가 지금 이 순간 뜻하는 바 혹은 필요로 하는 바가 맞는?

대화의 깊이나 관심사의 범위가 비슷한?


나는 섣불리 "그 사람은 나랑 참 잘 맞아" 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이유는, 기질적으로는 사람을 정말 좋아하면서도 동시에 모든 인간관계와 마음은 가변적일 수 밖에 없기에 언제 서로 뜻하는 바가 어긋나거나 혹은 내가 믿는 시절인연이 다 했을 때 다르게 느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상대방과 "잘 맞다고 생각하기에" 더더욱 편해져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해의 울타리가 점점 더 낮아질 수도 있고 말이다. 또한 가장 친한 친구라는 말 역시 하지 않는다.


사회생활에서는 어떨까. 사회에서 내가 상대적으로 편하거나 더 찾는 사람들은 분명 있다. 하지만 굳이 내가 '맞지 않는다고 느낄' 사람도 거의 없다. 조직생활의 수직적인 관계나 이해득실 따위가 관계에 있지 않다면, 정말 상대방이 욕을 많이 하거나 무례한, 혹은 기질적으로 못된 사람이 아닌 이상 어떤 사람을 만나도 "안 맞는다" 라고 느낄 무엇이 없다. 나는 그냥 그 시간이 자의적인 시간이든, 타의적인 시간이든 그 순간에 충실하고 이 사람을 "나"로 빗대어 보지 말고 사람 그 자체로 보면 그 어떤 만남도 괴롭진 않다. 하지만 유독 더 편한 사람들이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요즘 유행하는 MBTI 역시 MBTI간 궁합을 보여주며 찰떡궁합이네, 파국이네를 보여준다. 우리는 서로의 MBTI를 물으며 나와 맞는지 아닌지 재미로 궁합표를 찾아본다. 친했던 동료도 왠지 '파국'이라고 나오면 괜히 짐짐하다는 친구의 말처럼, 요즘은 MBTI가 나의 초등학교 시절 혈액형 같은 느낌이랄까. 웃기게도 나와 친하거나 유독 인연이 되는 MBTI들을 보면 특정 MBTI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나는 INTJ, ENFP, INFP들이 유독 주변에 많고 그들도 나를 좋아하는? 편이다.)


궁금해서 해 본 애인과의 MBTI, 원래 성향이 서로 많이 다른 것은 알고 있었지만 ENFJ인 나 (비슷한 유명인: 버락 오바마), ESTP인 애인 (비슷한 유명인: 도널드 트럼프)의 궁합은 '파국'으로 나온다. "나는 MBTI로 사람 유형 가르는 사람 제일 싫어해"라고 말을 하는 그, 분명 본인 MBTI 때문에 예전에 누군가로부터 한소리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웃기게도 ESTP는 16개의 유형 중 가장 MBTI를 싫어하는 유형이라고...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실제 우리의 성향은 많이 다르다.


나는 계획하는 것을 좋아하고, 몸을 계속 움직여서 여기저기 다녀야 하는 스타일이고, 가고 싶은 전시나 가볼만한 곳은 열심히 기록 해 놓고 찾아가는 편이다. 밥을 먹고 바로 설거지를 하는 스타일이며, 빈 시간엔 책을 읽고 공부를 한다. 쓸데없는 토픽에 진지해져 생각이 생각을 물어 사색하고 글로 풀어내는 것을 좋아하고, 타인과 (특정 타인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사람 등에 관심이 많음) 많이 연결 되어있는 존재 + 가끔은 쓸데없는 박애주의자다.


애인은 본인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아니면 계획을 하지 않는다. 그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나라는게 참으로 다행이다. (눈물) 그는 계획도 short-term goal oriented다. 뭔가 타깃이 정해져있는 것, KPI가 명확한 것에 그가 심도있게 에너지를 쏟아붓는 것을 보면 늘 놀란다. 가끔은 나보다 더 짧은 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물론 그 짧은 시간은 - 무언가 외부적인 압박으로 스케줄을 짜는 것을 싫어하는 그가 미루고 미룬 막판의 시간이다) 일을 해내는 것을 보면 대단하다. 그는 의지와 기지대로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렇기에 나보다 더 결단력과 대범함이 있을 때가 많고 부럽기도 하지만, 동시에 보는 내가 옆에서 똥줄 탈 때가 많다.


하지만 그가 그런 성격으로 내게 goal oriented + acheiving KPI의 attitude로 돌진했기에 관계 시작 전에 여러 허들을 치르는 내가 자연스레 사귀게 된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참고로 애인은 연애 MBTI 검사를 해도 브레이크가 고장난 직진러인 ESTP가 나온다. 500일 넘는 연애에서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상반되는 나의 신중함, 진지함, 하지만 엄청난 부지런함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그의 막판의 기지의 발란스의 효과를 많이 보았다.


