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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수 Jul 01. 2024

<나의 트랜지션 일기> 63장: 트랜스젠더 혐오(3)

나는 '우리'가 아니었던걸까

[63장: 트랜스젠더 혐오(3)]



트랜스젠더 혐오를 얘기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바로 ‘트랜스젠더 배제적 급진 페미니스트(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t)’, 앞글자를 따서 터프(TERF)라고 불리는 집단에 대한 것이다. 개신교 혐오세력이 성소수자 집단 전체를 공격한다면, 터프는 성소수자 중에서도 트랜스젠더만을 공격하는 집단이다. 페미니즘이라는 학문이나 운동은 역사 속에서 다양한 갈래와 진영, 변화를 겪어왔다. 여기서 그걸 다 설명할 수는 없으니 핵심만 말하면, 발전을 거듭한 끝에 도달한 지금의 페미니즘은 ‘상호교차성 페미니즘’ 이라고 하여 여성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든 소수자를 포함한다. 많은 페미니스트들과 인권운동가들의 이 페미니즘을 지향하고 있고, 내가 지향하는 페미니즘 또한 이것이다. 모든 사회적 소수자들이 받는 억압은 다 연결되어 있고, 따라서 소수자들은 다 서로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터프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다. 그들은 여성만이 약자라고 생각하고, 여성만을 위한 운동을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여성의 범주는 ‘생물학적 여성’ 으로서, 여성의 염색체와 여성의 신체를 가진 사람들만 진짜 여성이므로 트랜스여성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라는 것이다. 생물학적 성별이분법의 허구성에 대해서는 내가 앞에서도 적어놨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고 있지만 터프들은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성별이라는건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것이므로 절대 바꿀 수 없다는 것인데, 이 부분에 있어서는 보수 개신교인들의 주장과 매우 유사하다. 이를테면 ‘남자인 사람이 자기가 여자라고 주장하면 여자가 되는 것이냐, 무엇을 근거로 본인이 여자라고 생각하느냐, 여자는 느낌으로 될 수 있는게 아니라 태어날 때 정해지는 것이다’ 라는 식이다.

다만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차이가 있는데, 보수 개신교인들은 트랜스젠더가  ‘창조질서’에 위협이 된다고 말하고 터프들은 트랜스젠더가 ‘여성인권’에 위협이 된다고 말한다.

가장 많이 얘기하는 것이 바로 여성의 안전문제다. 남자인 사람이 자기가 여자라고 주장해서 여자라고 인정해주면, ‘여장남자’가 여자들의 공간에 들어와서 성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못막지 않느냐, ‘생물학적 차이’가 있는데 어떻게 자신이 여자라고 생각한다는 이유만으로 여자라고 인정해줄 수 있느냐고 한다. 그런 논리로 인해 트랜스여성은 주로 성도착증을 가진 성범죄자의 이미지로 상정이 된다.



안티페미 세력과, 개신교 혐오세력과, 터프들이 이 지점에서는 한 목소리가 된다.


나는 내가 트랜스젠더임을 sns 상에 드러냈다가 터프들에게 좌표가 찍혀 사이버불링을 당한 적이 있다. 그때도 페미니즘과 관련된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을 때였는데. 그들로부터 ‘왜 자댕이새끼(남성기를 가진 사람을 비히하는 말)가 음침하게 여자들이 있는 공간에 들어와있냐, 뒤에서 딸치는거 아니냐’ 라는 식으로 욕을 먹었다. 나는 존재만으로도 음침하고 여성들에게 위협적인 존재인가 하는 생각과 안 그래도 자지달린게 싫은데 자지로 싸잡혀 욕먹기까지 해야된다는 비참함 때문에 자기혐오가 들고 너무 괴로웠다. 내 몸이 싫어서 성기 바로 옆에 있는 허벅지 부위를 커터칼로 자해했다. 몇 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허벅지에는 그 때의 흉터가 그대로 남아있다.      


그렇게 남성신체와 성폭력위험이 문제라면, 성확정수술까지 끝낸 트랜스여성이라면 그래도 인정(?)해줄줄 알았다. 그러나 그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다. 터프들에게 있어서 트랜스젠더는 스펙트럼이나 수술여부를 막론하고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해서는 안 된다. 대표적인 예로, 수술하고 성별정정까지 마친 트랜스여성이 숙명여대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숙명여대 안에서는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남성 입학반대 TF팀’이 생기는가 하면, 서울에 있는 6개 여자대학교의 래디컬 페미니즘 동아리들을 중심으로 해당 트랜스젠더 학생에 대한 입학반대 행동이 거세게 일어났다. 학내 대자보, 단톡방, 트위터, 에브타임 등에서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온갖 모욕과 조롱이 담긴 혐오발언이 쏟아져 나왔고 심지어는 트랜스젠더 학생이 입학하면 물리적인 폭력을 가하겠다는 구체적인 협박성의 글들도 있었다. 당시에 트랜스젠더 학생 입학반대 서명에 동참한 인원만 1만 명이 넘었으니, 트랜스젠더 혐오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했던 사람들을 모두 다 포함한다면 못해도 최소한 수만 명은 되었을 것이다. 물론 대학사회 내 성소수자 동아리 및 인권동아리, 숙명여대 동문회, 시민사회단체, 진보정당 등 트랜스젠더 학생의 입학을 지지하는 세력들도 많았다. 하지만 워낙 반발과 혐오의 목소리가 컸기에 해당 학생분은 결국 숙명여대 입학을 포기하게 되었다. 내 존재를 부정하고, 나를 없애고 싶을 정도로 증오하는 사람들이 수십 명만 있다고 해도 충분히 무서울텐데 하물며 수만 명이나 되는 상황이었으니 그 누구라도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나 역시도 트랜스젠더 당사자로서 그 당시 너무나도 화나고 슬프고 무섭고 괴로웠다. 이 사건은 단순히 낯선 존재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불안감과 거부감으로 퉁쳐질 수 있는게 아니라 조직적으로 소수자 개인의 생존권과 교육권을 침범한 혐오범죄이자 테러행위이다.

