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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나를 가장 기쁘게 하는지

도움이 되는 사람, 함께 성장하는 사람, 그리고 사수에 대한 기억

by Nara Days

"우리 나라님이 키워낸 훌륭한 결과물 여기 보이세요?"

같은 팀에서 일을 한 친구가 승진 소식을 전하는 톡에 주책스럽게 코 끝이 찡했다. 안 아픈 손가락 없고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각자의 이유로 소중하지만, 아끼는 친구들의 연이은 승진 소식에 마음이 벅찼다. 각각의 친구들에게 진심을 다 해 축하를 하며 1월에 승진 잔치를 열자고 했다. 어떤 맛있는 것을 만들어주면 좋을까.


퇴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함께 일했던 친구들이 종종 면담을 요청한다. 나 역시도 의견이나 조언을 여쭐 수 있는, 내가 보고 배울 수 있는 어른을 늘 갈망했던 사람으로서 이렇게 나를 찾아와 주는게 감사한 반면 내 의견이 도움이 될지, 내가 나도 모르게 구닥다리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게 아닌지 검열을 하게 된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 것 처럼, 경험으로 비롯 된 것이라고 해도 결국 주관적일 수 밖에 없는 나의 의견이 과연 도움이 될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승진 면접을 준비하며 이런저런 생각이 많은 친구와 한 시간 넘게 통화를 하며, 사실 내가 이 친구에게 필요한 조언을 한다해도 결국 정리되는 것은 내 머릿 속이었다. "아, 내가 일을 할 때 이런 모습이었겠구나" "아, 나는 일을 할 때 이런게 더 필요하구나" "각 연차에서 필요로 하는 성실함은 다른 것이구나" 라는 다양한 생각들과 함께 머릿속이 분주하게 교통정리를 시작했다.


동시에 나는 어떤 어른을 필요로 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을 한다. 사회초년생 때 내 눈에 보이던 사수의 모습. 나의 사수는 나보다 세살이 많은 분이었는데, 정말 자그마한 체구인데 이미 임신을 한 상태였고, 유난히 하얗고 예쁘면서 야무지고 강인한 얼굴,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 그리고 멋진 애티튜드를 가진 분이었다.


일을 할 때는 매우 따끔하게 혼을 냈으며, 또박또박한 글씨체부터 책상 위 완벽한 정리정돈까지 그녀에게 흠이란게 존재할까 싶었다. 또한 뉴욕대에서 저널리즘 석사까지 하고 온 그녀였기에 내 눈에는 매우 위대해보였다. (나는 최종으로 내가 간 대학교, 그리고 뉴욕대학교를 합격하여 진학을 고민했는데, 뉴욕의 치명적인 생활비와 보스턴 대학교로 진학을 했던 단짝과 관계가 틀어져 전자로 입학을 결정했다. 그래서 막연하게 뉴욕대에 대한 멋진 선망의 마음이 있다.)


하지만 당시 그녀의 연차를 훌쩍 넘은 지금의 내가 돌이켜보았을 땐, 그녀는 너무나도 일을 잘 하던 AE가 갓 대리를 달아 의욕도 앞서는 동시 아마 본인의 윗 상사들보다 본인의 사리판단이나 더 정확하고 행동력이 앞섰기에 완급조절이 필요했을 것 같다. 그러다 처음 후배라고 누군가가 들어왔는데 이마를 짚을 정도로 털털한 동시, 15년 해외 생활을 하다 들어와 한국어 실력 역시 어딘가 묘하게 엉성한 부분이 있는 아이라서 (그건 바로 나) 힘들었을 것 같기도 하다.


어쨌거나 저쨋거나 나의 사수는 완벽한 사수였다. 나의 첫 PPT를 보고 "캐나다에서 전지로 공부했니?" 라고 물으며 나의 실력에 대해 비판 하시다가도, 어떻게 하는지를 완벽하게 가르쳐 주시고 그 토대로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여러 고민거리를 던져주었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찬바람이 쌩 불다가도 어느 날은 아침 출근 길에서 읽은 신문 속 백석의 시를 나에게 보내주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툭-하고 온 아침 이메일을 열면, 그러한 시와 "힘내 후배님, 너무 잘 하고 있어줘서 고마워" 같은 글귀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치도 못하게 눈물을 흘리며 아침을 시작하기도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녀는 늘 나의 성장에 누구보다 기뻐하는 사람이었다. 매 해 보지는 못해도 간간히 연락이 닿을 때 마다,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벌판 위 야생마 같던 내가 이렇게 정돈된 사회인(?)으로 자란 것을 보며, 그동안 해왔던 성과들에 진심으로 칭찬을 해주신다.


모쪼록 나와 함께 일했던 친구의 소식으로 인해 지난 며칠 동안에는 첫 사수 생각을 많이 했다.


나를 기쁘게 하는 것들은 많지만, 아마 내게 있어 나를 가장 기쁘게 하는 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것, 나의 작은 도움으로 그들의 성장이나 더 나은 변화에 기여하는 것인 것 같다. 나는 모쪼록 여러 방면에 있어 도움이 되는 사람, 함께 성장하는 사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한 의미에서 최근에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귀중한 워크샵을 같이 하자고 손을 내밀어준 새롬언니에게도 고맙고, 누구보다도 나의 성장을 온 맘 다해 응원하는 애인에게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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