우리는 정서적으로도 많이 다르다. 몇 안되는 스스로의 장점으로 칭하는 "공감능력" 같은 경우, 나는 어떠한 행동을 하기 전 그 파장을 360도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고 하는 편이다. 내가 이렇게 하면 누가 힘들지 않을까 내가 야속하겠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등 - 이런 고민을 하는 나를 보며 그는 "나는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한번도 고민 해 본 적이 없어 참 신기하다" 라고 했는데, 난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없는 그가 참 신기했다. 나는 공기의 흐름도 잘 읽고, 누군가의 미세한 눈썹의 움직임에도 그간의 감정 혹은 불만, 그리고 하지 못한 말을 잘 읽는다. 반면 그는, 상대방의 눈썹이 움직였는지도 모른다.


여튼 그 도표에 나온 것 처럼 이러한 차이가 '파국'의 증거일 수도 있겠다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크게 싸운 적이 없다.


며칠 전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소소하게 다퉜다. (아마도... 청소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다투면 팔할은 청소나 정리 때문 - 그의 입장에서 나는 너무 깔끔하고 원칙주의적인 사람이고, 내 입장에서 그는 너무 즉흥적인 사람이다. 3n년 다른 인생을 살던 두 남녀가 맞춰가는 과정이란)


10초 정도의 옥신각신 후 같이 하기로 한 운동을 하기 싫다고 변덕을 부리며 나와 말을 섞지 않는 그를 보고 나는 그냥 아파트 헬스장으로 혼자 내려왔다. 아마 그를 잘 몰랐던 초창기였다면 계속 대화를 시도했겠지만 (사실 초창기 땐 이런 경미한 다툼도 없었던 것 같다) 이젠 서로를 너무 잘 안다. 지금은 그래 저 사람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니까 하고 혼자 움직이는데, 웃기는 것은 운동을 시작하고 2-3분 지나 아까 나한테 말도 섞지 않던 얼굴이 슬그머니 헬스장으로 온다는 것이다.


응당 너무나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생각보다 빨리 와서 웃겼는데, 여전히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내 옆에 서서 내가 하는 운동을 따라 하는 것도 웃겼다. 그리고 그런 뻘쭘한 상황도 잠시, 그가 나를 따라 아령을 어깨 위로 버쩍 든 순간 나온 그의 하얀 배를 보며 둘이 동시에 빵 터졌다. 결국 그 날의 운동은 서로 손을 잡고 오랜동안 걸었던 밤산책으로 대체 되었다. 서로 "아까 미안해"라는 말과 함께.


만약 원래대로의 티피컬한 "ENFJ"라면, 아니면 사람 경험이 부족했던 20대 초반의 나라면 어떻게든 그를 잘 '설득'하여 데리고 내려오려고 했을 것이고, 그 '설득'하는 과정에서 나는 그의 변덕에 질리고 그는 나의 집요함에 질렸을 것이다. 아니, 운동을 하기로 했는데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마음이 바뀌지? 라고 나는 생각을 하며, 그럴 줄 알았으면 난 더 일찍 올 걸 그랬다 등 궁시렁 댔을 수도 있지.


그러한 과정들이 생략 되어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매번 '파국'을 모면했고, 묘하게 다른 우리의 성격 속에서 작은 안전지대를 찾아 각자 그 곳에서 잘 생활을 한다. 서로의 다름을 맞춰나가는 과정도 재미있지만, 그 다름 자체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우리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사실 이러한 과정은 애인뿐만 아니라 내가 마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이 될 수 있다. 다만 상대가 가족이나 애인, 배우자 등이 아니면 그런 에너지와 시간을 쏟을 가치를 못느껴 포기하는 경우가 많지만, 어쩜 다른 기질과 성향 속에 각자의 '안전지대'만 잘 찾는다면 어떤 상황이나 대화에서든 우리는 많은 것들을 해결할 수 있다.


일전에 내가 좋아하는 유튜버 마인드풀 TV의 정민님이 내 마음만 알아차리면 정말 아무나와 결혼해서 잘 결혼생활을 수 있다? 라는 식의 말을 하셨는데, 그 말에 모두 동의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 가정폭력 등), 그래도 모든 관계에서 나를 이해하고 내 마음을 알며, 모든 인간관계의 가변성을 인정한다면 어려울 무엇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잘 맞는다"라는 말 자체도 것도 가변적이고, 그 상황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다고 생각을 한다. 굳이 유독 잘 맞는 사람, 혹은 잘 맞지 않는 사람 역시 - 내 마음이 만들어낸 순간의 생각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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