자신은 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냥 공학을 갔으면 될텐데 왜 하필 여대를 선택해서 그 고생을 했냐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오히려 되묻고 싶다. 여학생이 여대를 가는게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 사회의 수많은 시스젠더 여학생들이 여대를 진학할 때 그 한 명 한 명을 붙잡고 다 그렇게 말했는가?

모순이다.      


내가 앞선 글들에도 누누이 말했듯이 나 역시도 페미니스트다. 여러 단체에서 여러 활동들을 해오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왔다. 누군가에게 인정받으려고 여성운동을 하는건 아니지만, 터프들이 ‘트젠들은 여성인권에 관심갖기는커녕 방해만 되지않냐’고 말하는걸 들을때마다 억울해서 울화통이 터진다. 나는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갖기전부터 페미니즘을 접했던터라, 여성으로 정체화하는 것부터도 굉장히 많은 자기검열을 했던 사람인데. 여성운동판에 있다보니 아무래도 더 신경이 쓰인다. 시스젠더여성들이 주류인 곳에서 트랜스여성인 나의 위치는 어디일까, 내가 발딛고 있는 곳을 자주 내려다보게 된다. (트랜스젠더를 포함하는)교차성 진영과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래디컬 진영 사이에서는 트랜스젠더가 항상 가장 뜨겁고 치열한 주제였다. 누군가는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온갖 트랜스혐오적인 말들을 내뱉었고, 누군가는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그 혐오를 비판했다. 개인간의 단순한 언쟁을 넘어서 단체끼리 입장문을 내고 분열하기까지하는 사태도 일어났다. 트랜스혐오에 대해 비판하고 대항했던 비(非)트랜스 페미니스트들도 물론 마음고생이 많았겠지만, 가장 고통받고 상처받았던건 역시나 트랜스 당사자들이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이들이 몰려다니며 온갖 트랜스혐오표현을 쏟아내는 덕분에 많은 트랜스젠더들은 페미니즘에 강력한 반감을 갖게 되었고, 심지어 어떤 트랜스 커뮤니티는 한시적으로 ‘지정성별 여성’의 가입을 제한시키기도 하였다.       


나 역시도 교류하던 페미니스트들에게 사이버불링을 당한 적이 있다.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은채로 페미니즘 얘기만 할 때는 분명 ‘옳은 말 한다’고 환호하던 사람들이, 내가 트랜스여성이라는 정체성을 밝히자 돌변해서는 조롱과 비난을 쏟아내거나 그냥 ‘치마입는 남자’ 하면 안되냐고 좋게(?) 설득을 하려고 했다. 개중에는 내가 페미니즘 의제로 1인시위 했을 때 고생한다며 커피를 주고 갔던 사람도 있었다. 그 때의 그 배신감이란.

그렇지만 사이버불링의 정도가 수십명 대의 불과한 나 정도면 운이 좋은 편이었다. 트랜스젠더 만화를 그렸던 내 지인은 트위터에서 수천 명의 터프들에게 조리돌림을 당했으며, 살해협박과 강간 사주 위협까지 겪으며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 그 지인은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편이지만, 그러한 경험으로 인해 시스여성들을 남성보다도 더 무서워하게 되었다.            


다른건 돼도 트랜스젠더 인권만큼은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진출처: 누가 페미니스트인가 by 천관율, alookso콘텐츠 - 얼룩소 alookso


트랜스혐오 자체는 이제 별로 새롭지 않다. 혐오자들이 트랜스젠더를 모욕하고 조롱하려고 온갖 말들을 쏟아내지만 이미 다 최소 육십 구번씩은 들어본 것들이라, 아프긴 해도 특별히 더 괴롭진 않다. 그런데 나를 더 괴롭게 만드는건 내가 페미니즘 진영 안에서 겪는 고립감이다.

물론 트랜스젠더를 배제하지 않고 오히려 지지해주는 페미니스트들이 적은건 아니다. 그런 분들에겐 항상 고마운 마음이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건 개인에 대한게 아니라 구조에 대한 것이다. 페미니즘에서 말하는 ‘여성’에, 트랜스여성인 내가 포함되어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항상 있다. 한 명씩 붙잡고 “트랜스여성도 여성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라고 물어보면 당연히 당연하다는 대답이 돌아오긴 하겠다만. (시스)여성이 겪는 성차별이나 성폭력에는 분노하면서 (트랜스)여성혐오에는 시큰둥한 반응을 접할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 나만 ‘우리’ 였나? 나는 여기서 ‘여성’이 아니었나?”     


한 가지 비유를 하자면 일반 남성들이나 개신교 혐오세력들이 하는 혐오는 집 밖에서 부는 태풍과 같다. 물론 무섭고 위험하지만, 현관문과 창문을 꽉 닫고 나가지만 않으면 어찌어찌 견딜수는 있다. 그런데 여성운동 안에서 터프들이 하는 혐오는, 집 안에서 온갖 벌레들이 출몰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언뜻보면 태풍보다는 규모가 작고 덜 위험해보일수는 있지만, 안온함을 느껴야 하는 집에서 자꾸 벌레들이 나오면 불안해서 잠을 잘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안전에 위협이 되기도 하니까. 터프들은 나에게 벌레다. 그들이 하는 말을 들을때마다 나는 자해충동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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