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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수 Jul 08. 2024

<나의 트랜지션 일기> 64장: 트랜스젠더 혐오(4)

트랜스젠더와 군대

[64장: 트랜스젠더 혐오(4)]



숙명여대 입학거부 사건과 더불어 한국사회에서 또 하나의 큰 트랜스젠더 이슈가 있었다. 바로 변희수 하사 강제전역 사건이다. 트랜스여성이었던 변 하사는 남군으로 복무하다가 휴가를 내고 성확정수술을 받았다. 진단부터 수술까지 정당한 절차를 밟아서 진행했던 거였으며, 여단장이나 군단장 등 변 하사의 소속부대 상급자들도 모두 지지하고 있었음에도 육군에서는 변 하사에게 심신장애 판정을 내린 뒤 복무에 부적합하다며 강제전역 처분을 내렸다. 이에 변 하사는 “기갑의 돌파력으로 군의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없애버리겠다.” 라며 군의 부당한 처분에 맞서기로 결심했고, 군인권센터를 포함한 여러 인권단체들이 대책위원회를 꾸려 변 하사의 싸움을 지지하고 도왔다. 그러나 무지하고 편협하고 반인권적이었던 육군은 끝내 변 하사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누구보다 군을 사랑하고, 군인이라는 직업에 자부심과 열정이 넘치던 사람이었다. 업무적인 평가나 주변의 평판도 매우 좋았던 유능한 인재였다. 왜 그런 분이 트랜스젠더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렇게 무자비하게 생존권과 노동권을 박탈당하고 내쫓겨야 하는지. 너무나 억울하고 화가 나고 마음이 아프다. 트랜스여성의 성확정 수술을 고작 ‘남성기 상실’, ‘신체 훼손’ 정도로 이해하는건 너무나도 심각한 트랜스젠더 혐오이자, 남성기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가부장적 사고와 편협한 성기환원주의에 기반한 차별이다. 국방부와 육군 뿐만 아니라 변 하사를 모욕하고 비난했던 모든 보수단체, 개신교집단, 터프집단, 불특정 다수의 네티즌들, 그리고 여성과 소수자를 끊임없이 배제해 온 남성 중심 가부장제 모두가 변 하사를 죽음으로 내몬 가해자다. 나는 트랜스젠더 당사자로서 트랜스젠더 차별에 용기내서 멋지게 싸워주신 변희수 하사님께 감사하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동료 시민으로서 함께 싸우며 곁을 지켜주지 못함에 미안함과 책임감을 느낀다. 누구보다 멋지고 당당한 여군이셨던 변희수 하사님. 그 곳에서만큼은 평안하시기를 바라며, 아직 살아있는 자로서 변 하사님 몫까지 계속 싸워나가고 싶다.




변희수하사 추모대회 사진과 발언문(아래)



안녕하세요.
저는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트랜스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연수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변희수 하사님을 어떻게 기억하고 계신가요?
저는 하사님과 직접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하사님이 처음에 기자회견을 통해 여성으로서 군복무를 계속 하고싶다고 발언하시던 모습이 기억에 생생합니다. 

하사님은 너무나 멋지고 용감한 트랜스여성이자, 너무나 멋지고 용감한 한 명의 군인이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저 역시 트랜스여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직업이 군인은 아니지만, 트랜스젠더 차별과 혐오라는 총탄이 빗발치는 이 사회에서 저는 매일매일 전쟁같은 삶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이런 저에게, 변희수 하사님이 쏘아올린 대포같은 용기는 큰 위로와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비록 내가 남들과 달라도, 비록 내가 트랜스젠더여도 당당히 세상에 나와도 되는구나, 당당히 세상과 맞서도 되는구나 하는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 하사님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누구보다 군대를 사랑했던 하사님이 강제로 전역당하게 되었을 때 얼마나 고통스럽고 절망스러우셨을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훌륭한 군인이던 하사님을 왜 국가는 무참히 버렸는지, 그 편협함과 오만함과 무지함에 너무나도 화가 납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유명을 달리하신, 변희수 하사님과 나이도 같으신 이예람 중사님의 평안도 바랍니다. 이예람 중사님도 훌륭한 군인이셨지만 이 남성중심적이고 폭력적인 군대 문화에서,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존엄을 짓밟혔습니다.
군대가  소수자를 배제하면서 오와 열을 맞출때, 누군가는 오열하고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2024년인 올해는 변희수 하사님 3주기입니다. 그리고 3년동안 많은 활동가들의 투쟁으로 인하여, 늦었지만 순직이 인정되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늦었기에 기쁘지는 않습니다. 하사님이 살아생전에 혼자 외롭지 않도록 전우가 되어드리지 못한 것에 죄송한 마음입니다. 밀리터리와 게임을 좋아하셨다는 하사님, 지금 계신 곳에서는 즐겁고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기갑의 돌파력으로 군의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없애버리겠다.” 하사님이 남기신 말씀입니다.
앞으로 더 이상은 트랜스젠더가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만으로, 소수자가 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홀로 외롭게 싸우지 않을 수 있도록 이 전쟁터 같은 사회를 기갑처럼 돌파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사님, 편안히 쉬십시오.





군필자로서 느끼기에 군대와 트랜스여성은 쉽사리 상상할 수 있는 조합은 아니긴하다. 시스젠더 여성이나 동성애자 남성에 대해서도 그렇게 차별적이고 배타적인데 하물며 트랜스여성은 오죽하겠나. 여군에 대한 성폭력은 비일비재하고, 남성의 동성간 성관계를 처벌하는 조항이 있는 군대. 그 안에서 트랜스여성이 있을 곳이 있을까. 

트랜스젠더의 병역 문제를 두고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냥 남자인데 군대가기 싫어서 트랜스젠더인척 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그런데 병무청은 그렇게 허술하지 않다. “저 트랜스젠더에요”라고 주장하기만 한다고 되는게 아니라 그에 따르는 의료적 조치 – 6개월 이상의 호르몬 치료나 고환적출 등 – 가 있어야만 인정된다. 트랜스젠더가 아닌데도 군대가기 싫어서 ‘남자’임을 포기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물론 한국의 많은 남자들은 왜 남자들만 군대를 가느냐, 공평하게 여자도 군대를 가야한다고 주장한다. 나 역시 군필자로서, 20대의 황금같은 2년을 강제로 끌려가서 허비하는 시간이 너무 아깝고 억울한건 나도 백번 이해한다. 

하지만 그 분노의 창 끝은 여성이 아니라 국가와 군사주의를 향해야 한다. 국가가 국민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남성을 1등시민으로 걸러내어 징집을 하고, 그 징집한 사병들을 군사주의를 유지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여성도 징병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징병제를 없애고 모병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더 나아가 군대와 전쟁이 없는 세상으로 나아가자고 우리는 외쳐야 한다. 그리고 그런 세상이 트랜스젠더에게도 더욱 안전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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